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두 가지에 대해 알고 있는 독자이지만 에밀과 그의 고백론은 시간을 두어 읽고자 했지만 다른 책이 끼어들어 미루다가 이번 기회에 에밀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일단 이 책은 《에밀》의 원전 전체를 담고 있지 않다. 원전은 총 5권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반 독자가 전체를 읽기 쉽지 않는데 책세상 ‘고전의 세계’ 시리즈를 통해 핵심 사상을 담아 출간한 것이다. 《에밀》의 핵심 사상을 담은 머리말과 1장을 번역해 엮었으며, 2~5장의 내용은 ‘해제’에 요약해두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몰랐다. 당연히 에밀 완역본이라 생각했는데 에밀이라는 책이 그렇게도 두껍구나 하는 소중한? 정보를 얻고 간다.
들어가는 말에 보면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루소는 자신의 모든 저서에 들어 있는 근본 원리가 《에밀》에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는데 그 원리란 바로 “인간은 본원적으로 선하다”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이 신이 처음 만든 아담처럼 마음이 순수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의 주장은 당시 사회에 통용되던 기독교적 원죄설에 정면으로 대립되어 수난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 루소의 주장은 성경에 나오는 것다. 그건 구약성경 전도서 7:29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참으로 “조물주의 손에서 나온 모든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한 반면,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서 속수무책 나빠진다”는 것이 그가 말하는 교육론에 대한 문제의 핵심이다. 즉 인간은 선하지만 인간들은 악하다. 무엇 때문인가 할 때 그건 바로 '사회' 때문이다. 그 옛날 선한 본성을 유지했던 원시의 인류에게는 사실 교육자가 필요 없었다. 자연 자체가 가장 훌륭한 교육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하면서 사회는 부패하고 도덕은 붕괴가 되었다. 인간은 본성을 망각한 채 사이비 교육자에 의해 길러지고 타락의 나래로 빠진 것이다. 루소는 이런 인식하에 인간이 본원적으로 지닌 자연적 선함을 어떻게 하면 참된 교육으로 회복하고 유지할 수 있을 지를 심도 있게 논의하였는데 바로 그것이 《에밀》이란 책을 낳게 만든 것이다.
해제 부분을 보면 구체적인 핵심을 뽑아 놓은 문장이 있다. 루소는 《에밀》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학문은 오직 인간의 의무에 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무엇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게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기존의 교육이 변호사, 의사 혹은 기술자 등 미래의 직업인 양성에만 목적을 둔 채 직업에 대한 지식과 기술의 전달에만 가치를 둘 뿐 인간다운 인간의 형성에는 실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인간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며, 인간을 인간답게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을 말하는가? 한마디로 말해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이다. 자연인이란 인간 본연의 본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루소는 에밀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이 당신에게 제시하는 길을 따르도록 하라"고 했다. 즉 자연을 거슬러서 새로운 무엇을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뜻을 그대로 따르도록 하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는 것이다. 이는 인위적인 것들을 배격하는 것이며 인간 발달의 자연법칙에 따라서 교육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루소는 자신의 교욱 방법을 '자연적 교육'이라고 불렀다. 루소의 말대로 반복되는 말이지만 '아이는 선하게 태어난다. 그러므로 아이의 그 천성적인 선함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교육은 당연히 이러한 본성 또는 심성을 망가뜨리지 않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적극적인 교육에서 '소극적인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