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전하며 - 헤르만 헤세 x 빈센트 반 고흐 세계문화전집 1
헤르만 헤세.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홍선기 옮김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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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출간된 세계문화전집은 문학가와 예술가를 한 권 안에 나란히 놓는 시리즈로 구성되었다. 특히 독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 등 해외 유수의 박물관과 미술관, 학회 및 유족들의 협력 하에 시작된, 최초의 크로스 문화 전집 시리즈다. 시리즈 1권 『안부를 전하며』의 주인공은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20세기 독일 문학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대문호 《헤르만 헤세》와 미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하나인 네덜란드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다. 두 사람 다 아버지가 신학자였다. 헤세의 아버지는 개신교 선교사이자 신학자였고, 반 고흐 아버지는 네덜란드 개혁교회 목사였다. 둘 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학의 길을 갔고, 둘 다 그 길에서 실패했다. 그것으로 인해 둘 다 살고 있던 곳의 이웃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특이하게도 둘 다 정신질환을 앓았고, 둘 다 자살을 시도했다. 알다시피 반고흐는 정신병으로 발작과 자살 시도를 반복하다가 37세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도 헤세는 15세에 간신히 위기를 넘겨 간신히 살아남아 오늘날 우리에게 놀랍고 심오한 작품을 남겼다.

얼핏보면 삶의 궤적이 닮은 것 같은 두 사람이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하나였다. 바로 '안부를 전하는 방식'이다. 헤세는 세상을 향해 안부를 전했는데 수만통의 편지를 쓰고, 수만 권의 책에 서명하고, 낯선 독자에게도 수채와 엽서를 그려 보냈다. 무려 4만 4천 통의 편지에 답했다. 전 세계에서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편지의 양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내 '니논'의 도움을 받으며 '모든 편지에 답장한다'는 원칙을 끝까지 지켜냈다. 세상이 그를 배신자라도 불렀을 때도, 건강이 악화되어 심한 통증으로 손이 떨렸을 때도, 헤세는 편지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신학교 다을 넘은 소년은 이렇게 시인이 되었고, 시인으로서 성공했고, 그 성공의 무게 아래에서 안부를 쓰다가 눈을 감았다. 헤세의 성격과 세심함과 독자를 향한 그 사랑이 보인다. 그 위대한 사람과의 서면 교류는 편지를 받는 입장에선 저자의 숨결과 손길을 건네 받은 것이다. 독자는 수십년 전 연예인에게 싸인 받은 것을 한동안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와는 비교도 못할 안부를 독자들은 받았다니 집안의 가보이다.

반 고흐에게 안부는 주로 한 사람 동생 테오 반에게 전해졌다. 더 정확히는 생활비와 물감값을 요청하는 안부였는데 어느 날 35세 때는 마지막 한 줄에서 갑자기 편지 끝에 각주처럼 악수를 덧붙이며 안부를 전했다. 두 사람은 생전 약 1,300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 현재 동생 테오가 쓴 편지는 39통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반면 테오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는 667통이 있다. 형의 편지를 동생이 소중히 간직한 덕분이다. 그 편지들 끝에 'poignée de main'이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마운 마음을 글이라는 악수를 통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제발, 빨리 물감을 보내줘. 한 푼도 없어.

악수를 보내며. (poignée de main)

얼마나 고마웠을까? 책을 보면 동생 테오가 형을 위해 애쓴 흔적들이 적혀있다. 동생은 유럽에서 매우 큰 규모의 구필 화랑 지점장으로 적지 않은 연봉을 받았다. 그러나 테오는 한순간도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았다. 대신 10년 이상을 형 빈센트에게 생활비와 물감값, 캔버스값, 심지어 술값과 담뱃값까지 보내주었다.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하는 같은 행위는 이렇게 극명하게 달랐다. 한 사람의 안부는 세상에 닿아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렸고, 한 사람의 안부는 한 명에게 집중되어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는 안부이며 필요를 채우는 안부였다. 서문을 보면 이 부분을 이렇게 기록한다.

헤세에게 안부는 타인을 향한 관심과 의식의 표현이며, 상대방의 내면적 본질에 대한 인정이다. 반면 반 고흐에게 안부의 형식은 무엇보다도 부재하는 물리적 현존의 대체이며, 감정의 닻이었다. 즉 헤세는 편지와 문학 작품,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바깥세상으로 향하는 '문'이었다면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더더욱 내면의 혼돈에 굴복하며 스스로를 파괴해간 슬픔의 '문'이었다. p.11-12

책은 헤르만 헤세의 유년시절을 소개하며 그의 일생을 비춰나간다. •11월의 밤 튀빙겐의 어느 기억 •잠 못 이루는 밤들 •1900년 일기 •마지막 시들 등이 실려 있는데 여기를 보면 헤세의 내면을 살피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꼭 읽고 가야만 헤세의 감정선에 닿게 될 것이다. 이어 반 고흐의 일생이 간략하게 적혀 있고 편지가 기록되어 있다. •테오에게 쓴 편지 •여동생에게 쓴 편지 •어머니에게 쓴 편지 •폴 고갱에게∞고갱으로부터 쓰여진 편지가 나온다. 고흐의 세세한 마음과 고민과 가족들과의 친밀한 얘기가 상당히 잘 기록되어 있어 고흐를 바라보는 시각에 상당히 긍정적 역할을 해준다.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며 가족의 안부를 묻는 장면은 여느 가정과 다를바 없는 따뜻함을 안겨주고, 이모까지 안부를 묻고, 동생의 순산을 기뻐하는 안도하는 장면을 보면서, 고흐의 자살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아래의 편지는 고흐를 아는데 상당한 이해를 줄 거 같아 긴 글을 실어본다.

1890년 2월 19일(36세, Letter 855)

생레미드프로방스에서 어머니에게...

"사랑하는 어머니, 며칠째 어머니 편지에 답하려 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림을 그리느라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지 나버렸습니다. 어머니도 저처럼 봉어르와 테오를 많이 생각하고 계시겠지요. 순산했다는 소식이 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빌(여동생)이 남아 있어줘서 정말 다행입니다. 저보다 아버지 이름을 따서 지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요즘 아버지를 그렇게 자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 하지만 이미 그렇게 된 것이니, 곧바로 아기를 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침실에 걸 그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핀 큰 가지.

코르 소식 감사합니다. 편지하실 때 안부 전해주시는 것 잊지 마세요. 미나 이모가 그렇게 참을성 있게 고통을 견디고 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방금 빌과 어머니의 편지가 왔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더 일찍 써야 했는데, 말씀드렸듯이 꽤 바쁜 작업 때문에 머리가 글 쓰는 쪽으로 향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림 한 점이 팔린 뜻밖의 행운을 이용해서 파리에 가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테오를 방문하러. 이곳 의사 덕분에 왔을 때보다 차분하고 건강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병원 밖에서 어떻게 되는지 한번 시험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 어쨌든 최선을 바라겠습니다"(병원에 간 이유는 1888년 12월 23일 밤, 빈센트는 자신의 왼쪽 귀를 잘랐기 때문이다. ㅠ)

생각으로 껴안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빈센트가.

p. 286-288

마지막 안부 인사는 기존 악수를 하며 안부보다 특이하다. 즉 "생각으로 껴안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빈세트가"라는 안부 인사 안에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이상의 만남을 원하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1890년 7월 29일 새벽 1시 반에 밀밭에서 동생의 품에서 숨을 거둔것으로 보아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이듬해 동생 테오도 세상을 떠난다. 죽음이란 운명이 이 두 사람에게는 연결된 사랑의 애정일까?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특이한 편지 한 통을 또 보낸다. 우울함 가득한 안부를 전하여 혼잣말로 이런 말을 했다. 이것은 마음 속에 혼자만 알아야 될 것임에도 동생 테오에게만은 숨기지 않았다. 그 내용은 "여자 곁에 가고 싶다, 사랑이 없이는 살 수 없다, 여자 없이는"이라는 내용이다. 빈센트에게는 어떤 여성이 있었나 보다. 혼잣말로 다시 말하기를 "넌 그녀뿐, 다른 사람은 안 돼"라고 하는데 이러한 생각이 비합리적이라고 보며 접는다. 그런데 이내 "누가 우선이지, 논리냐 나냐. 옳든 그르든 나는 달리 할 수 없어. 여자를 찾겠어. 나는 사람일 뿐이야, 열정을 가진 사람, 여자에게 가야 해, 안 그러면 얼어붙거나 돌이 되거나, 어쨎든 주눅 들테니까." 말하며 한 여성을 찾았고 만났다. 그런데 그 여성은 다른 여성과 다른 것이 있었다. 아래 그 내용을 적어 본다.

한 여자를 만났어. 프랑스인들이 말하는 우브리에르,

일하는 여자. 많은 고생을 한 게 보였어,

삶이 그녀 위로 지나간 것이.

모든 여자는, 어떤 나이에서든, 사랑하고 선하다면, 남자에게 순간의 무한은 아닐지라도 무한의 순간을 줄 수 있단다. 그 여자는 나를 이용하지 않았어.

나에게 좋았어. 아주 착해어. 아주 상냥했어.

p. 218-219

이때 빈센트 나이 28세이다. 젊은 피가 끓어 오르는 나이며, 한 여성의 사랑 안에 들어가 사랑을 주고 받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빈센트에게 있어 여성은 사랑을 가진 선한자이며, 특히 상대를 이용하지 않는 자이다. 안부를 전하면서 이렇게까지 자신의 연애사를 고백하는 것이 특이하다. 그만큼 빈센트는 동생 테오에게 마음의 의지대상이다.

생각보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잘 읽히며, 두 사람의 인생의 한 부분에 독자가 끼어 들어가 편지를 주고 받는 안부가 되어졌다. 그리고 책을 통해 헤세의 그림과 고흐의 그림이 새롭게 다가오는 계기도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하드커버로 책을 출간하게 되어 소장품으로 놔둘 수 있어 좋았고, 그 안에 담긴 그림도 인쇄가 매우 잘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있어 안부는 어떤 의미였을까를 생각해 본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 안부는 '빛'이었다. 갚을 수 없는 빚. 사랑이 죄책감으로 변하고, 죄책감이 절망으로 변하고, 절망이 밀밭에서의 총성으로 변했다. 그러면 헤세에게 있어 안부는 '숨'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들이쉬고 내쉬는 것. 보내고 받는 것. 그 호흡이 62년 동안 멈추지 않았기에 85세까지 살았고, 4만 4천 통의 편지와 3천 점의 수채화를 남기게 되었다. 그런 뒤 헤세는 자신의 침실에서 잠들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안부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책이 출간되었다. 그저 소식을 전하는 안부였는데 여기엔 인간만이 가진 삶의 애환적 일생이 담겼다. 단순히 따뜻하게만 전해진 안부가 아닌 반 고흐에게는 '돈'이라는 생명줄을 얻는 수단이었다. 헤세에겐 단순히 독자에게 보낸 안부이기 보다는 삶을 살아내는 '생존 확인'으로서의 안부였다. 헤세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세상이 자신을 매국노로 부르고, 아내가 병들고, 아이들이 중병에 걸려 고통에 처한 가운데 어떻게 다정하게 답변을 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삶을 대하는 방식은 각자마다 다른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현재에도 안부를 전하며 살고 있다. 카톡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기기가 새로운 안부 문화를 만들지만 이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볍게 또는 진지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했던

대문호, 헤르만 헤세

자신을 구원하고자 글을 써야 했던

불멸의 화가, 빈 센트 반 고흐

이 책은 많은 점이 비슷했던 위대한 두 예술가의 생과 그 엇갈림이 주는 질문으로 구성되었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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