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시민 불복종 (합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이종인 옮김, 허버트 웬델 글리슨 사진 / 현대지성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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떤 책은 서재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 책장의 무게감을 더해주는 책이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삶의 본질을 찾아 숲으로 간 사상가이다. 그는 고독을 즐겼고, 자연을 좋아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고자 했다. 이 세 가지가 나를 매료시켰고 이 책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고 싶었으므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직면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 수 있을지를 살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삶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불가피하지 않는 한, 이런 목표를 단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깊이 있게 살면서 인생의 골수를 모두 빨아먹고 싶었고, 삶이 아닌 것은 모두 쫓아내버릴 정도로 강건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고 싶었다. 삶을 넓게 바싹 베어내면서 구석으로 몰아붙여 삶의 가장 밑바닥 조건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 만약 삶이 숭고한 것이라면 그것을 몸소 체험한 다음에 나의 다음 번 여행 때 그 고상함에 대해 진정한 이야기를 써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삶이 악마의 것인지 혹은 하느님의 것인지에 대해 기이할 정도로 불확실하다. 그러면서 다소 성급하게 이 자상에 사는 인간의 주된 목적은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P. 121

2018년도 tvN 예능 프로그램인 <숲속의 작은 집>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연예인 소지섭과 박신혜가 나와서 작은 오두막과 같은 곳에서 전기, 수도, 가스 등 우리가 기본적으로 누렸던 문명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였다. 이른바 '오프그리드'의 삶이며, '미니멀 라이프'의 삶이다. 시청률은 안 나왔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프로를 통해 힐링하는 시간이었다. 요즘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에서 『잠적』이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자연 속에서 갖게 되는데 이것이 어쩌면 21세기적 월든이 아닌가 싶다.

월든이라는 책을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잠시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하버드를 졸업한 당대 최고의 엘리트로서 1845년 봄, 그의 나이 28세 때 스승 에머슨의 만류에도 친지에게서 도끼 한 자루를 빌려 콩코드 월든 호숫가의 숲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손수 잣나무를 벌목해 호반에서 30미터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1845년 7월 4일부터 1847년 9월 6일까지 2년 2개월을 혼자 살면서, 특히 자급자족하면서 겪은 그 일상을 시적인 언어로 적어간 책이다. 그는 오두막에서 "한 주일에 하루는 일하고 엿새는 정신적인 삶에 정진하는 삶이 가능한지" 몸소 실험하면서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미국인들의 일상을 뒤집어 보려고 했다. 이런 자연인의 삶을 궁금해 하는 마음을 사람들의 다양한 질문에 대답하고자 그는 이 책을 집필했으며 책이 쓰여질 당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하여 사장될뻔했던 책이다. 사후 100년동안이나 주목 받지 못한 가운데 산업에 짓밟혔던 인간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인류와 지구의 위기에 대한 자성이 일면서 이 책은 ‘미국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는 아쉽게도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대학 시절부터 그를 괴롭혀온 폐결핵으로 1862년의 44세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월든의 가장 큰 주제라고하면 『우리가 자기 삶에서 자유를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연을 깊이 관찰하고, 생활을 간소화하며, 자신의 독특함을 인정하라고 한다. 문명세계를 살고 있는 자로서 이 말이 잘 들릴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그 안으로 들어가 개인이 할 일을 하자고 말한다. 1830년대 미국 사회는 기계문명의 발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무차별적인 개발로 자연이 파괴되었지만 아무도 그 위험성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소로는 <월든>을 통해 인간들의 편리함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며 만들어낸 문명이 오히려 인류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비판한다.

“오래된 책에서 말하듯 필연 혹은 소위 운명에 따라 사람들은 재물 쌓는 일에 몰두하지만, 결국에는 좀과 녹이 그 재물을 부패하게 하고 도둑이 침범해 훔쳐 간다. 생애가 끝나기 전이나 아니면 생애 마지막에 도달하면 그들은 그게 다 바보 같은 삶이었음을 알아챌 것이다.”라며 인간의 잘못된 욕망을 비판한다. 그리고 “내 믿음과 체험에 비추어보건대, 이 지상에서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일은 고행이 아니라 오락이다. 우리가 검소하고 현명하게 살아가기만 한다면 말이다”라고 조언한다.

p14, 94

세상에 마음 뺏겨 진짜 자신의 삶을 찾지 못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이 책은 인생의 길잡이가되고 정신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쳅터 1에 나오는 '생활 경제'에 대한 글만 보더라도 인간이 무엇을 위한 삶이어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정말 많은 것을 소비하고 있고 이 소비를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아래의 글을 통해 현대인이 소비문화를 비춰본다.

나는 지난 5년 이상 오로지 두 손으로 노동하여 생계를 유지해왔는데 1년에 6주 정도만 일하면 모든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 5년 동안 겨우내 그리고 여름 대부분을 자유 시간을 만끽하며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학교 운영도 해보았는데 내 지출은 수입에 비례한다는 것, 아니 지출이 더 많은 것을 발견했다. 나는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외에 옷을 잘 차려입고 또 훈련도 해야 했고, 게다가 추가로 시간을 맣이 써야 했기 때문이다. [...] 내가 다른 것보다 더 좋아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특히 자유를 아주 소중하게 여긴다. 나는 고된 생활을 하더라도 잘 살 수 있으므로, 호화로운 카펫이나 기타 멋진 가구, 우아한 식기류 혹은 그리스풍이나 고딕풍 저택 등을 얻고자 내 시간을 온통 쏟아붓고 싶지 않다. 이런 것을 획득하는 걸 번거롭게 여기지 않고 또 획득한 후에는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양보하고 싶다. p92-94

이 책에 눈에 띄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쳅터 3의 독서와 쳅터 5의 고독에 대한 부분이다. 특히 고독에 대한 부분은 내 마음을 자극하며 이런 삶을 더 동경하게 한다. 그는 고요의 비밀을 아는 자였다. 헤르만 헤세가 말했듯이 "우리 내면에는 언제든지 들어가서 자신을 회복할 수 있는 고요한 성소가 있다." 고 말하는 것처럼 또한 쇼펜하우어는 “사람은 혼자 있을 때만 완전하게 자기 자신으로 있는 것이 허락된다. 따라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자유를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소로 또한 고독을 너무 좋아했다.

대부분 시간을 혼자 있는 것이 내게는 유익하다. 가장 좋은 사람들이라 해도 함께 있으면 곧 피곤하고 지루해진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사랑한다. 나는 고독처럼 다정한 친구를 만나본 적이 없다. [...] 고독은 사람과 이웃 사이에 낀 공간의 거리로 측정되지 않는다. 진정 근면한 학생은 하버드 대학의 가장 붐비는 공간을 차지했더라도 사막의 수도자처럼 고독하다. p182

누군가 소로에게 숲속에 있으면 외롭지 않냐고 물었다. 특히 비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밤중에는 더 그렇지 않냐고 물었다. 이에 소로는 우리가 사는 이 지구도 우주 공간에는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으며 저 별과 이 별 사이의 거리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데 그 먼 거리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미세한 점 속의 아주 미세한, 보이지 않는 티끌 같은 것임으로 왜 내가 외로움을 느껴야 하느냐며 반문을 해버린다. 여기에 대해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반론을 내비추는데 아래의 글이다.

사람들은 때로 시골이나 바닷가, 혹은 깊은 산중에 묻혀 살기를 바란다. 당신 역시 이런 꿈을 꿀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상은 부질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원하기만 하면 자기 자신의 내면의 세계로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자신의 영혼 속보다 더 조용하고 평온한 은신처는 없다. 자신의 내면에 이러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필요할 때마다 명상을 통해 즉시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p64

자연 속에 들어가더라도 고요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결코 소로나 아우렐리우스와 같은 삶은 살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어서 이 책에는「시민 불복종」이란 글이 함께 실려 있다. 첫 문장이 확 다가온다.

가장 적게 통치하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다.

지금 세상은 백신을 통해 사람들을 통치 또는 감시를 하고 있다. 어제 소식에 의하면 코로나19 백신 2회 접종을 마치지 않았거나 방역패스 유효기간이 지나면 QR코드 인식시 '딩동' 소리가 나게 한다고 한다. 이것은 미접종자들에 대한 과도한 인권침해와 차별이다. 여기에 관해 직장인 안모(28)씨가 말하기를 "성범죄자 알리미 보려면 온갖 인증을 다 해야 하고, 화면 캡처도 안 되고, 전자발찌를 끊어도 경고음은 안울리는데 미접종자는 '딩동! 너는 미접종자야'라고 불특정 다수에게 알림음으로 알려준다"며 "미접종자 QR코드가 코로나 전자발찌냐"고 분노했다."고 한다. 또 다른 사람은 "왜 마트에서 물건 계산 안하고 나가다 걸린 사람 취급하나…사회적 낙인 우려"를 표명했다.

한 마디로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이 찾아오니 소로가 쓴 '시민의 불복종'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책인지 모르겠다. 이 책은 옳지 못한 권력의 강제에 대한 시민의 ‘불족종’의 권리를 제기하며, 사회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근대 자유주의 사상의 가장 진보적이며 적극적인 유산을 남겨주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나치 점령 하의 레지스탕스 대원들이나 1950∼1970년대의 미국 흑인 인권운동 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간디는 실제로 소로의 시민불복종 개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독립 운동의 정신적 기초를 수립하였다.

소로의 말이다.

정의보다 법률을 더 존중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핟.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의무는 언제 어디서라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p449

정부의 권위는 여전히 불순하다.

심지어 내가 기까이 복종할 의사가 있는 정부라 할지라도 그러하다. p476

친일파로 알려진 윤치호는 이렇게 말했다. ​ "조선인의 특징은 한 사람이 멍석말이를 당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려고는 하지 않고 다 함께 달려들어 무조건 몰매를 때리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 백신 추종자들은 미접종자를 향해 개인의 권리를 박탈하고 자유를 빼았고 있다. 어떤 분이 말하듯 "남들 맞는다고 부화뇌동 식으로 백신 ?맞고 미접종자들에 대한 무지성 공격"을 가하면 이것은 독제이며 공산당의 모습이다. 우리는 관동대지진의 역사를 알고 있다. 일본수뇌부들은 지진 발생 2시간 후 지진으로 인한 공포와 생존자들의 고통, 두려움이 정부를 향한 분노로 이어지자 이것을 조선인을 향한 분노로 표출하게 만들어 무려 2만 3천명이상이나 되는 조선인을 학살했다.

지금 정부가 시행하는 코로나 대처는 결코 민주주의 나라에서는 있어서는 아니될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소로가 쓴 시민 불복종은 우리가 현재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길잡이가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처음에는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가,19세기 말 톨스토이에게 발견되어 그의 정치, 사회 사상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이 책이 오늘날 살아남은 것은 개인의 주권이 얼마나 소중해야하는 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으로 보고 싶다.

월든과 시민 불복종의 책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문명인들에게 삶이 정말 무엇이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이 책은 특히 국내 최초 월든 풍경사진이 포함되어 있어 소로우의 삶에 더 깊이 다가가게 한다. 스승 에머슨이 제자를 위한 추도사의 글로 본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소로의 영혼은 고상하고 순수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 지식이 있고, 미덕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대부분 사치품과 인생을 안락하게 하는 많은 편의품은 굳이 없어도 될 뿐만 아니라 인류 정신을 고양하는 데는 커다란 방해물이 된다. 사치품과 편의품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일찍이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소박하고 척박한 삶을 살았다. 중국, 인도, 페르시아, 그리스 등지에서 만난 고대의 철학자들은 겉모습은 가난하기 짝이 없지만 내면은 그렇게 풍요로울 수 없었다. 우리는 이들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

농부는 문제 자체보다 더 복잡한 공식으로 생계 문제를 해결하려 애쓴다. 구두끈 정도나 살 수 있는 아주 적은 돈을 얻으려고 소 떼에 투기하는 것이다. 그는 안락과 독립을 확보하려고, 아주 능숙한 기술을 발휘하면서 털 스프링이 달린 덫을 놓는다. 하지만 덫을 놓고 돌아서는 순간 자기 덫에 다리가 걸리고 만다. 이것이 그가 가난한 이유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우리는 많은 사치품에 둘러싸여 있으나 미개인이 누린 천 가지의 안락함과 비교해볼 때 가난한 것이다. P. 26, 50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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