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달
고등 포유류의 경우, 임신 기간은 보통 18개월이다. 특히 말의 경우가 그러해서, 망아지는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장해서 나온다.
그런데 인간의 태아는 머리통이 아주 빨리 자라기 때문에 아홉 달이 되면 어머니 몸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더 이상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될 것이다. 결국 아기는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채 자립할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난다. 태아가 밖에서 보내는 첫 아홉 달은 어머니 배 속에서 보낸 아홉 달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액체 속에 있다가 공기 중으로 옮겨 가는 것뿐이다. 아기가 공기 중에서 첫 아홉 달을 보내기 위해서는 태아 때처럼 아기를 보호해 줄 또 다른 배가 필요하다. 그것은 심리적인 배이다. 아기는 어머니 배 속에서 나오는 순간 갑자기 달라진 환경 속에 놓이게 된다. 아기는 마치 산소 텐트 속에 들어가야 하는 중화상자(重火傷者)와 다름없다. 어머니와의 접촉, 어머니의 젖, 어머니의 촉감, 아버지의 입맞춤 등이 아기를 보호해 주는 산소 텐트인 셈이다.
생후 9개월 동안 아기가 자기를 감싸서 보호해 줄 견고한 고치를 필요로 하듯이, 노인도 임종을 맞기 전의 9개월 동안 자기를 감싸 줄 심리적 고치를 필요로 한다. 그 9개월은 노인이 초읽기가 시작되었음을 본능적으로 깨닫는 아주 중요한 기간이다. 노인은 자기 생애의 마지막 아홉 달을 보내면서 마치 스스로를 출발점으로 되돌리듯이 자기의 지식과 늙은 살가죽에서 벗어나 생후 얼마 동안의 성장 과정을 역으로 되밟는다. 인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노인은 아기나 다름없다. 죽을 먹고 기저귀를 차는가 하면, 이가 빠지고 머리숱이 적어지며,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중얼거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