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 우리를 교묘하게 조종하는 경제학에 관한 진실
조너선 앨드리드 지음, 강주헌 옮김, 우석훈 해제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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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가 휘청였을 때, 유명한 일화가 존재한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앞에서, 왜 이런 세계적으로 경제가 휘청일 만한 사태가 일어났는지를 수많은 경제 석학들이 참여하여 설명을 해주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렇게 질문했다.


"왜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었으면서도 이 사태를 막지 못했던 것이죠?"


이 질문에 모든 경제학자들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사후약방문"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현대 경제학의 위치는 중세시대 의학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즉, 질병이 퍼지거나 사건이 지나간 후에 대한 대응은 가능하지만 이것을 예방하거나 사건이 눈 앞에 닥쳤을 때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수준이란 의미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대 경제학의 무능을 넘어서, 오만한 모습들을 매우 세세하게 잡아낸다. 특히 프리드먼, 하이에크 등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와 '정통 경제학'에 대한 날 선 비판을 보여준다.


이들 경제학은 수학을 통해, 인간 경제와 행동의 가치 패턴을 모두 계량화하고 계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들은 '사회과학'이 항상 걸려 넘어졌던 부분. 즉 물리학과 수학처럼 완전한 정답을 증명할 수 없다는 뼈아픈 약점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각종 수학적 접근을 경제학에 가지고 와서, 인간 경제와 사회, 행동 패턴 등 모든 것을 계산하려 했으며 이에 대한 확고한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경제학이 유일하게 '사회과학'이 아닌 '순수과학'이 될 수 있는 학문이라 자부했다.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심리학이 이러한 함정에 빠져 있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도덕학이지 자연 과학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경제학은 내적 성찰과 가치 판단을 사용한다." -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中




하지만,  작금의 세계 경제를 보면 알 수 있듯, 경제학은 자연의 단순 법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가치 판단이 끊임없이 개입하는 세계이다. 경제학은 가치 개입이 없이 순수한 영역인 척 포장했으나, 거기에는 경제학자들의 끊임없는 편견, 정치적 가치, 도덕적 관념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경제학의 아버지,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조차 본인은 《도덕 감정론》을 지은 도덕 철학자로 남기를 원했다. 그만큼, 경제학은 단 한순간도 인간의 윤리, 정치, 문화와 나누어져 생각할 수 없는 개인적인 가치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세계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최대한 회피하고 무시했다. 그들은 모든 것은 계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것으로 봤다. '불확실성'의 문제는 언제나 존재했고, 그들의 예상 범위를 벗어난 '블랙 스완'이 나타날리 없다고 확신했지만 어느 순간 블랙 스완은 그들 곁에서 그들의 행동을 비웃으며 나타나곤 했다.




"경제학자들이 자신의 주장에 내재한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견해에 침묵한다는 걸 보았다. 그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과학적으로 보이고 싶은 경제학자들의 욕심이다." -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中



주기적으로 그러한 문제들이 터질 때마다, 정통 경제학은 스스로의 이론을 수정하고 반성할 수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길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애써 부정하고 무시했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 사실 기존의 방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걷는 다는 것은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새로운 방식의 실패는 고스란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오는 반면, '정통 경제학'이란 아성은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경제학자 본인의 가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정통 이론을 포기한다는 것은 직접 판단하며, 사태가 악화되거나 경쟁자가 더 좋아지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을 떠안겠다는 뜻이 된다." -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中




유명한 금융 공학자, 나심 탈레브는 《스킨 인 더 게임》에서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금융업계와 그들을 비호하는 이론적 학파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의 무책임함에 대해 그들을 사기꾼이라 일컬으며 비판한 적이 있다. 


실제로 2008년 리먼 사태는 명확한 책임 소재가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에게 두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거대한 부와 편안한 노후를 보장해줬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는 이 사태에 대한 분노로 인해 일어났으며, '정통 경제학'이 말하는 시장 경제의 자유란, '기업과 부유한 자를 위한 사회주의'에 불과하다고 비판을 받았다.


정통 경제학은 인간 사회의 불확실성과 우연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싶어했지만, 그러한 행동은 언제나 실패를 불러왔다. 그들이 이것을 계산할 수 있다고 착각할 수록, 주기적으로 불확실성과 우연의 문제는 인간 경제에 불행을 몰고 왔다.




"우리는 오만하게 행동하고, 지나치게 자신 있게 행동하며 우연의 신에게 저항한다. 오만은 언제나 응징으로 이어진다." -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中




무엇보다 저자는 경제학자의 오만함이 경제 문제에 대해 대비하고 기존 경제학의 허점을 수정하는 데 큰 걸림돌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다른 학문과 달리 경제학자는 자신들만의 상아탑을 너무 높게 쌓아 올린 나머지, 타 학문의 접근을 거부하는 측면이 크다. 그래서 보통 일반적인 학문들이 여러 다른 학문의 자료와 논거들을 인용하는 반면에, 경제학은 순수하게 자신들의 세계 안에서 자신들만의 논문을 인용하며 쉽게 순환 논증의 오류에 빠져들었다.


예를 들자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모순된 부분과 마주쳤을 때, 그들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과거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이 부분은 논할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넘겨버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없음을 알고 있고, 그러한 인간의 본성 때문에 정부를 불신하며,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합리적이지 않은 인간성'이 경제학자 본인들한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하곤 한다. 


사실 이는 거의 대부분의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문제인데. 어떤 것을 논할 때, 인간의 본성적인 면의 문제를 타인을 통해 자주 지적하는 경우가 많지만, 꼭 본인은 그 문제에서 빗겨간 상태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전쟁을 주장하는 자들은 자신이 최전선에 서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듯 선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슷하다.)


"나는 완벽히 합리적인 인간이며, 그러하기에 시장의 원리를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간은 그러하지 못하다.", 이것이 정통 경제학자들이 지니는 오만의 문제 그 자체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겸손한 경제학자가 등장하기를 기원하며 책을 갈무리하고 있다.




"낡은 정통 이론을 뒤엎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때 우리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질적인 거부감과, 불확실성을 계량화하겠다는 집요한 고집이다." -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中



지금 경제학은 어느 위치에 있는가?


왜 그들의 수많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와 경제는 왜 그토록 우리가 예측한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가?  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변수들은 전혀 통제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가?


이 책을 경제학이 물리학이나 수학처럼 완전한 순수과학이라고 자처하는 자만심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며 커다란 경종을 울리고 있다.


현대 경제학은 진실로 자기 반성과 고찰을 필요로 한다. 그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눈 뜨고 코 베이듯, 또다시 크나큰 경제 위기의 조류 속에 휩쓸려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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