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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베이비
김의경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3월
평점 :
합계 출산율 0.84명(2020년 기준) 으로 ‘세계 최저’ 출산율, 2006년 세계인구포럼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할 국가’로 지목되어 2750년에 대한민국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되기에 이르기까지(p.173) 우리 사회의 저출생 문제는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문제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세계 3대 난임센터 중 하나인 대한민국의 난임병원 아기 천사병원은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아기를 갖고자 하는 부부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p. 173). 이 두 가지 충돌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책을 읽는 내내 고민이 거듭되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이르는 과정 내내 여성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가부장제와 의료산업의 새로운 이윤 추구를 위한 발빠른 대처 방식의 합작품으로 ‘난임 클리닉’ 시장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임으로 고통받고 있는 인구가 늘고 있다거나 난임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지원 문제 등에 대한 논의는 별도로 하고 난 이 책을 통해서 주목해서 읽은 부분은 왜 임신, 출산 과정의 모든 문제, 난임의 문제까지 여성에게만 그 책임과 역할을 묻거나 요구하냐는 거였다. 난임으로 인해 상담 받거나 그 시술의 직접적 대상도 일차적으로(당연하게) 여성이었다. 의학적으로 명백히 남성/ 남편에게 원인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생식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인 걸까. 남자들은 애 생명을 만드는 신성한 순간에 체면 따위를 생각하는 걸까.’ (p.10)
정자 채취를 하러 갔던 병원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을까 싶어 도망쳐 나오는 문정의 남편이나 “아버지 아들 씨 없는 수박이래. 그러니까 지은이한테 뭐라고 하지 마.”(p.52)라는 말을 듣고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집으로 내빼던 지은의 시아버지. 고통스러운 난자 채취과정으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나 몰라라하며 손 한번 잡아주는 것 조차 인색한 남편들(p.9)은 급기야 “당신 감정 헤아리고 받아주는 게 나한테는 제일 힘들”다(p.94)며 호소한다.
여성들은 좋아하는 커피도, 술도 끊고 건강한 난자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동안에도 술, 담배 조차 조절을 못하는 남편들의 비협조적 행태들은 기본이다. 이 소설 속에 어느 남편도 난임 병원을 다니는 동안 자신의 일상 중 사소한 거라도 변화와 절제를 한 이는 한 놈도 없었다. ‘나의 몸은 어머니의 자궁 밖 아버지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다‘며 “지금껏 유전자를 전달하는 역할만 담당한 남성에게 태어날 아이의 건강을 위한 새로운 임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학자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임소연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p.85)
<헬로베이비>에서 또 새로운 관점을 고민하게 된 인물로는 <37세 윤소라>였다. 미혼여성으로 더 이상 난소기능이 저하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난자를 동결하여 나중에 본인이 임신, 출산을 결심하게 될 때 그 난자를 통해 아이를 만나겠다는 여성. 나는 그 발상이 놀라웠는데 찾아보니 의학적인 목적이 아닌(사회적 난자 냉동이라고 한다) 난자 냉동이 시작된 지 10년이 되어간다고 한다.(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본격화). “21세기 등장한 난자냉동기술이 20세기 개발된 피임약에 버금가는 여성해방의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p.97)고 임소연 작가는 위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그러한가? 과학이 여성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대상화시켰을 때 오히려 그 과학은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의 아니라 더욱 교묘하게 여성을 착취하고 억압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헬로베이비>에서 깊게 감동받은 부분은 같은 아픔을 지닌 여성들끼리의 공감과 돌봄의 장면들이다. 그녀들은 ‘헬로베이비’라는 단톡방을 통해 단순히 정보만을 공유하는 사이가 아니라 절망적인 순간과 극한의 고통 앞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눈물을 흘려줄 주 아는 관계를 이어갔다.
“언니, 미안해. 언니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p.197)
'아내의 배 속에서 아기가 수도 없이 사라져도 모르는‘(p.199) 남편 대신 그녀들은 정효의 곁을 지키며 변호사를 자처하고 울며 자지러지는 아기에게 자신의 젖을 물리고, 정효의 손을 잡아준다. “좌절과 실망의 순간, 서로를 돌아보며 손잡아주는 여자들의 이야기”라며 추천하는 서유미 작가의 소개글이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