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사유가 아니라 돌파다 -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가 죽음 직전 깨달은 인생의 법칙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경희 옮김 / 페이지2(page2)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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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냐고 묻는 당신에게

이 책의 백미는 이 글의 서문에 모두 실렸다. 톨스토이가 생각하는 모든 인생의 의문과 답이 이 책을 여는 글에 다 실렸다는 말이다. 나머지는 거기에 따른 설명과 이해를 풀어낸 것에 불과하다.

처음 여는 글을 읽었을 때 독자가 평소에 느꼈던 감정과 소용돌이치는 괴로움을 톨스토이 또한 느끼고 '치명적인 속병'처럼 앓았음에 반가움과 더불어 흥분이 되었다. 즉 "삶은 무엇이고,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밤낮 그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런 의문들은 마음만 먹으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며, 별거 아닌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시간이 없지만 내가 원한다면 쉽게 답을 낼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하며 지냈다. 그러나 그런 의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자주 떠올랐고, 끈질기게 답을 요구했다. 마치 한곳에 계속 떨어지는 잉크 방울처럼 어느새 마음속에 크고 시커먼 얼룩을 남길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는 삶이 멈췄다.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자지만 이런 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기에 삶은 그냥 멈춘 상태로 죽음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죽음이 두려웠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기 위해 방도를 찾아내며 또 다시 절박한 마음으로 삶이 무엇인지 탐닉했다.

그가 겪은 과정이 독자에게도 있었기에 흡수되듯 읽어갔다. 폴 고갱의 그림 가운데 긴 제목의 그림이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가 그것이다. 즉 이러한 물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질문하며 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 질문을 갈구하듯 절박한 심정으로 찾는 자가 있으니 바로 톨스토이였다.


그는 이런 삶의 의문들을 위대한 현인들과 인간의 지혜에서 찾았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에게서 허상적이며, 공허한 외침을 듣고서는 더 절망적인 상황으로 나아갔다. 지혜의 대가들이 내린 결론은 삶은 덧없고 허망하며,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자는 행복하고, 죽음이 삶보다 낫다. 그러니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궤변을 들었다. 처음엔 톨스토이 또한 솔로몬과 쇼펜하우와 같은 자들이 삶의 의문을 아주 정확하게 제기했다고 확신하며, 일반 대중들은 이 의문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단정까지 하며 비하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부터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별난 본능적인 애착에 끌리면서 오히려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이 더 평온하게 기쁜 마음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보게 된다. 즉 탈출구는 뜻밖의 곳에 있었는데 그것은 책이 아니라 삶에서 찾았다. 평생 힘들게 일하면서도 삶에 만족하고, 가진 것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는 살아가는 것이 편안해졌다. 머리로 쌓은 모든 지혜가 답하지 못한 질문에,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의 삶이 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귀족의 옷을 벗고, 손수 부츠를 꿰어 신고 밭을 갈며, 몸으로 살아 내기 시작했다. 아래에 그 한 대목을 싣는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책 속에서나 사람들이 전해 주는 이야기 속에서 깊이 탐구할수록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살아가는 것이 편안해졌다. 이렇게 2년이 흐르자 내 안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오래 전부터 내 안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변화였다. 부유한 지식인이었던 나와 같은 부류에 속한 사람들의 삶이 혐오스러워졌을 뿐 아니라, 모든 의미를 잃은 것이다. 우리의 모든 활동이나 논증, 학문, 예술이 그저 탐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안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보다는 땀 흘려 일해서 스스로 삶을 창조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바로 참된 삶이었다. 나는 이러한 삶에 부여된 의미야말로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였다. p.11


이어서 그는 인간이 자신만을 위해서 살면 불행해지고, 타인을 위해 살면 행복해지는 단순한 원리를 깨닫는다. 즉 이성적 의식은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너를 위해 살고, 자신보다 너를 더 사랑하기를 바라는가? 그 소원이 성취될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다. 모든 존재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고,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너와 모든 존재가 모든이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행복을 얻을 것이다. 모든 존재가 자신보다 다른 이를 더 사랑할 때만 네가 행복할 수 있다면, 살아 있는 존재로서 너는 자신보다 다른 존재들을 더 사랑해야 한다." p.102

소크라테스나 쇼펜하우어, 그 외의 많은 현인들은 모든 존재의 인생은 불행하고 무의미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도록 이끌었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단계 더 깊이 나아가자 그는 인생이 인간 속에 존재하는 이성의 법칙을 실현하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고, 각 개인이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봉사받는다는 이 법칙만 이루어진다면 모든 인간이 무한하게 커지는 최대의 행복을 얻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제목 그대로 『삶은 사유가 아니라 돌파다』는 깨달음을 얻은 그는 생각의 존재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넘어서 땀 흘려 일하며 스스로 삶을 창조하는 일에 적극 참여케 된다. 즉 오직 걷고, 일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삶은 고요해진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생각의 미로 속에서 탈출을 하게 되었다.

평생을 사유했으나 그 어떤 문장도 나를 구하지 못했다. 걷고, 일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삶이 고요해졌다.

Leo Tolstoy

마치 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하루 종일 밥도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생각만 해보니 아무 유익이 없었다. 배우는 것만 같지 못했다”는 말을 하듯이 인간은 사유의 동물이지만 사유 속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또한 배우는 일에만 몰두하고 한 발자국도 내 딛지 않으면 그 배움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로지 단순히 걷고, 땀 흘려 일하고, 사랑하며 살 때 삶은 이상한리만치 안정을 되찾는 것이다.

이 책은 톨스토이가 극심한 허무 속에서 써 내려간 『참회록』과, 그 사유가 더욱 깊어진 때 쓴 『인생론』에서 가려 뽑아 새롭게 엮어낸 책이다. 그가 고뇌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왜 뭔가를 원하거나 행하는가?" 또한 "나의 삶에 죽음도 파괴하지 못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하는 고민이 나에게도 문득 찾아온다면 톨스토이가 겪고 깨달았던 삶의 진정한 의미의 해답을 여기서 발견해 보면 좋겠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삶이 두려워 도망치려고 하면서도,

여전히 삶에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p.29

여는 글을 읽고는 그 다음 부터는 책과 씨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단순하게 읽으면 톨스토이가 전하고자 하는 인생의 맥락을 못 읽고 책을 덮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톨스토이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사소한 손짓부터 내면의 가장 깊은 곳까지" 보는 자이기에, 그가 마주대한 삶의 의문과 고민을 통해 영혼의 자유를 느껴봤으면 좋겠다. 그렇다.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한 그의 마음은 끝내 자살 충동까지 느껴, 혹시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봐 방도를 찾을 정도였다. 그에게 있던 부도, 명예도, 재능도 그를 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진리는 책이나 현인들의 말에서가 아닌 뜻밖에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찾게 되었다. 즉 삶이란 머리로 헤아려 풀어 내는 문제가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쳐 통과하는 과정인 것이다.

영화 인턴中 한 대사가 매우 인상적이다.

- 사랑하고 일하라, 일하고 사랑하라! 그게 삶의 전부이다.

- Work and love, love and work. That's all life.

어떤 책제목에서도 봤는거 같은데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기억하는데 바로 "먹고,일하고,사랑하라."이다. 꽃도, 짐승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행복하다. 오직 인간만이 삶의 이유를 잃고 헤메는데, 이유를 찾아 헤메기 보다 단순히 먹고 일하고 사랑할 때 인간은 행복감을 얻는다. 이게 바로 톨스토이가 만났던 참된 삶이었다. 이 책은 그저 삶이 따분하고, 삶이 무엇인가를 알 수 없고, 마음의 공허함이 있을 때 손에 들고 진지하게 읽으면 도움이 된다.

이 책의 한 문장

5년 전부터 마음속에서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회의의 순간들, 삶이 멈춰 버린 듯한 순간들이 찾아왔 고, 그럴 때면 당혹감을 느끼며 절망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은 이내 지나갔고, 나는 이전처럼 아무 일 없었다 는 듯 삶을 이어 갔다. 하지만 그런 혼란스러운 순간들은 늘 같은 모습으로 점점 더 자주 찾아왔다. 그럴 때는 또다시 삶 이 멈춘 듯 느껴졌고, "삶은 무엇이고, 어디로 향하는 것인 가?"라는 똑같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새는 하늘을 날고 먹이를 모으고 둥지를 지으며 살아갈 운명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새를 볼 때면 나는 기쁨을 느낀다. 염소와 토끼와 늑대는 먹이를 먹고 새끼를 낳아 기르며 살아갈 운명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동물을 볼 때면 나는 그 동물의 삶이 행복하고 의미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살아가야 하지만,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파멸하고 만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 동물과 다르다. 나는 인간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살 때 행복하고, 또 그런 삶에 의미가 있다고 확신한다."

_ 언젠가 행복할 사람은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중에서 P. 79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천체까지의 거리를 밝혀 냈고, 그 무게를 규정하며 태양과 별의 성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개인적 행복에 대한 요구와 그 행복을 부정하는 현실 세계의 삶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의 문제는 5,000년 전과 마찬가지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P.101

"우리는 한 인간의 내면에서 참된 생명이 완성되어 가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오직 자기 내면에서 참된 생명이 완성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뿐이다. 사람이 죽지 않아야 할 때 죽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리가 없다.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죽음이 꼭 필요할 때 비로소 죽는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필요할 때 비로소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P. 226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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