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북스] 개미 1
홀로그래피

인간의 두뇌와 개미집은 닮은 점이 있다. 둘 다 홀로그래피 방식으로 만들어 낸 입체상에 비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홀로그래피란 무엇인가? 레이저 광원에서 나온 간섭성 빛을 물체에 비추면 빛이 난반사되는데 그 빛을 모은 다음 일정한 각도에서 참조광을 비추면, 빛이 겹치면서 물체의 입체상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빛의 간섭 현상을 이용하여 입체상을 재현하는 기술을 홀로그래피라고 한다.

사실 그 입체상은 어디나 존재하면서 동시에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간섭성 빛이 모임으로써 다른 것, 즉 입체의 환영이라는 제3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 두뇌에 있는 각각의 신경 단위, 개미집에 있는 각각의 개체는 저마다 정보를 통합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의식, 즉 〈입체적인 사고〉가 나올 수 있으려면, 신경 단위가 모이고 개체가 모여서 집단을 형성해야 한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서

 

개미 1 |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세욱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0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리디북스] 개미 1
개미를 관찰해 보면, 저 자신의 생존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외부의 요구에 따라 행동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몸통에서 머리가 잘려 나가면 그 머리는 적의 다리를 물거나, 곡물 알갱이를 자름으로써 여전히 쓸모 있는 존재가 되려고 애를 쓴다. 가슴이 잘려 나갔을 때도 그 가슴은 적이 쳐들어오는 입구를 막으려고 기어간다.

자기희생인가? 공동체에 대한 광신인가? 집단주의 때문에 생긴 미련함인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개미 역시 외톨이로 살아갈 줄 안다. 겨레를 필요로 하지 않고, 겨레에 반역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이는 걸까?

개미 1 |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세욱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0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윤리적 관점에서 봤을 때 유일신 사상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최악의 사상 중 하나였다는 주장도 있다.
유일신교는 인간의 도덕적 기준을 개선하는 데 별로 기여한 게 없다. 단지 힌두교도는 여러 신을 믿는 반면 무슬림은 유일신을 믿기 때문에 무슬림이 힌두교도보다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독교도 정복자들이 이교도인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보다 더 윤리적이었던가? 유일신교가 한 가지 확실하게 했던 일은, 사람들을 이전보다 훨씬 더 편협하게 만들어 종교적 처형과 성전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것이다. 다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신을 섬기고 다양한 의식과 의례를 수행하는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일신교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이야말로 유일한 신이며 이 신은 보편적인 복종을 요구한다고 믿었다. 그 결과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세계로 확산될 때마다 십자군과 지하드, 종교재판과 종교적 차별도함께 늘어났다.
28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테러범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납치해서 우리에게 불리하도록 활용한다. 그 결과 우리는 스스로 머릿속 무대 위에 테러 공격을 반복해서 시연한다. 9.11 이나 최근의 자살 폭탄 테러를 떠올리는 것이다. 테러범들이 100명의 사람들을 살해하면, 1억 명의 사람들이 나무 뒤 어딘가에 살인범이 잠복해 있을지 모른다고 상상한다. 시민들은 각자 자신의 상상력을 테러범들로부터 해방시키고, 위협이 실제로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상기할 책임이 있다. 미디어가 테러에 집착하고 정부가 과잉 대응하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속의 테러인 것이다.
따라서 테러의 궁극적인 성패는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가 테러범들에게 상상력을 납치당하고, 우리 자신의 두려움에 과잉 대응하면,
테러리즘은 성공한다. 반대로 우리가 테러범들로부터 우리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균형 있고 침착하게 대응하면 테러리즘은 실패하게 돼 있다.
25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테러범들은 그토록 큰 야심을 품을 수 있을까? 테러를 감행한 후에도 적은 공격당하기 전과 같은 수의 병사와 탱크와 선박을 그대로 갖고 있다. 적의 통신망과 도로, 철도도 별 손상이 없다. 공장과 항구, 기지도 그대로다. 하지만 테러범들은 적의 물리적 힘에는 거의 흠집을 내지 못하더라도, 공포와 혼란을 일으키면 적이 멀쩡한 힘을 잘못 사용하고 과잉 반응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격앙된 적이 막대한 힘을 자신에게 나쁜 방향으로 사용하면, 테러범 자신들이 조장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과격한 군사격, 경치적 폭풍을 자초할 것으로 계산한다. 폭풍이 일어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속출한다. 적이 실수를 거듭하고 잔혹 행위를 저지르면서 여론이 흔들린다. 결국 중립적인 인사들마저 입장을 바꾸면서 힘의 균형이 이동한다.
 이렇게 보면 테러범은 도자기 가게를 부수려는 파리를 닮았다.
파리는 너무나 미약해서 찻잔 하나도 혼자서 움직일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파리 한 마리가 도자기 가게를 부술까? 파리는 먼저 황소를 찾아낸 다음 귓속으로 들어가서 윙윙대기 시작한다. 황소는 두려움과 분노로 미쳐 날뛰면서 도자기 가게를 부순다. 바로 이런 일이 9.11 이후에 일어났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미국이라는 황소를 자극해서 중동이라는 도자기 가게를 파괴했다. 이제 테러범들은 도자기 잔해 속에서 번성하고 있다. 세상에 성마른 황소들은 널렸다.
24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