‘해학의 달인‘이라 불린 20세기 전설적인 영국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은 이런 말을 했다. "전쟁터에 나가지 않는 나이 든 사람들이 쉽게 전쟁을 결정해서 젊은이를 죽게 만든다. 전쟁에는 40대 이상인 사람만 나가라."
"사람이 절반은 보수, 절반은 진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절반은 가톨릭, 절반은 무슬림인 사람은 없다. 정치적 문제는 사안에 따라 타협이 가능하지만 종교나 인종 같은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는 타협이 불가능하다." 한동안 세상을 흔들었던 새뮤얼 헌팅턴Sanuel Huntington의 《문명의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에 나오는 구절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신이 언제나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에 저항할 수 있는 최종 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다. 인도인과 페르시아인들도 신들을 굶어 죽게 할 권한을 유보해두었다. 스칸디나비아인의 신은 인간처럼 늙어간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신은 전지전능하다. 고대인들은 자신의 고귀함을 지키기 위해 신의 한계 영역을 두었으나 기독교에서는 그 영역은 인간의 한계 내지 우매함을 나타내는 징표가 되고 말았다.
종교도 인간의 발명품이다. 신의 존재를 확인한 것도 인간이다. 종교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종에 특유한 것이다. 종교에 치명타를 가한것은 과학이다. 과학이 가져다준 혜택의 하나는 현상들에 대한 폭넓은 합의를 이루어냄으로써 우리가 찾아낼 진실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점이다.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Edward Wilson 은 인간에게는 순응과 신성화를 지향하는 유전적 소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진화생물학의 입장에서는 종교도 자연적인 현상의 하나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도 진화를 거듭해왔고, 따라서 우리의 도덕적 삶 역시 어떤 신성한 영역이나 정신 속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진화해온 자연현상에 불과하다. 진화의 세부적 과정을 들여다보며 신에게 묻지 않고도 공동체를 영위할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즉 과학은 인간조건의 새로운 양상을 발견하거나 수정해왔고 인간세계에 유익한 방향으로 조정해왔다. 더 이상 신이 필요하지 않게 된 이유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종교인이 될 수 있다. 몇 해 전에 사망한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은 ‘종교적 무신론‘을 주장했다. 종교란 반드시 신에 대한 믿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본질적 의미와 자연의 내재적 아름다움에 대한 경건한 자세가 핵심적 요소다.
인터넷은 이제 현대인의 삶 그 자체가 되었다. 동시에 여론의 극단화 현상을 이끄는 ‘네트워크 악마‘로서의 이빨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인터넷 정보의 정확성에 대한 의심과 질문이 더 많아져야 한다. 영국왕립학회의 다음과 같은 좌우명이 더없이 적확한 곳이 인터넷마당이다. "누구의 말도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 nullius in verbal",
"달리는 수레 위에서는 공자도 없다." 한비자韓非子의 명언이다. 삶이 황망할수록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청년 세대의 일상에 스마트폰과 노트북 못지않게 산책과 사색이 중요하다.
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 또한 힘들다 하네. 명나라 말기의 시인 정호程顯의 명구다. 힘들지 않은 세대는 없 다. 제각기 힘든 사연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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