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정치철학사 - 세계사를 대표하는 철학자 30인과 함께하는 철학의 첫걸음
그레임 개러드.제임스 버나드 머피 지음, 김세정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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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정의와 권력이 만나는 지점이다.

인류가 꿈꿔온 유토피아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더 나은 정치는 무엇인가?

철학은 진정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정치 활동은 정치를 둘러싼 철학적 고찰이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의 역사를 보더라도 '정치철학'이 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을까라고 물을 때 카를 마르크스의 대답을 빌리자면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활쏘기 이미지를 통해서 철학이 주는 효과를 말한다면, 철학은 어쩌면 우리가 이미 맞히고자 염두에 두고 설정해둔 과녁을 한층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철학자들은 자유, 평등, 정의 같은 모호한 개념을 깊이 고찰하여 우리가 이러한 개념들을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곳에 나오는 세계사를 대표하는 철학자 30인들은 이러한 이상들을 두고 서로 상반된 견해를 펼친다. 이건 큰 문제로 오히려 혼란을 주는데 즉 활쏘기 스승들이 이렇게 우리에게 각자 다른 과녁을 조준하도록 요구하는 경우, 우리는 어떤 목표를 향해 정진해야 할지 혼란스럽게 된다. 어쩌면 차라리 스승을 두지 않는 편이 낫다는 말이 옳은 것이다. 니체는 설상가상으로 사고 행위 자체가 효과적인 정치를 방해할 수도 있다고 한다. 즉 과감한 통솔력과 단호한 행동에는 확시과 자신감이 필요한데, 철학은 우리를 의심, 통찰, 망설임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셰익스프어가 그린 햄릿은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그의 유명한 성격인 행동력 결여의 원인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햄릿은 무엇을 해야 할지 너무 많이 생각한 탓에 그 어떤 것도 행동으로 옮기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에 철학이 정치에 도움이 된다면 우리는 철학자가 좋은 통치자가 될 거라고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시시하고 결단력 없는 통치자. 혹은 그보다 훨씬 형편없는 통치자가 될 거라 생각한다.

 

 

참으로 고민에 고민을 하게 되는 대목이다. 제대로 된 정치를 하기 위해선 제대로 된 철학관과 세계관이 필요한데 오히려 정치의 이상을 주는 철학이 푸대접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정치를 위해서는 이상적 철학 개념이 필요하며 거기에 맞춰 정치는 끊임없는 성찰과 발전을 기하지 않으면 후퇴하게 되거나 시민은 고통을 당할 것이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우리나라도 대선이 시작된다. 이미 정치적 과열이 시작되었고, 여당과 야당은 분주하게 세력을 잡으려고 미디어를 통해서 지금도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봐왔지만 그들이 과연 우리에게 칸트가 말하듯 '항구적 평화'를 가져다 주는가? 국민들 대다수가 믿었던 여당의 정치는 오히려 지금 역풍을 맞고 국민들을 외면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에 고개를 돌리는가 하면 이번에는 정말 잘 뽑아야 한다면 날을 곧 세우기도 한다. 혹시나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플라톤의 이 말을 되새겨 봐야 한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댓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받는 벌 중의 하나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플라톤-

 

참으로 그의 이 말은 진리처럼 여겨진다. 우리가 잘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정치가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생각보다 매우 크다. 서가명강에서 정치에 대해 이런 말을 했는데 공감이 크다. "세상의 질서, 세계관이 바뀌면, 개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에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책에도 나와 있듯이 비록 오늘날 정치는 진흙탕에 비유되며 정치권에 대한 신뢰는 어느 때보다 곤두박질치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우리는 정치가 이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는 무대에 살고 있는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할 책임이 있음은 분명한 것이다. 러시아 사상가 트로츠키의 말을 살짜 바꿔서 말한 대목이 인상적인데 즉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 수 있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말을 살짝 바꿔 말하면, ‘우리는 정치에 무관심할 수 있지만, 정치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

 

 

정치는 세상을 살아가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유지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정치가 탄생했는데 그러면 과연 어떤 정치 체계가 가장 이상적인 것일까? 이 책은 그러한 정치철학사를 다룬 이야기들이다.

 

 

오늘날의 정치를 이해한다는 것은 현 정치 체제의 기초를 세운 인물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 따라서 세계사를 좌우한 정치 이념을 구축해온 30인들의 삶과 세계관을 추적하면서 그들의 정치적 사고가 시대 속에서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하여 실현되었는지 시대적으로 고찰해 보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즉 고대, 중세, 현대를 나눠 그 시대에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정치가들을 불러내어 그들을 통해 더 나은 정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재미난 계기가 된다.

 

 

철학없는 정치는 가능한가?

 

정치와 철학은 항상 불편한 동행 관계를 유지한다. 서로 다른 가치, 가끔은 아예 양립할 수 없는 가치를 추구한다. 그리하여 많은 철학자가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이러한 문제가 극명하게 나타난 것은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서이다. 소크라테스는 고대 아테네 시민들이 급진적인 사상으로 도시의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마키아벨리, 페인, 간디, 쿠틉은 옥살이를 했다. 그리고 공자, 아리스토텔레스, 마이모니데스, 홉스, 로크, 루소, 마르크스, 아렌트는 망명 생활을 하였다. 사상가들이 정치를 위협에 빠트렸기 때문이다. 사상은 현실 세계로 들어와 세를 얻어 힘을 발휘해 기존 정치적 기득권자를 위협하기도 하는데 가령 정치적 덕성에 관한 루소의 이론은 급진적인 자코뱅에게 영향을 미쳤고, 자코뱅파는 이 이론들을 이용해서 프랑스혁명의 반대파를 대상으로 공포정치를 정당화했다. 또한 러시아 레닌과 중국 마오쩌둥 둘 다 자신들이 마르크스 사상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마르크스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의 해채라는 과업이 완성되면 더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계급 갈등은 사라진다고 했다. 또한 경쟁, 이기심, 폭력, 사기는 모든 계급 사회의 필연적 특징이나 우리 본성에 내재한 특질은 아니라 보았다. 그래서 이러한 악덕은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사라질 것이고 인간 본연의 협동적인 본성이 마침내 드러나 강제적 통치를 하는 국가는 이제 필요 없어질 거라고 보았다. 이렇게 공산주의 사회는 모두에게 효과적이고 모두의 욕구를 평등하게 만족시키며, 사유재산제도는 자본주의와 함께 사라지고 사람들은 자신의 생산품을 소유하지 않으며 소유를 원하지도 않을 것이라 했다.(p 254-255) 그런데 말이다. 중국의 소득불평등은 전 세계 최악의 수준으로 미국보다도 심각하다. 그리고 경쟁, 이기심, 폭력, 사기, 악덕 계급은 사라졌는가? 강제적 통치를 하는 국가가 이젠 필요없다고 하는데 이들은 더 강제적이고, 억압적이다. 중국 체제를 위협하는 발언을 하면 경제적으로 제지 당할 뿐 아니라, 대중들 사이에서 사라진다. 우리가 잘 아는 알리바바 마윈이 대표적인 한 예이다.

 

 

최근 뉴스를 보면 "중국 공산당은 최대 온라인 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한 데 이어 중국 최대의 차량 공유업체인 디디추싱 등 여러 IT기업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한 기사를 보니 "시진핑 독재로 기업 자율성 약화, 경쟁력 급락 이대로 가면 미국 영원히 추월 못할 수도"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올해 초에는 이런 기사도 났는데 마윈이 중국 비판했다가 2달째 모습 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에게 잘못 보이면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과 정치는 하나이면서 둘의 앙숙 관계를 유지한다. 책에서 이런 관계를 동물 호저의 얘기를 가져와서 말하는데 즉 추울 때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한데 모여들지만 서로의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멀어지고 마는 관계 말이다. 호저에 대해 찾아보니 무서운 동물이었다. 고슴도치와 비슷하게 생긴 한국 이름으로 '산미치광이'라 불리는데 섣불리 건들였다간 그 가시에 목숨을 잃게 되는 무서운 동물이다. 호저처럼 정치와 철학도 이렇게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서로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이렇게 정치철학자들은 시대의 문제에 대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심을 두고 미래의 정치를 알려주는 선지자 또는 예언자로 역할을 하지만 정치인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자로 서 있기도 하다. 정치와 철학은 각자 서로라는 짐을 껴안고 있는 동반자 같다. 사상이 전혀 없는 정치체계란 없다. 그리고 정치를 둘러싼 철학적 고찰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이유는 철학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딴 세상에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은 현실을 고찰할 수 있는 평화와 안정을 제공하는 정치체계 안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을 수긍하며 바라봐야 할 것이다.

 

 

홉스가 이와 관련해서 이런 말을 했다. "여가는 철학의 어머니이고, 국가는 평화와 여가의 어머니이다. 위대하고 융성한 도시가 있는 곳에 철학 연구가 있다." 이와 같이 정치가 철학의 전제조건이라는 홉스의 주장이 맞다면 철학은 더 잘 살아남기 위해서 정치를 연구해야만 할 것이다. 철학은 정치에서 당연히 여겨지는 것들을 탐구한다. 단순히 이런 것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선하기 위해서란 말이 옳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때 보통 새로운 정치적 이상, 체제, 정의 원칙, 삶의 형태 등을 구상하기 때문이다. 이런 철학적 동반자가 없는 정치는 그저 진흙탕에 불과한 것임을 이 책은 끝으로 말한다.

 

 

무엇보다 인류가 꿈꿔온 유토피아가 이 땅에서 가능한가 할 때 서로의 생각이 반목하는 한 결코 이 세상에서는 유토피아가 이루어지지 않을거라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나은 정치는 필요하지만 더 나은 정치나 철학이 결코 우리의 삶을 유토피아적으로 만들지는 않을 거라 본다. 그 이유는 거기에 '사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아렌트는 '완벽히 사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진정한 인간의 생애 핵심적인 것들을 박탈당한 채 사는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정치 밖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인간적 삶이 불가능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 [...] 아렌트에게 정치는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존재했다. p 301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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