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가지각색의 부조화스럽고 독립적인 개체들이 모인 조직체라고 추측했다. 나는 성격상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절대 옳다면 오직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 내가 인간의 근본적이고도 완전한 이중성을 인지하게 된 것은, 나 자신 안에 내재된 도덕적인 측면을 통해서였다. 내 의식의 영역 안에 존재하는 두 가지 성격 가운데 그 어떤 것도 나지만 그것은 단지 내가 철저하게 양쪽 모두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특정한 성격적 결함이라기보다는 성공을 위한 엄격한 기준들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선과 악의 영역을 극명하게 나눈 이유도 역시 그 때문일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엄격한 삶의 법칙에 대해 깊이 천착하는 버릇이 생겼다. 삶이란 종교의 뿌리이자 가장 거대한 고통의 원천 중 하나이다. 나는 이중인격자이기는 하나, 결코 위선자는 아니다. 내 이중성 어느 쪽이든 극도로 진지하기 때문이다. 절제심을 버리고 치욕 속으로 뛰어드는 나 또한, 밝은 빛 속에서 지식을 넓히거나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나만큼이나 나 자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간디께서는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예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이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나갈 수 있으므로 값비싼 양탄자나 다른 호화 가구들, 맛있는 요리 또는 그리스식이나 고딕 양식의 주택 등을 살 돈을 마련하는 데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집을 마련하고 나서 농부는 그 집 때문에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실은 더 가난하게 되었는지 모르며, 그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생활필수품을 마련한 다음에는 여분의 것을 더 장만하기보다는 다른 할 일이 있는 것이다. 바로 먹고사는 것을 마련하는 투박한 일에서 여가를 얻어 인생의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들은 사치품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수많은 원시적인 즐거움의 면에서는 가난하기 짝이 없다.

왜 우리들은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 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내일의 아홉 바늘 수고를 막기 위해 오늘 천 바늘을 꿰매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지만 대체 어떤 흔적과 영향을 남기고 있을까요? 무엇이 옳다는 걸 증명하고 있는 것일까요? 일에 지나치게 몰두 하는 사람들은 지우개와 비슷해집니다. 앞으로 끝없이 나가지만 그들이 지나온 길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