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 릴케 시 필사집 쓰는 기쁨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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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연금술사라고 불리는 자들이 있다. 브라질 대표작가 파울로 코엘료, 영국의 극작가인 셰익스피어. 그런데 그들과 나란히 어깨동무를 해도 될 정도의 인물이 있으니 바로 독일의 서정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이다. 그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볼프강 레프만은 ‘릴케 평전’에서 이렇게 평했다. 릴케의 시를 모두 읽고 난 후의 느낌을 레프만이 정확하게 적었기에 가져와 본다. 즉 “릴케는 신과 내세에 대한 믿음이 상실된 시대에 인간 실존의 의미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릴케는 자아의 고독과 소외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죽음과 삶의 화해를 추구한 시인이다. 그의 시를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인간 존재에 대한 심오한 질문들이 담겨 있다. 즉 우리 인생이란 무엇이고, 우리의 낮과 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용감하게 마주하며 보여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릴케는 "내가 애정을 쏟은 모든 것들은 / 풍요롭게 나를 쓰고 내버린다"라고 노래한다. 시간은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소모시킨 뒤 마침내 죽음이라는 구렁텅이에 빠트린다는 것이다.

추천하는 글에 시인 장석주님이 말하듯 「릴케는 인간의 창백한 내면에 상수로 남은 고독과 죽음, 사랑과 고통, 존재와 탄식을 관조하며 노래하고 있다는 그 표현이 정확하다」 릴케의 시를 읽으면 가슴이 요동치고, 영혼이 절규하는 느낌을 가지며, 몰입해서 읽을 때면 가슴에 밀려드는 경외감과 벅찬 환희로 몸이 떨릴 지경이다.

일단 독자의 마음을 흔들었던 시를 소개해 본다. 릴케가 쓴 시 가운데 현재 독자의 마음에 가장 마음에 와닿은 시이다. 어쩌면 이 시 하나로 인해 이 책을 읽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다.


인생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어요

인생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두면 축제처럼 될 터이니

모든 날을 그냥 그렇게 두세요

아이가 길을 걸으며

바람 불 때마다 날아드는 꽃잎을

선물처럼 그냥 두듯이

꽃잎을 모아 간직하는

일 따위 관심 없어요

아이는 제 머리카락에 들어와

붙잡힌 꽃잎 살며시 떼어내 풀어주고

사랑스러운 젊은 시절을 향해

새 꽃잎을 달라 두 손을 내밀어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찾아온다. 그래서 그 인생에 대해 모든 것을 이해해 보고자 철학서를 포함해 인간 실존에 관한 책을 밤새워 읽고 또 읽어 나갔다. 어떤 때는 한 철학자에 의해 인생의 숙제가 다 풀리는 것처럼 생각되어서 평온함을 얻었으나, 그러나 인생이란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그 인생이 마냥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마치 릴케가 매일 밤 욥기를 읽어 나가듯이 이해되지 않는 삶에서 그가 얻은 결론은 바로 "모든 날을 그냥 그렇게 두세요"라고 하였듯, 독자 또한 인생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모든 날을 그냥 그렇게 흘러가도록 놔두는 것을 배웠다. 『아이가 걸으며 바람이 불 때마다 날아드는 꽃잎을 선물처럼 그냥 두듯이』 말이다.

어쩜 이렇게 릴케는 인간의 깊은 절망과 괴로움과 아픔에 대해 실존에 대해 멋진 문장으로 표현해 낼까? 그것은 그가 저 깊은 바닥의 고통을 맛보았기 때문이리라. 릴케는 불안과 고독이 얼마나 깊었기에 매일 밤 욥기를 읽었을까. 그에 관해 알려면 그의 삶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그는 지극히 보수적인 프라하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서 완고한 어머니에 의해 신앙을 주입받으며 자랐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 첫딸을 잊지 못해 릴케를 6살까지 딸처럼 키웠다. 그리고 군인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못다 이룬 꿈을 위해 릴케를 군사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몸이 허약해 군사학교는 중도에 그만두는데 이에 대한 반작용과 엄혹한 유년 군사 시절 고통의 호소에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그의 심리 근저에 자리잡았을 듯하다. 그에게 종교는 어머니 콤플렉스와 연관된 갈등이며 또한 그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이후 프라하대학교에 들어가 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이어 뮌헨대학교로 옮겼는데 그곳에서 운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만나게 된다. 이때 정신적, 문학적으로 성숙해졌다고 하는데 그러나 이 세기의 여인은 릴케의 마음을 참 아프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보석을 만들기 위한 신의 운명적 장난은 아닐런지. 그 이유는 그의 인생을 뒤흔들었던 살로메를 향한 사랑과 이별로 인해 릴케는 사랑으로 인해 위대한 시인으로 태어났고, 이별로 인해 시인의 대명사로 거듭났다고 보면 될 것이다. 결혼 생활은 실패했고, 가난에 시달렸으며, 인생 후반부에는 유럽을 떠돌며 대작들을 남겼는데, 하루하루를 선물처럼 맞으라는 인생, 축제와 같은 그의 삶은 51년으로 짧게 막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날아오는 꽃잎을 행복하게 맞이하는 것처럼 살아가라는 그의 조언은 가슴 저리다. 그 꽃잎이 어떤 것이든 아이에게는 선물인 것이다.

릴케에 의하면 인간의 존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길 위에 서있다. 거기서 인간은 자신만의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보았다. 또 삶이란 신을 찾는 과정이라고 노래했다. 그는 ‘기도시집’ 제 2부 ‘순례의 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순례의 길에는 늘 바람이 분다 / 순례는 세상의 사물들과 친해지는 길이다 / 가로수 길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누구일까?”

릴케의 시는 그냥 마음이 센치해질 때면 몰입해서 읽으면 그 진가를 알게 된다. 읽고 느끼고 그 내용을 가지고 응시하며 명상하는 것이 릴케에 대한 최고의 서평이지 않나 생각된다. 이 책은 필사를 통해 시를 되새김질 할 수 있는 도서이다. 릴케가 남긴 글을 독자의 필체로 쓰는 영광은 이 또한 이 책이 가지는 특징이다. 마음 가는 대로 펴서 읽고 느끼며 쓰면 된다. 영혼이 더 한층 고고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케 될 것이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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