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한 불행 - 부서지는 생의 조각으로 쌓아 올린 단단한 평온
김설 지음 / 책과이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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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칠흑 같은 어둠이 계속된다 해도 괜찮다.

어둠 속에서 빛을 기다리는 과정이

곧 삶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마음이 독자에게 이토록 사무치게 느껴지는 책은 오랜만이다. 절절이 읽혀진다고 할까? 가슴이 미어질듯 하고, 저자의 삶이 얼마나 아프고 처절했을까 싶다. "결혼을 잘못해서 닥치는 불행보다 결혼 후에 주어질 안정이 더 유혹적이었다"는 그녀의 선택이 어쩌면 작은 희망의 돌출구였건만, 인생은 그녀를 괴롭게 하고 죽고 싶게 만든 것이다. p.10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매일 죽는 방법을 생각하며 살았을까? 그러던 중 "숟가락에 묻은 이유식을 힘껏 빨아 먹는 딸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니.." 정말 다행이다. 이혼을 결심하고 혼자 힘으로 삶을 헤쳐나가는 이 여인은 딸로 인해 겁 많은 여자이면서 동시에 겁 없는 여자가 되어 주어진 삶을 마주했다. 그때부터 작가는 철없어도 안 되고 아파서도 안 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제목과 표지 그림에서 느껴지는 그 느낌이 책을 읽어 가면서 정확하게 맞아 들어 갔다. 아니 생각했던거 보다 더한 인생이었다. 이렇게도 힘든 인생이 있는가 싶을 정도이다. 책 제목을 "다행한 불행"이라고 적었지만, 부서지는 생의 조각으로 쌓아 올린 가운데 얻어진 '평온' 속에서 얻은 "다행한 불행"이었다는 것이 더 없이 가슴 한 켠을 아리게 한다.

프롤로그을 보며 그만 저자에게 첨부터 빠져들어 버렸다. 어쩌면 내 삶의 한 부분을 말하는 거 같아 自愧之心(자괴지심)의 상태가 되었다.

이 책은 결혼 생활의 진한 감정들을 토로하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세계 3대 참회록 가운데 '루소의 참회록'이 리얼해도 그렇게 리얼하다고 하는데 바로 그런 리얼함이 문장마다 가슴을 때린다.

좋은 문장과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은 줄을 치는 편인데, 이 책은 결혼이 주는 모든 감정 셋트를 수려한 문장 속에 잘 녹여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줄을 수없이 쳤다. 내 마음을 긁어놓는 문장 말이다. 정말 한 번 정도 만나보고 싶은 작가이다. 그 얼굴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다부짐의 모습이 있을지, 삶의 강인함을 가진 여성은 어떤자일지, 존재(남편)의 싫음을 기꺼이 수용하며, 이제는 용서고 뭐고 다 부질없다고 말하며 용서 조차도 승화시켜 중화시키는 여성은 도대체 어떤 여성일지 매우 궁금하다.

"옳다고 믿는 어떤 것도 완전하지 않음을 이제는 안다. 누군가가 거짓말을 했다고 천하의 몹쓸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 역시 내가 백 퍼센트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남편의 생활 태도가 마음에 안 들면, 그저 조용히 내 생활을 돌아본다. 왜 이렇게 사나 하는 불만보다 이런 생활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뻔뻔함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이런 삶에 만족하다 보니 이제 남편을 원망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른 건 몰라도 거짓말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용서고 뭐고 다 부질없어졌다. 나를 이렇게 만든 세월은 정말 위대한 것이다." p.116

삶은 그런가 보다. 지금 상황에선 자신 보다 더 힘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더 힘든 사람이 있는 것을 보게 되고, 또한 지금의 불행이 책 제목처럼 '다행한 불행'인 경우가 있음도 보게 된다. 불행을 통해 단단해지게 만드는 것이 신의 안배인가 할 정도로 인간은 불행을 통해 삶을 조각조각 만드는 능력이 생김을 다시 한번 깊이 새겨 본다.

"다만 이제 불행의 파도에 휩쓸리기보다 파도가 오는 것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 위에 올라탈 수 있기를 바랐다. 앞으로의 삶에 행복이 올지 불행이 올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것이 오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로, 적어도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면 담담히 인정하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런 것을 알게 되기까지 정말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만드는 괴로움 속에서 살아보니 삶이 얼마나 피곤한지 말도 못 한다. 겪어보니 인생은 스스로 창조하는 즐거움 속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괴로울 수밖에 없는 거였다." _p.122

엄마의 불행을 통해, 자신은 그런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건만 저자는 1년 만에 환상이 깨졌다. 늦은 건지, 빠른 건지 모르겠지만....그때의 심정을 들어보자. "결혼 생활은 나를 조금씩 돌아버리게 했다. 어린 시절에 겪은 불행은 불행 축에도 끼지도 못한다는 것도 결혼이 알려주었다."

그렇게 작가는 이혼을 하였고, 이혼 후 5년이 지났을 때부터 끈질기게 이어진 전남편의 구애로 인해 결국 15년 만의 재결합으로 이어졌지만, 저자 말처럼 사랑이나 연민 따위의 감정이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결혼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성급했던 결혼, 급작스러웠던 이혼, 그리고 20년 만의 재결합을 통해 작은 희망이라도 찾을까 싶었지만 애초에 그런 희망조차 없이 시작한 것임에도,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남편과의 삶은 애처롭기까지 하며, 작가의 선택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남편은 그전에 보지 못한 제 3의 인물의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단 알콜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주위에 알콜중독자들을 보았기에 얼마나 힘들지 예상이 된다. 그러나 예상하는 것과 실제 그 상황을 마주하는 사람의 심정은 모를 것이다.

"하루에 몇 번씩 마음이 달라졌다. 미친 짓이라며 우리의 재결합을 말린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어쨌거나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이 나니까, 한 번 실패는 두 번의 실패로 이어진다는 사람들의 관습적인 판단을 밀어내고 싶다고, 다시 잘해보리라고 다짐한 날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이제는 정말 생각을 달리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은 없었다. 끝을 내는 데 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p. 59

저자의 그 마음이 다시금 느껴진다. 글을 잘 써서 그런가 아니면 저자가 고스란히 느낀 감정을 잘 개어내서 그런가? 곱씹게하는 문장인데, 마음은 씁쓸하다.

이 책은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가 읽으면 안 되는 금서처럼 보인다. 이것을 보고는 결혼을 접을 사람이 3-40%는 생기지 않을까? 아니면 나는 달라하면서 결혼을 시도하는 그런 용감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혼이란 정말 무엇인가하며 결혼에 회의감을 느끼며, 살고 싶지 않은 사람과 살아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고민하는 부부라면, 즉 이혼 위기에 있거나, 이혼을 생각하거나 하는 부부가 있다면 이 책으로 달려와 인생을 씹으라고 말해보고 싶다.

마치 끝장판 같은 결혼 생활을 보여주는 리얼 일기다. 줄을 많이 친것이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결혼의 민낯들이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오묘한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정말 이 여성은 한 남편의 존재를 통해 "가장 단단한 고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폭풍우가 치고, 지독한 절망을 맛보지만 그 절망을 "불행중 다행"으로 바꾸는 마법같은 주술적 능력이 그녀에게 생겨버린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책에는 예쁜 엽서 같은 곳에 저자의 글씨인지 모르지만, 손으로 쓴 글이 있어 글씨 참 잘 쓴다하며 별생각 없이 읽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 다시 그 문장을 보니 그녀의 영혼이 마치 담긴것처럼 글씨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님, 삶의 고난 속에서도 다행한 행복이 찾아들길 바라며 드립니다."

이 책을 총평한다면 모든 글이 가슴을 치며, 마음에 새겨지는 '삶의 글'이라고 평하고 싶다.

작가적 소견이 충분하며, 부서지는 생의 조각으로 쓰여진 특별한 고백적 글쓰기의 맛을 보여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살아도 분투하는 삶으로 살아가면 삶은 무언가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이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책이다. 평안하고 무탈한 삶이 그녀에게 이제는 찾아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바이다. 어쩌면 그 바람이 그녀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삶에, 고요한 행복이 스며들기를 기도하며 축복한다!!

이 책의 한 문장

유복자로 태어나 일찍 가장이 되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원하던 미술 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당신이 추사 김정희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p. 007

그날 이후 나는 아무리 부부라도 타인이 할 수 있는 건 지켜보는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남편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오류였다. 변화를 간섭하는 건 오히려 변화에 방해가 될 뿐이었다. p.115

나에게 무심해지니까 가장 먼저 몸에 적신호가 켜졌다. 자신을 가꾸는 일과 건강이 깊은 연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를 가꾸고 싶은 마음을 잃어버리니 모든 의욕이 사라졌고, 심하게는 기억력까지 저하되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멋이란 걸 포기하면 순식간에 늙어버리는 거였다. 50대만큼 여성의 용모가 극명하게 나뉘는 나이는 없는 것 같다. 40대 시절보다 오히려 젊어지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기다렸다는 듯 폭삭 늙어버리는 여자도 있다. 내가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어쩌겠는가. 세월을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사를 귀찮아하는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최소한 나에게 무신경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말자고 다짐할 뿐이다. p.133

설상가상이라고 사는 게 맘대로 되지 않고 인생의 실패를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불안장애까지 생겼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걱정부터 시작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안돼면 어떡하지, 실수하면 안 되는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 완벽함에 매달리게 됐다.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과도하게 긴장했다. 단지 긴장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서도 죄책감을 느꼈다.

좋은 기회가 오면 잘못할까 봐 두려워 차라리 포기하기를 선택했다. 이런 내적 동요를 숨기려고 지나치게 경계하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게 되면서 자존감마저 떨어졌다. p.149

어쩌면 살면서 자신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건 저녁 메뉴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마저도 상황에 따라 바뀔 때가 많지 않은가. 운명을 자기 마음대로 이리저리 바뀐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 하늘에 맡긴 채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그 흐름의 끝에 죽음이 있더라도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해서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마지막 질문인 양 묻는다. 이제는 남편과 사는 게 행복하냐고.

나는 여성의 행복이 꼭 결혼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대답한다. p.176

쉰다섯이 넘으니까 많은 생각이 변했다. 예전에는 누추하고 볼품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초라한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길러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남의 인생을 멀리서 바라보며 부러워만 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좋은 일이다. 운전 능력을 삶에 적용하게 된 것도 순전히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운전할 때만큼 사는 게 여유롭다. 시속 100킬로로 달리나 50킬로로 달리나 도착 시간이 거의 비슷하다는 결 아는 모범 운전자처럼, 사는 속도도 느긋하고 여유롭다. 오늘은 빨간 신호에 걸려 자주 멈췄다면 내일은 다를 거라는 걸 경험했으니, 오늘의 불행을 내일로 끌고 가지 않는다. p.186

살아보니 부부는 서로 사랑하는 것과 동시에 미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p.207

살다 보면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예전처럼 기를 쓰고 이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을 곱씹으면서 하루하루를 살 것이다. p.213

서로 모든 걸 공유하고 빠짐없이 나눠야만 건강한 관계인 것은 아니다. p.219

다 포기할까 싶은 순간

믿을 수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믿으며

- 김설, 에필로그.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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