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튀프」라는 고전은 연극 무대에 올려졌기에 연극 대본처럼 구성되어 있다. 한 편의 연극을 머리에 그리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 현대인들이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판이라 고전을 이해하는데 너무 유익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시카고 플랜에도 포함되어 있다. 시카고 플랜이란 말을 처음 들어보았는데 이 말은 '시카고 대학의 고전철학 독서교육 프로그램'으로, 존 스튜어트 밀의 독서법을 따라 ‘철학 고전을 비롯한 세계의 위대한 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2번 이상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을 시키지 않는다’ 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시카고 대학교는 시간이 흐르면서 최상위 명문대학이 되었고, 노벨상 수상자도 100명이상 배출하게 된다.
그러니 이런 책을 우리가 읽고 인생의 교훈을 얻는다면 개인적으로도 유익되고, 나라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왜 현시대에 「타르튀프」를 우리가 다시금 봐야 할 필요가 있는지 언급해 보자. 분명 이 책은 17세기 희곡이다. 역사적으로 먼 과거의 일이다 그런데 「타르튀프」를 접하는 현대인은 두 가지 사실에 놀라게 되는데 먼저 거짓과 위선으로 남들의 눈을 가리는 가짜 신앙인들이 저지르는 짓들이 현대와도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다. 몰리에르라가 조지오웰이 쓴 1984와 같이 먼 미래에 있을 일을 생각하고 썼는지 모르지만, 세기가 네 번이 바뀌는 동안에도 타르튀프와 다를 바 없는 위선자들이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기승을 부리고, 거짓으로 재산을 탈취하고 욕망에 눈이 멀어 죄악을 정당화하는 일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사기꾼만이 아니라 분별력을 잃은 채 그들을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추앙하는 눈먼 자들 역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옴진리교'에 대해 살펴보는 방송을 보게 되었다. 멀리서 객관적으로 보면 무자한 신도들이라 생각하겠지만 여기에는 지식인들도 여러 포함되어 추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눈먼 신도들이 21세기 시대에도 존재하고 기승을 한다고 봐야 한다. 특히 여기에 빠진 자들은 주변 사람들의 만류와 충고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마저 변함이 없다.
17세기 고전이며 희극으로 쓰여진 것이라 손에 잡히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독자를 고전으로 초대하기 위해 흐름을 끊는 주석 사용은 금하고, 가능한 부연 설명 없이 이해가 되도록 문장을 구성하며, 의미 위주로 옮겨주어 독자들의 손길을 유혹하고 있다. 문학적인 형식미까지 살릴 수 없어 번역가는 아쉬워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보면서 때로는 웃음이 나오고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며, 답답했다가 이내 속이 시원해지는 인물들의 대사에 행복함을 얻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위선자인 타르튀프는 '위선자'라는 뜻의 일반 명사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