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유의 좋은 책이 가끔씩 있다. 장황하게 철학적 용어를 써가며 깊은 진리를 혼자만 아는 것처럼 온갖 지식들을 다 동원하며 글을 써놓은 글보다 오히려 허위와 가식, 수식이 없는 저자의 글이 진짜 철학자라고 생각된다.
쳅터 1장에서 「마음을 따라가는 계산법」에 나오는 글이다. 저자는 어릴 때 8살까지 말을 못해 초등학교를 9살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저자를 벙어리 아이로 취급하며 부족한 아이로 보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모습이 보여 어쩌면 이리숙한 자가 아닌가 싶은데 이분은 '바보'와 같은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하루는 친구가 어디 함께 가자고 전화를 했다. 군부대 강의를 가야 하니 못 간다고 하자 친구가 강의료가 얼마냐고 물었다. 13만 5천원이라고 했는데 대뜸 "그것도 돈이라고 그 돈 받고 강원도 원통까지 가냐? 차비도 안 나오겠다."하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군부대 강의료는 전국 어디서나 13만 5천이다. 그래서 강사들이 안 가려고 하는데 하지만 저자는 군말 없이 간다. 그 이유는 손자 같은 애들이 군 생활이 힘들어 탈영을 하고 자살하고 사고치고 그러다 사형수 될까 봐 걱정돼서 간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는데 "바보는 언제나 계산이 늦어. 바보는 원통에 가야 된다는 생각 밖에 없어. 하지만 똑똑한 친구는 돈 계산을 먼저 해." p48-49
한 대 맞은 느낌이다. 세상살이는 이성적 사고와 이기적 사고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경쟁 사회이기에 조그만 뒤쳐지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퇴물?처럼 취급된다. 그런데 이분에겐 강사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 말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바보라고 한다면 당신의 마음은 이미 병들어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책은 이러한 얘기가 수두룩하다. 감동을 주며, 재미를 주면서 진짜 어른이 무엇임을 따뜻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제 저녁은 쌀쌀해지고 있다. 겨울이 오려고 멀리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겨울을 만난 사람이나, 인생이란 무엇인지 하며 해답을 아직도 못 찾은 사람에게 이 책은 난로처럼 삶을 따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저자의 신조를 보면 ‘남을 돕는 일에는 계산하지 말고, 누군가 넘어지면 빨리 일으켜줘야 한다’고 적어 놓았다. 향년 73세로 암에 의해 돌아가시기까지 저자의 삶은 계산이 없는 삶 그 자체였다.
정말 누군가가 SOS를 치면 언제든 달려가는 열혈 상담가였다.
책 소개에 나오듯이 저자는 30년간 사형수 교화위원으로 활동해 왔다. 30년이란 시간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수많은 경험과 만남 속에서 저자는 순수한 눈으로 삶을 직시하며 바로보며, 사형수에게 때론 엄마가 되고, 누나가 되고, 언니가 되고 이웃집 아낙네가 되어 주었다. 다른 이와 다르게 계산하지 않는 저자의 마음이라 저자에게는 남다른 포스가 느껴진다. 이미 2012년 출간되어 10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였다니 수긍이 된다. 이 책은 독자들의 재출간 요청에 10년 만에 돌아왔다.
출간 당시 한 일화를 보면 양순자 저자를 인터뷰하러 간 기자들이 인터뷰는 뒷전이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돌아가면서 한결같이 말하기를 “교과서 같은 식상한 답이 아닌 순도 100% 경험 속에서 나온 인생 상담에 자기도 모르게 무장해제되었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정말이라는 단어를 또 써서 미안하지만 '정말' 이 책은 교과서처럼 딱딱하거나 정석과 같은 답을 주기보다 저자 자신이 생생하게 경험하면서 끌어올린 지혜의 산물이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후배가 있었다고 한다. 고민을 들어보니 그게 고민인가 싶었다. 그래서 고민을 풀어주겠다며 다짜고짜 금촌 기독교 묘지로 후배를 데리고 갔다. 이미 저녁이 되어서 음산하였다. 저자는 후배에게 말하기를 '내가 상담하던 사형수 중에 8명이 여기 묻혀 있다. 돈이 넉넉지 못해 자투리땅을 사서 묻어주었는데 너가 정말 죽고 싶다면 죽어라. 내가 사형수들도 이렇게 묻어주었는데 너 하나 뭇 묻어주겠나?'하며 후배의 손을 잡아 끌었다. 후배는 당연히 기겁을 했다. 이때 저자가 이런 말을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