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자마자 반하는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이다. 탁월하다 못해 위대하다. 이 책은 어떤 인간관계론이나 처세술보다 뛰어나고 전혀 새로운 형식의 책이다. 분명 이 책은 스토아 철학에서 중요하게 손꼽히는 세 명의 철학자 즉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에픽테토스가 전해주는 삶의 기술과는 다른 결이다. 또한 동양에서 사람과의 관계와 세상에서의 처세술로 유명한 사마천의 《사기》나, 처세술을 넘어 경영학+정치학을 아우르는 통치술의 대가인 한비자가 전해주는 가르침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어떤 분이 언급하듯 형식은 성경의 잠언서처럼 쉽고 짧은 글인데, 내용은 ‘성직자가 쓴 군주론’으로 보일 정도로 직설적이고 현실적이다. 즉 정말 간결하며 강렬하고 놀랍도록 현대적이다. 400년 전에 쓰인 글인데 왜 현실을 살아가는 나에게 꽂히는 가르침과 깨우침이 많은지 모르겠다. 물론 한비자를 통해서도 《사기》를 통해서도 그런 현실적 조언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독자의 견해로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쓴 《사람을 얻는 지혜》는 그냥 핵폭탄이며 읽자마자 바로 깨우치고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이 책은 내로라하는 철학자들이 극찬할 정도의 책이 맞다. 즉 쇼펜하우어, 니체, 라캉 등이 망설이지 않고 최고의 금언집이라고 말하였다. 특히 쇼펜하우어는 그라시안을 "유럽 최고의 지혜의 대가"라고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여 쇼펜하우어는 스페인어로 발간된 그 책을 직접 읽고는 심취해 독일어로 번역을 하였다. 세상 이치와 인간 본성을 이렇게까지 날카롭게 파헤쳐준 그의 글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면 이 사람이 누구인지가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17세기가 낳은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1601년 스페인 사라고사 지방의 벨몬테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층 귀족 가문 출신으로, 그의 구체적인 유년기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다른 형제들처럼 신부가 되었다는 사실과 그가 대단히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랐음을 짐작할 수 이다. 특히 15세에 발렌시아의 사라고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부터 세상과 인간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18세 때 예수회에 입회하여 신학과정을 수료한 뒤 인문학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풍부한 학식과 지혜를 전해주기도 했다. 발렌시아의 수도원에서 수련을 마친 후에는 전장을 누비며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았으며 신기하게도 그가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어 ‘승리의 신부’라고 불리어졌다. 그러나 그는 1630년 발렌시아에서 부임지를 옮기면서 에수회와 심각한 충돌을 일으켰는데 이러한 갈등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삶은 많은 변수와 다채로운 삶을 선사한다. 그가 살던 17세기 스페인은 150년간 유럽의 지배자로 군림하다가 쇠락길에 접어든 상태였다. 경제적 위기, 빈부격차, 전쟁 참패와 같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했는데 그 와중에 지도층이란 자들은 위선과 타락으로 얼룩지고 대중들은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그는 이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들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지었다.
그러나 언뜻 보게 되면 인간관계에 대한 정치적 기술, 세상 이치나 인간 본성에 대한 파악을 통해 '잔머리를 굴러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부분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한게 아니기에 그런 기술쯤은 배우는 것이 유익하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너무 세속적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다시 다르게 말한다면 세상의 이치를 배우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므로 비둘기처럼 순수하면서도 뱀처럼 교활해야 한다. 그리고 순종해야 할 때와 주도해야 할 때를 구분하면서 자기 주도적인 삶아야 한다.
대단한 책을 진작 만났더라면 내 삶이 더욱 면밀해지고, 지혜로워지고, 사람들과 세상에 당하는 일이 적었을 것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귀하기에 줄을치며, 되새기며, 깊이 생각하면서 이 책을 늘 머리 맡 손길이 가는 곳에 놔두고 읽으면 좋을거라 생각한다.
책 소개에 보면 두 줄로 이 책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너무 정확하여 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