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진지하게 여기진 말아요 헤르만 헤세, 내면으로 가는 길 1
헤르만 헤세 지음, 배명자 옮김 / FIKA(피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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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보듯이 이 책은 진지함과 고독이라는 단어와 먼 유쾌한 이야기다. "모든 귀한 삶의 지혜들을 실현할 수 있는 건 오직 유머뿐이다"라고 말한 헤세의 말에서 보듯이 헤세는 삶을 무겁게만 바라보지 않았다. 삶이 주는 아픔이 그에게도 왜 없었겠는가? 그도 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고 아파하고 힘들어 했다. 그러나 그는 삶의 비극마저 유희로 승화시킬 줄 알았던 ‘고급 유머’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유머는 단순한 웃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가장 단단하고 성숙한 태도였다.

수준 높은 유머는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황야의 이리, 1927》

이 책은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미발표 산문과 시와 그의 곁에서 헤세를 지켜본 이들의 생생한 날것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히나 완성된 언어로 다듬어지기 이전의 헤세, 작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헤세가 담겨 있으니 기대감이 오른다. 그는 실로 고독의 작가가 아닌 매우 유쾌하고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처음 책을 열면 「작가와의 만남」에서 상당히 재밌는 에피소드가 적혀 있다. 자신을 초청한 클럽에 가서 책을 소개하며 시와 짧은 글을 읽으면서 문학의 밤처럼 독자들을 만날 줄 알았는데 클럽의 사람들은 전혀 그런 자들이 아니었다. 그저 재미있는 강연가를 통해 즐거움을 누리려는 시간 때움을 하는 자들이다. 그러니 서로 코드가 맞지 않았다. 시 몇 편을 소개하자 사람들은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은 그나마 괜찮았다. 대부분은 실망한 얼굴, 분노한 얼굴로 헤세를 쳐다보았고, 여섯 명 정도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행사장을 나가버렸다. 이어서 짧은 소설 하나를 읽어주겠다고 하자 다시 몇 명이 일어나 밖을 나갔다. 남은 사람은 대략 20명 정도였다. 최고의 작가를 모셔 놓은 곳이 엉망인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 헤세는 이 모든 것을 유쾌한 시선으로 그들을 대하고, 특히 초청한 클럽 회장과 부인과의 만남을 익살스럽게 풀어냈다. 재밌게도 그 집에는 앵무새가 있었는데 앵무새는 말하는 앵무새로서 이런 말만 할 수 있는지 헤세가 있는 동안 "맙소사 맙소사 맙소사" 만 되풀이 했다. 이 강연은 강연을 듣는 뜬금 없는 사람들과 그 뜬금함을 즐기며 황당해 하지 않는 헤세의 특유의 시선으로 기록된 글이다.


물론 헤세가 가진 유머나 유쾌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웃음 코드는 아니다. 그러나 노벨문학상을 거머진 대문호 헤세는 지식인으로서의 향유를 누리게 하는 '고급 유머'가 있다. 이 코드를 안다면 이번에 나온 미발표의 글들은 상당히 신선하다.

모든 유머 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역시 의도하지 않은 유머이다.

P. 335

균형이란 시를 보자!

1896년에 지은 시인데

헤세는 위트 있게 지구를 표현했다.

지구는 둥글고, 그래서 건강에 좋다.

지구가 각지고 뾰족했더라면

어떻게 우리가 이토록 편히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지구는 둥글지만 우리는 길쭉하다.

그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리.

우리가 똑같이 둥글었더라면,

자연 곳곳을 굴러다녔을 테니까. P. 239


헤세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의 인생도 함께 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독자는 그의 삶에 대해 최근에 알았지만 말이다. 최근에 읽은 책 가운데 모티브 출판사에사 나온 《안부를 전하며》라는 책을 보면서 헤세의 삶이 녹녹치 않음을 보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하루아침에 독일 언론은 그를 매국노, 배신자로 낚인 찍었다. 친구들이 등을 돌리고, 독자들은 증오 편지를 보냈으며, 서점들은 그의 책을 거부했고, 출판사 또한 원고를 거절했다. 같은 시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막내아들 마르틴 헤세가 중병에 걸리고, 아내 마리아는 조현병이 찾아왔다. 결국 그도 정신병이 찾아와 루체른 근교 요양원에 들어갔다. 이후 첫번째 부인의 아들은 중년에 이르러 자살을 한다. 헤세 또한 우울증이 깊어 권총 자살 충동이 일어나는 기질을 가졌는데, 이런 개인적인 내밀한 붕괴가 일어나고, 당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우울함도 깊었지만 이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특유의 또 다른 긍정과 웃음으로 이 모든 상황을 다 이겨내고 자연사하였다.

"나는 다시 양극 사이에서 잡아당기는 힘을 느꼈다. 현실과 아름다움 사이의 간극 위에서, 가느다란 다리가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바로 유머였다. 그렇다, 유머가 있으면 견딜 수 있었다. 기차역조차도, 병영조차도, 심지어 문학 낭독회조차도."

《뉘른베르크 여행》, 1927

삶의 고통이 겹칠 때 이겨낸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는 세번의 결혼 생활과 더불어 마지막 아내와의 헌신적 사랑과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으려고 시도를 하며 살지 않았나 싶다. 독일 작가는 진지하다는 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앙드레 지드'가 말하듯 "헤르만 헤세는 그렇지 않으며, 그는 냉소나 비통함 없이, 쾌활한 존엄성과 솔직한 자기 아이러니를 통해 완벽하게 자기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 줄 아는 그런 자였다." P. 395

이 책에는 여러 편의 시가 나온다. 글도 글이지만 시 속에 함축된 그의 유머를 보면 입가에 웃음을 살짝 띄게 만든다. 이게 바로 고급 유머인가보다.

그리고 이 책에는 "남들이 본 헤세, 헤세가 모르는 헤세"의 이야기가 나온다. 헤세 곁에서 헤세를 지켜 봤기에 헤세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머니의 편지와 일기에 등장하는 일화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이 뭔지 보여준다. 그리고 한 일화를 보면 친해지고 싶지 않는 한 남자로부터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은 얘기가 나온다. 끝내 이 사람과의 식사를 거절하는데 그 내용이 정말 익살스럽고 헤세스러움을 본다.

식사를 초대한 남자에게 "미안합니다. 불행히도 갈 수가 없네요"하며 거절했다.

"왜 안 되십니까?"

"쉬지 않고 일하는 기간이 있는데, 목요일이 그중 하루입니다!"

"그럼 금요일에 오세요!"

"그날도 안 됩니다. 그때는 시간을 낼 수 없을 만큼 아주 철저히 쉬기 때문입니다!"

거절도 멋지게 할 수 있다니 대단한 능력자다.


이와 같이 이 책은 수록된 글들이 길지 않다. 어느 곳을 펴고 읽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짧고 강렬한 글 한 편 속에는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려 주는 울림이 있다. 삶이란 거세 파도를 마주할 때, 우리는 웃음을 사치라고 여기며 침울 모드로 변한다. 그러나 헤세는 이때가 그때야말로 유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기답게 사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향한 너그러운 웃음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니체와 간디, 탈무드는 이런 말을 했던가?

★환하게 웃는 자만이 현실을 가볍게 넘어설 수 있다. 맞서 이기는 게 아니라, 유머러스하게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 니체

★나에게 유머를 즐길 수 있는 센스가 없었다면, 자살하고 말았을 것이다. - 간디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이 웃는다. 인간 중에서도 현명한 사람일수록 유머가 넘친다.

인생을 좀 더 가볍게 여기고 싶을 때 이 책으로 달려와 위로를 받으면 좋겠다.


이 책의 한 문장

나는 예술에서 늘 장난기를 즐겼고, 소년과 청년 시절에도 대개는 오직 나만을 위해 아주 즐겁게 일종의 초현실적인 시를 자주 썼으며, 지금도 여전히, 예를 들어 잠못 이루는 새벽에, 그렇게 한다. 물론 비누 거품처럼 금세 사라지는 그 구절들을 기록해 두진 않는다. P. 234

세상이 없는 듯이 세상에 살기, 법을 존중하면서도 법을 넘어서기, ‘소유하지 않는 듯이’ 소유하기, 포기하지 않는 듯이 포기하기, 자주 인용되고 사랑받는 이 모든 귀한 삶의 지혜를 실현할 수 있는 건 오직 유머뿐이다. P. 314

시인 헤르만 헤세는 같이 있기 아주 불편한 사람들과 한자리에 있었다. 한 지인이 적당한 기회에 그를 따로 불러 물었다. “이렇게 말을 많이 하시다니, 정말 놀랍네요. 이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맞습니다.” 헤세가 대꾸했다. “그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나는 그들 얘기를 듣지 않으려고 계속 말하는 겁... P. 368

독일 작가들 대부분은 자기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냉소나 비통함 없이, 쾌활한 존엄성과 솔직한 자기 아이러니를 통해 완벽하게 자기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 줄 압니다. P. 395

쳅터 2, 어쩌다 한 번씩 쓴 농담 시

가르침 (1927)

사랑하는 소년아 들어라, 인간의 모든 말은 결국 어느 정도 사기다.

그래서 우리는 기저귀를 찼을 때 가장 정직하고 그다음 나중에 무덤 속에서 정직하다.

그때 우리는 조상들 앞에 무릎을 꿇고 마침내 현명하고 차갑고 명료해져 창백한 뼈로

진실을 말하고 어떤 이들은 차라리 거짓을 말해 다시 살고자 하리라.

노인이 말하기를 (1948)

고귀한 아이야,

엄밀히 말해 우리 인간은

가련한 원숭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명심하렴.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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