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모든 역사는 승리자들의 기록이며 패배자는 역적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역사라는 것은 승리자의 입장이 잔뜩 덧칠된 그림과 같기에 실제적 진실은 명확히 모를 것이다. 헨리에타 마리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그녀는 성군으로 칭송받은 앙리 대왕의 딸이자, 절대주의의 기초를 다진 루이 13세의 여동생이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와 오라비처럼 남편이 강력한 왕권을 토대로 백성들을 보살피기를 바래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녀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고, 역사는 그녀를 ‘남편을 홀려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악녀’로 기록하였다.
그러나 20세 후반부터는 찰스 1세는 물론 왕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즉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국왕과 의회의 내전을 ‘청교도 혁명’이라고 불렀다. 국왕의 폭정에 맞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거친 ‘혁명’으로 기억되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수정주의 학파’가 득세하면서, 찰스 1세를 절대악, 찰스에게 맞선 올리버 크롬웰을 절대선을 보는 이분법적인 시선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영국 학계에서는 청교도 혁명이 아니라 잉글랜드 내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찰스 1세를 순교자, 성군이 되고자 한 왕으로 조명하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바로 이러한 것이리라. 여기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역사 공부를 하여서 다시 알아 봐야할 것으로 본다. 본 책은 찰스 1세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청교도 혁명, 또는 ‘잉글랜드 내전’으로 불리는 사건을 찰스 1세의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의 시선에서 조망해 주는 책이다. 책장을 넘겨보게 되면 기존 역사책에서 담지 못한 왕비의 매력과 삶, 속사정이 생생하게 보여진다. 무엇보다 1900년대 초반 작품 중에서 헨리에타 마리아의 공과를 잘 분별해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헨리에타 마리아」는 생소한 인물로서 독자에게는 정보가 미비하다. 혁명의 삼킨 불굴의 왕비라는 타이틀을 보면서 어떤 왕비인지 단지 궁금했다. 그래서 열어 보았고, 어떤 이유로 인해 악녀가 되었고, 악녀임에도 결국 살아남아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때 온 영국은 기쁨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잉글랜드인은 금욕적인 청교도주의에 싫증을 내었고 유쾌한 군주인 찰스 2세를 염원했기 때문이다.
헨리에타는 이때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너무 기뻐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상태였는데 누이 크리스틴에게 편지한 내용에 그 기쁨이 표현되었다.
"마침내 선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그러니까 이처럼 복위하도록 기적을 행하시니, 가슴에 증오로 가득하던 사람들이 최대한 친절하게 굴고 복종하겠다고 나설 뿐 아니라 기빠하는데, 이처럼 크게 기뻐한 적은 처음입니다."
남편 찰스 1세가 목이 잘리면서 비운이 왕이 되었는데 자신의 아들이 다시 왕위에 오를지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찰스 2세는 썩 좋은 인물로 평가받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는 삶이었고, 또한 대영국의 강력한 통치 군주로 인정받기에는 종교문제가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헨리에타는 그러한 것을 다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으니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삶은 건강의 악화로 불면증과 실신으로 고통을 당하였다. 주치의가 있었으나 잘못된 치료를 통해 헨리에타는 마지막 죽음을 아편 복용과 함께 깊이 더 잠들어 깨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