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보면 IS 조직원들도 실제로는 순교하면 천국에 간다고 믿지는 않는다고 결론 내리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니 그들이 폭격을 맞아 살해됐을 때 분노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면 왜 그들 중 일부는 폭탄 벨트를 두르고 자폭해 자신을 산산조각 내는 걸까?
십중팔구는 그들이 두 가지 상호 모순된 이야기를 고수하면서 비일관성에 대해서는 그리 깊이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답일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 뇌 속의 어떤 뉴런들은 서로 말도 섞지 않는다.
프랑스 공군이 시리아와 이라크의 IS 근거지를 폭격하기 8세기전에 또 다른 프랑스 군대가 중동을 침공한 일이 있었다. 후대에 ‘일곱 번째 십자군‘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성왕聖王 루이 9세가 이끈 십자군은 나일 계곡을 정복하고 이집트를 기독교의 요새로 바꿔놓으려 했다. 하지만 이들은 만수라 전투에서 패했고 십자군 병사 대부분은 포로가 되었다. 당시 십자군에 가담했던 기사 장 드 주앵빌은 훗날 회고록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그들이 전투에 패해 항복하기로 결정했을 때 자신의 부하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싸우다 죽어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그래야 우리가 천국에 갈 것 아닌가." 주앵빌은 심드렁하게 "우리 중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써놓았다. 그들이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이유는 설명하지 않는다. 어찌됐든 그들이 프랑스의 안락한 성을 떠나 중동에서의 그 길고 위험천만한 모험을 찾아 나선 것은 대체로 영원한 구원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 아니던가. 그렇다면 왜 천국의 끝없는 지복을 누릴 수도 있을 순간에 스스로 무슬림의 포로가 되는 길을 택했던가? 구원과 천국을 열렬히 믿었던 십자군도 결정적 순간에는 위험을 피하는 투자전략을 택했던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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