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사랑하지 않는다 - 스물에서 서른, 가슴 뛰는 삶을 위해 떠난 어느 날의 여행
이예은(나린) 지음 / 바이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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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관한 에세이를 계속해서 보고 있다. 아마도 여행에 대한 욕망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헤르만 헤세의 여행 에세이인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을 읽고서는 더 목마른 여행을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행자가 느낀 감동과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소개는 읽는 독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어떤 책장에서는 미치도록 가고 싶어 목매어 울기도 한다.

너무 과한 표현인가 싶지만 실제 여행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감정들이 다 있을 것이다.

저자의 프롤로그에도 이런 문장이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자기 몸보다 큰 배낭을 메고 세계여행을 하는 꿈을 꿨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를 탔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떤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했다. 비행기 이륙에 맞춰 미친듯이 뛰던 심장의 박동 소리를 기억한다. 나는 그것을 잊지 못해 계속 떠났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방랑자와 같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대변해 또 다시 여행에 대한 열변을 토한다.

여행을 왜 떠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 더 뜨겁게 삶을 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생생함 속에서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순간을 만나려고 여행했다. 그런 나에게 여행은 단 한 순간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적이 없었다. 매 순간 나의 예상을 벗어났고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것들을 선물했다.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떠났지만 돌아온 후엔 더 많은 질문들을 던져줬다. 그래서 그런 걸까.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온 후엔 항상 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리곤 했다. 꿈과 같던 날들을 향한 향수병이기도 했다. [...] 삶은 결코 순간의 여행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비로서 나는 그 불안을 사랑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청춘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그 답을 얻었느냐고. 답을 찾지 못했다. 그 질문엔 답이 없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미숙하고 약해 무언가의 도움을 받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세상에 던져주는 질문을 당해 낼 재간이 없어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을 해소할 대상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여행 같은 삶을 꿈꿨던 나에게 여행은 매 순간 외치고 있었다. 삶은 여행일 수 없다고. 오히려 그것보다 더 크고 경이롭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떠난 후에야 알았다.

어쩌면 이렇게 여행자의 마음을 글로 잘 표현해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헤세처럼 여행이 주는 삶의 유익과 방황들을 수려한 문장으로 잘 드러내 주는 저자의 글솜씨를 보게 된다. 여행 에세이란 삶의 철학자들의 수다라고 말하고 싶다. 삶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여행하며 세계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 보는 기회를 누구보다 더 많이 추구하며 음미하는 자들이다.

헤세의 글을 하나 여기서 인용해 보자.

여행이란 경험을 의미한다.

그런데 가치 있는 경험이 이루어지려면 주변 환경과의 정신적 유대가 필요하다.

가끔 야외로 떠나는 즐거운 소풍, 야외 식당 테이블에서의 흥겨운 저녁, 호수 위에서의 증기선 여행 자체는 경험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만으로 삶이 풍요로워지지도 않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자극제도 되지 못한다.

여행의 서정은 일상의 단조로움, 일과 스트레스를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데 있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과 교제에 있지 않으며, 색다른 풍경을 감상하는 데 있지 않다.

그렇다고 호기심의 충족에 있는 것도 아니다.

여행의 서정은 경험에 있다.

​그것은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

새로운 획득물을 내 안에 유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다양성 속의 조화를 이해하고 대지와 인류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해하는 것,

옛 진리와 법칙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 안에서 재 발견하는 데 있다.

-헤르만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 '여행에 대하여'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관점을 얻는지 모르겠다. 헤세와 저자와의 유대 관계는 여행을 통해서 하나가 되고 있고 맞물려 있다. 그리고 독자 또한 여행 중독자로서 이미 삼위일체처럼 헤세와 저자와 하나가 되어 '삶'을 깊이 더 사랑하는 자가 되어 있음을 고백한는 바이다.

그렇다. 저자는 여행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삶을 사랑할 뿐이며, 그것도 아주 열렬히 살기 위해, 그래서 저자는 떠났다.

이 책은 길게는 10년, 짧게는 2년 전의 기록물이다. 여행이 멈춰진 지 어언 3년이 흘러가고 있는데 저자에게 이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여전히 여행을 했다는 표현처럼 여행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을 통해 스무 살에서 서른, 지난 10년간의 크고 작은 여행의 단편을 정리한 글이다. 이 책은 설익은 어린 날의 여행부터, 치열한 고뇌의 흔적으로 가득한 여행까지 날것의 기록을 그대로 담아 표현한 글이라서 더욱더 독자들의 마음을 훔친다.

어쩌면 독자들은 명문장을 만나기 위해 이 책을 들지 않고 저자가 느꼈던 그 감정들을 따라가고 싶어 책을 들었을 것이다. 명문장은 그저 여행을 통해 느낀 감정이 흘러내린것 뿐이다.

그러므로 아주 편안하게 이 책을 보면서 함께 여행을 떠나면 된다. 여행 에세이에서 중요한게 사진인데 이 책은 그걸 충족시켜 준다. 스쿠버 다이빙하는 모습은 너무나 동경이 되며 하고 싶다.

"젠장 나는 언제 저렇게 여유롭게 할 수 있지?" 하는 속 마음을 내 비춰본다. ㅎ

저자는 자신의 뒷모습을 많이 보여주며 여행지를 비춘다. 뒷 모습과 여행지의 절묘한 조화는 모든 여행자들의 꿈일 것이다. 사진 스크랩으로는 책에서 오는 그 아름다운 느낌을 못 전달하여 아쉽다. 책을 직접 보면서 그 아름다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꼈으면 하는 바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참 좋다"이다.

여행이 고픈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우린 남들이 하는 건 다 하고 싶은가 봐요. 유명하다고 하는 건 한 번쯤 해봐야 해요.

그 기준에 갇히길 선택한 건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몰라요.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오늘은 아무 데도 안 가면 좀 어때요.

남들이 하는 거 안 하면 좀 어때요.

그냥 앉아서 멍하니 더위나 식히면 좀 어때요.

오늘은 그거면 충분해요. 지금의 여행은.

물론, 며칠이 지난 후엔 또 어딘가를 가겠죠.

그리고 또, 비슷한 상황을 만날 거예요.

이래서 삶을 여행이라고 하나 봐요.

내일은, 버스를 타야겠어요.

왜냐하면, 유명한 에그타르트를 먹으러 멀리 가야 하거든요. p15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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