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결과가 아닌 것은 장점이나 실패로 간주될 수 없다. - P153

사비나에게 산다는 것은 보는 것을 의미한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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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들! 거기 앉게. 날 위하는 말인 줄이야 왜 모르겠나만, 그런 말은 나를 알아주는 것이 아닐세. 내 스승이신 다산 선생님께서는 이곳 강진에 귀양 오셔서 스무 해를 계셨네. 그 긴 세월에 날마다 저술에만 몰두하시느라, 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지. 열다섯 살 난 내게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三勤)의 가르침을 내리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네. 
"나도 부지런히노력해서 이를 얻었느니라. 너도 이렇게 하거라." 몸으로 가르치시고, 말씀으로 이르시던 그 가르침이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어제 일처럼 눈에 또렷하고 귓가에 쟁쟁하다네.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이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공부를하지 않는다면 그날로 나는 죽은 목숨일세. 자네들 다시는 그런 말 말게.
삐죽대던 입들이 쑥 들어갔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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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두 마디만 잘하면 그럭저럭 살아갈수 있다고,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규칙은 있다. 한 번에 하나씩. 설탕과 소금은 같이 넣지 않는 법. 사내는 늘 궁금했다. 고맙습니다‘는설탕일까, 소금일까.
- P22

하얗게 늘어선 시트 중 간호사는 팔 번 앞에 선다. 간호사가 시트한쪽 끝을 걷자 발 한 쌍이 얼굴을 내민다. 크고 늙고 못생긴 발이다.
넙적하고 울퉁불퉁하고 딱딱하다. 일생 쟁기를 끈 소의 발 같다. 어머니의 발이다. 이상한 확신이다. 사내는 어머니의 발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머니에게 발이 있다는 사실도 방금 알았다. 이 자명한 사실이 사내를 놀라게 한다.
발의 야만스러운 물질성이 사내의 울대뼈 아래 단단하게 꾸려진 슬픔의 보따리를 툭 건드린다. 차가운 슬픔이 폭풍처럼 사내를 후려친다. 사내의 울대뼈가 흐느낀다. 그제야 어머니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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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뒤에도 삶은 계속 되었다. - P375

마침내 모든 것은 확인되었다. 동화는 잠시 중단되었다가도 결국엔 다시 시작된다. 진실은 말해지기 마련이다. 
매번 다른 방식으로.
- P467

바다는 잔잔했다. 해안을 찰싹찰싹 때릴 뿐이었다. 마리아는 청바지를 입은 채 바닷물이 무릎까지 찰 때까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잠시 멈추어 서더니, 세 번에 걸쳐 카슈비아 말로 뭔가를 외치며, 양팔을 커다란 그릇처럼 만들어 내밀었다. 그러자 넙치가, 납작하게 생긴, 몇천 살은 먹었음직한, 시커멓고 거죽에 돌기가 돋은 예의 그 주름투성이 넙치가, 아니, 이제 더 이상 나의 넙치가 아닌 그녀의 넙치가 아주 새로운 넙치인 양 바다로부터 풀쩍 그녀의 품을 향해 뛰어들었다.
- P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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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무슨
소리라도 한번 들려라
살포시라도

외롭구나
무슨
벌레라도 
한 마리
나를 물어라
너무 외롭구나

생각하고 생각하다.
생각이 막힌 곳
문득 생각하니

내 삶이란 게 간단치 않아
온갖 소리 갖은 벌레 다 살아 뜀뛰는
무슨 허허한 우주

쓴웃음이
한번

뒤이어
미소가 한번

창밖의 마른 나무에
공손히 절 한번

가랑잎 하나
무슨 종교처럼 진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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