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보면 IS 조직원들도 실제로는 순교하면 천국에 간다고 믿지는 않는다고 결론 내리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니 그들이 폭격을 맞아 살해됐을 때 분노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면 왜 그들 중 일부는 폭탄 벨트를 두르고 자폭해 자신을 산산조각 내는 걸까?
십중팔구는 그들이 두 가지 상호 모순된 이야기를 고수하면서 비일관성에 대해서는 그리 깊이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답일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 뇌 속의 어떤 뉴런들은 서로 말도 섞지 않는다.
프랑스 공군이 시리아와 이라크의 IS 근거지를 폭격하기 8세기전에 또 다른 프랑스 군대가 중동을 침공한 일이 있었다. 후대에 ‘일곱 번째 십자군‘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성왕聖王 루이 9세가 이끈 십자군은 나일 계곡을 정복하고 이집트를 기독교의 요새로 바꿔놓으려 했다. 하지만 이들은 만수라 전투에서 패했고 십자군 병사 대부분은 포로가 되었다. 당시 십자군에 가담했던 기사 장 드 주앵빌은 훗날 회고록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그들이 전투에 패해 항복하기로 결정했을 때 자신의 부하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싸우다 죽어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그래야 우리가 천국에 갈 것 아닌가." 주앵빌은 심드렁하게 "우리 중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써놓았다. 그들이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이유는 설명하지 않는다. 어찌됐든 그들이 프랑스의 안락한 성을 떠나 중동에서의 그 길고 위험천만한 모험을 찾아 나선 것은 대체로 영원한 구원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 아니던가. 그렇다면 왜 천국의 끝없는 지복을 누릴 수도 있을 순간에 스스로 무슬림의 포로가 되는 길을 택했던가? 구원과 천국을 열렬히 믿었던 십자군도 결정적 순간에는 위험을 피하는 투자전략을 택했던 게 분명하다.
4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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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문제는 악이 실제 삶 속에서는 반드시 추악하지는 않다는데 있다. 악은 사실 대단히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 이 점에 관한 한 기독교는 할리우드보다 현명했다. 전통적인 기독교 미술에서는 사탄을 대단히 매력적인 정부婦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탄의 유혹에 저항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파시즘에 대거하기가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파시즘의 거울로 자신을 들여다보면 추악한 것이라고는 조금도 눈에 띄지 않는다. 1930년내에 독일인들이 파시즘의 거울로 자신들을 봤을 때는 독일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민족으로 보였다. 지금 러시아인들이 파시즘의거울을 보면 러시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이 파시즘의 거울을 보면 이스라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그러면 그들 모두 그 아름다운 집합체 속에 자신도 빠져들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파시즘‘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fascis‘에서 나왔다. ‘막대 다발‘이라는 뜻이다. 세계사에서 가장 흉포하고 살인적인 이데올로기치고는 별 매력 없는 상징처럼 들린다. 하지만 여기에는 깊고 사악한 의미가 있다. 막대 하나는 대단히 약하다. 누구나 쉽게 부러뜨릴 수있다. 그렇지만 여러 개를 다발로 묶으면 부러뜨리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는 각 개인은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집단으로 한데뭉치면 대단히 강력하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파시스트들은 어떤 개인보다도 집단의 이익이 특권을 갖는다고 믿으며,
어떤 하나의 막대도 다발의 결속을 깨려 들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한다.
4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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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은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강화할 뿐 아니라 믿음에 요구되는 다른 모든 책무를 대체할 때가 많다. 인류가 믿어온 대부분의 거대한 이야기가 설정한 이상 理想은 대다수 사람은 완수할 수 없는 것들이다.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이 조금의 거짓이나 탐욕도 없이 십계명을 곧이곧대로 지킬까? 지금껏 얼마나 많은 불교도가 무아의 경지에 이르렀을까? 얼마나 많은 사회주의자가 실제로 필요한 것 이상은 취하지 않은 채 최선을 다해 일할까?
도저히 이상에 맞춰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해결책으로 희생에 의지한다. 
고대와 마찬가지로, 21세기에도 인간의 의미 추구는 희생의 연속으로 끝날 때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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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 개미 2
질서

질서는 무질서를 낳고 무질서는 질서를 낳는다. 이론상으로는,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 계란을 휘저으면 오믈렛이 다시 계란의 형태를 취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 오믈렛 안에 무질서를 많이 넣으면 넣을수록 최초의 알이 질서를 되찾을 기회는 점점 많아질 것이다.

결국 질서란 무질서의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우주가 확장되면 될수록 점점 더 무질서한 상태로 빠져 든다. 무질서가 확장되면 새로운 질서들을 낳는다. 그 새로운 질서들 중에 최초의 질서와 똑같은 것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바로 당신 앞에, 공간과 시간 속에, 혼돈에 가득 찬 우리 우주의 끝에 태초의 빅뱅들이 존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개미 2 |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세욱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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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 개미 2
파킨슨 법칙

파킨슨 법칙(같은 이름의 파킨슨병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 따르면, 어떤 기업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점점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고용하면서도 급료는 과다하게 지급하게 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고위 간부들은 강력한 경쟁자들이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위험한 경쟁자들이 생기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능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또 사람들이 반기를 들 생각을 못 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급료를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배 계급들은 영원한 평온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개미 2 |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세욱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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