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당신을 구할 철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18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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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세기의 철학자가 되었고, 염세주의자였던 그는 말년에는 거의 낙천주의자처럼 보일 만큼 자신의 삶에 만족했다. 1860년 72세의 나이로 쇼펜하우어는 소파에 앉아서 평온한 모습으로 죽었다.

p36

쇼펜하우어를 일컬어 우린 그를 '염세주의자'라고 알고 있다. 그것도 유명한 '염세주의자'로 보고 있다. 그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남들에게는 자살하라고 부추겨 놓고 정작 자신은 노환으로 별세한 무책임한 염세주의자'라는 말이다. 그래서 독일 청년들은 그의 저서에 감복해 실제? 자살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건 증명된 것이 없어 더 자료를 찾아봐야 겠다.

그런데 한국에 쇼펜하우어와 닮은 교수가 있느니 마광수 교수라고 한다. 그런데 누구의 영향 때문인지 모르지만 마교수는 연세대 교수 퇴임 후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자살을 하게 된다. 마교수는 소설 ‘즐거운 사라’를 쓴 후 외설 논란에 휩싸였으며, 28세에 대학 교수로 임용되며 천재로 불렸다고 한다. 이후 교수직에서 해임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낸 것으로 전해지는데 동료 교수들의 '왕따' 설이 있다. 그러하여 우울증을 얻어 휴직하기도 하였다. 은퇴 후 제자들과도 멀어지며, 생활고도 오면서 그는 퇴임 소감에서 얼핏 비치기를 '하늘이 원망스럽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마교수의 평소 생각일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인생의 의미는 '무'이다.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은 얼마 안 있어 정신병자가 되거나 자살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며, "생의 고통을 남보다 짧게 겪고 죽는 것이기에 요절하는 삶은 행복한 삶이다."라고 말을 하였다는 것이다.(마광수 인생론 멘토를 읽다 / 책읽는 귀족) 그의 죽음 속에 평소 절친한 우정을 이어온 배우 김수미는 마광수 교수 빈소에서 “나도 죽어버리겠다”며 오열해 경찰이 출동하는 등 소동을 벌였다고 하는데 글쎄다... 마교수나 김수미교수나 안타까울 따름이다.

쇼펜하우어는 그는 정말 염세주의자인가? 저자(박찬국)가 말하듯 "염세주의 철학자답게 악의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우리 인생과 세계의 어두운 면을 집요하게 드러냈다"고 말하지만 그를 사실 제대로 알고 보면 그는 염세주의자가 아닌 '행복주의자'임을 알게 된다.

인문학자이며 철학자이기도 한 철학자 이동용은 국내 독보적인 쇼펜하우어 연구자로서 그의 저서(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쇼펜하우어가 노년에 집필한 《인생론》을 중심으로 책이 써졌다)에서 이렇게 쇼펜하우어를 말한다.

"염세주의 철학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세상을 바꿔보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진정한 발전은 문제를 인식했을 때에만 가능하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지성이 문제다. 순수하지 않은 지성은 그것의 원인이 되는 의지에 구속되어 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이런 의지를 거부한다. 의지로부터 분리되면 될수록 지성은 순수한 면모를 갖춰나간다." - 97p

그렇다. 한 사람에 대해 잘못 알게 되면 우리는 그 안경으로 바라보고, 그의 작품 전체를 오해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또 다시 철학자 이동영의 책에서 이 말을 빌려와 본다.

쇼펜하우어는 "내적인 재보 중에서도 행복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명랑한 마음이다"라고 말한다. 명랑한 마음이 행복의 관건이다. 다른 모든 것을 잃어도 명랑한 마음만 있으면 모든 것은 즐거운 상황으로 변한다. 그래서 마음 속에 명랑함이 들어오면 그것을 소중하게 다뤄 고이 간직해야 한다. 명랑함이 다시 나가지 않도록 온 정성을 쏟아 보듬어야 한다. 명랑함을 잃으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삶이 불행에 빠지면 살기 싫어지는 법이다. 삶은 그 순간 위기에 처한다. - 145p

아뿔싸... 쇼펜하우어는 극단적인 염세주의자가 아닌 염세적인 세상에서 세상을 어떻게 진정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말하며 행복론을 추구하는 철학자였다. 처음 부분에 언급했듯이 그는 말년에 낙천주의자로서 평안히 72세의 나이까지 살다가 운명했다.

이 책은 이런 궁금증과 함께 그가 인생의 본질을 관통하는 메세지를 어떻게 풀어나갔는가에 대한 지적 관심 속에서 들려진 책이다. 특히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지친 현대인들이 있다면 쇼펜하우어의 소중한 통찰을 담고 있는 국내 최고의 실존철학 권위자인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찬국 교수를 통해서 보는 쇼펜하우어의 메세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사는 게 고통이다”라고 생각하며, 인생의 의미를 잃고 헤매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과 화해를 하는 방법을 배우고 삶을 바라보는 신선한 통찰을 얻게 되리라 본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왜 삶은 고통인가!

어떻게 고통에서 벗어날 것인가!

쇼펜하우어는 건조한 문체를 사용하는 다른 철학자와 다르게 촌철살인과 같은 핵심을 찌르는 문장과 비유를 잘 사용하는 자이다. 예를 들어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는 말도 그렇고 인간들 간의 관계를 "고슴도치의 관계"로 비유하는 것도 남다르다. 고슴도치 관계란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 상처 주기 쉽다는 것이며 이건 인간관계의 본질적인 측면을' 해학적으로 드러내는 탁월한 비유이다.

이와 같이 소펜하우어는 본질에 본질을 파고들어 무엇이 고통이며, 그 원인이 무엇임을 밝히는데 탁월하다. 사람들은 항상 고통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며 남탓을 하는 경향이 일쑤인데 그러나 대부분의 고통은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된다'고 선을 그어주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고통의 원인을 쇼펜하우어는 '욕망'이라는 단어를 가져와 설명한다. 이 부분을 주목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고통과 악이 존재하는 원인에 대해 일차적으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이 욕망의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궁극적으로 우주의 근원이 맹목적인 욕망의 성격을 띈다"는 것이다.

우주의 근원적인 실재가 끊임없이 결핍감에 시달라는 맹목적인 욕망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거기서 비롯되는 모든 개체도 맹목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서로 투쟁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왜 세계에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답이다.

p39

한 마디로 그는 인간을 ‘욕망의 존재’라고 규명했다. 서양의 전통 철학은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정의했지만 쇼펜하우어는 반기를 들며 '인간을 욕망의 존재'로 정의한다. 흔히 이성을 통해 욕망을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성은 욕망을 통제하는 주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원되는 욕망의 노예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욕망이 왕이라면 이성은 외무부 장관"이라는 말이다. 욕망은 삶에 목표를 부여하고 이성은 그 목표를 실현하는 방법으 모색하는 것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욕망을 또 이렇게 비유하는데 "절름발이를 어깨에 메고 가는 힘센 장님"이라고 말한다. 장님은 어딘가에 가고 싶어하지만 그것에 갈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한다. 즉 절름발이는 이성을 가리키고, 장님은 욕망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해관계 때문에 다른 사람과 다툴 때 상대방을 논리로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함으로 상대방을 설득할 때는 "상대방의 이성이 아니라 이익이나 욕망에 호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이런 식으로 타협하면 당신도 이익을 볼 수 있다라는 식으로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성이 욕망에 대해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욕망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그의 통찰력은 참으로 뛰어나다 하겠다.

심지어 쇼펜하우어는 철학이나 신학처럼 욕망과는 무관하고 순수하게 이성에 의해서만 행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학문도 결국은 욕망의 산물이라고 본다.

따라서 욕망이 신속하게 충족되는 상태가 되면 행복이 되고, 늦게 충족이 되거나 충족되지 않은 상태가 고통이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욕망이 충족되더라도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극히 짧은 순간에 그치며 사라진다. 자신이 만족하는 욕망에 다다르면 아이러니 하게도 그 행복감은 곧 사라지기 시작한다. 책은 짜장면을 비유로 드는데 먹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다가 먹게 될 때 그 잠깐의 행복한 포만감은 곧 사라져 버리는 것을 우리 또한 목도한다. 따라서 영속적인 만족은 없고,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는 고통의 시간은 긴 반면에 행복의 시간은 짧은 것이 보통인 것이다.

"욕망은 행복에 의지하지 안고 항상 끊임없이 저절로 용솟음치며, 그에 따른 결핍과 고통은 우리의 의식을 강하게 사로잡는다."

방금 위에 언급했듯이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한 가지 일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와 명예를 갖춘 사람도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는 별로 의식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아직 충족되지 못한 욕망과 그에 따른 결핍감과 고통은 강하게 의식한다. 즉 유쾌한 시간일수록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급속도로사라져버리지만, 불행한 시간일수록 우리의 의식을 짓누르며 느리게 가는 것이다. 이렇게 행복보다는 고통을 강하게 의식하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능한 한 제거하려고 애써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사람이 아무런 문제 없이 삶이 지속되면 가장 무서운 것이 찾아오는데 그건 바로 "권태"이다. 동물들은 성욕이나 식욕과 같은 본능적인 욕망이 충족되면 평화롭게 살아가고 불만이 없는데 인간은 충족된 상태 속에서 시간이 아무런 자극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면 지겨움과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킬링타임용 자극'을 즉 시간을 죽이는 자극을 찾아 나선다. 그래서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잔인하고 부도덕한 행동을 불사한다. 무고한 짐승을 사냥하고, 도박과 오락을 탐내며, 섹스중독이나 마약중독, 알콜중옥에 빠지는 이유가 바로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심지어 전쟁을 일으키는 심리 이면에도 권태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유럽의 많은 사람이 마침내 지긋지긋한 권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환호했다는 것이다.(p50) 많으 정부가 사람들의 권태를 달래기 위해 유흥을 제공했는데 민중은 이렇게 빵문 아니라 서커스도 필요한 것이다.

여행, 호화로운 파티, 화려한 의상, 보석, 진주, 무희, 곡예사, 가면 등등의 이면에는 권태의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말이 현재 인간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는 말로 들리는 것은 뭘까?

따라서 "권태는 도박과 싸움 등 온갖 악덕의 온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적당한 고통과 고난이 필요하다. 인간이 무언가를 소원하자마자 즉시 충족되는 상태는 오히려 지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곡식이 저절로 잘 자라고, 비둘기들이 평화롭게 하늘을 날고 또한 모든 남자가 손쉽게 애인을 얻어 잠자리를 함께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은 얼마 안 가 권태를 느껴 죽어버린든다 스스로 목을 졸라 죽어버릴 것이다. 아니면 싸움과 살해를 일삼으면서 지금보다 더 고토으로 가득찬 세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이 세계가 가장 알맞는 곳이며 우리의 생활방식이 가장 적합한 것이다.

[...]

만약 현실에서도 모든 욕망을 순조롭게 다 채우고 항상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면, 세익스피어나 괴테는 시를 쓰지 않았을 것디다. 플라톤도 철학을 탐구하지 않았을 것이며, 칸트도 순수이성비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사상의 세계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일단 현실에서 절망과 고통을 맛본 후의 일인 것이다.

p52-53

이렇게 인간은 물질이 풍족하며 권태에 시달리고, 그렇지 않으면 결핍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는 '귀족의 고통은 권태이고, 민중의 고통은 궁핍'이라고 말했다. 즉 권태는 상류층에 가해지는 채찍이고, 궁핍은 민중에게 가해지는 채찍이다. 바로 이러한 것에서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오가는 시계추다"고 말한 것이다.

정말 인생은 체워지지 않은 욕망으로 인해 느끼는 고통과, 욕망의 충족 이후에 들어서는 권태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죽음으로 끝나는 것에 불고한 인생이란 말인가? 어린 아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동일하게 욕망의 끌려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즉 욕망의 대상이 장난감이나 인형에서 좋은 대학이나 직장, 큰 부, 큰 집, 매혹적인 이성, 명예, 높은 직위 등으로 바뀔 뿐 욕망과 권태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모든 즐거움은 반드시 권태로 전환되기 떄문에 죽어서 천국에 가도 좋은 것은 없다. 천국에서는 행복이 아닐라 권태가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천국의 인간을 권태에 시달리게 하지 않으려며 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놀이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신에게 새로운 천국을 달라고 졸라댈 것이다."

p55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욕망의 존재인 우리가 욕망을 충족되어도 문제가 생기고,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면 괴로워하는데 결국 쇼펜하우어는 우리에게 고통이 삶의 본질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담담히 세상을 살아가야 함을 말한다. 특히 어떤 사건을 받아들이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데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말에 따라 "인간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어떤 사건이 아니고 그 사건에 관한 생각"임을 알고, 이미 지나간 과거의 실패나 실수 혹은 정신적 상처 때문에 힘들어 하지 말고 고통의 현실을 직시하며 주어진 삶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욕망에 대한 근절'이 삶의 고뇌에서 탈출하게 되는 비결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며 끝을 맺는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 욕망 자체가 고통이다. 고통은 욕망 자체에서 오는 것이지 욕망의 대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 우라는 욕망의 대상이 우리의 욕망을 만족시켜줄 것처럼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 욕망을 끊을 때만 참된 만족을 얻는 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욕망을 끊음으로써만 우리는 뇌(괴로원 하는 생각)의 세계에서 해탈할 수가 있다. p227

이 책 1부에선 ‘사는 게 고통이다’ 것을 여러가지 부분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면 2부에선 ‘고통의 늪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즉 욕망을 극복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읽으면서 줄칠 것도 많고, 생각해 볼 내용도 많다. 이 책 한 권이 인생에 대한 총체적은 것을 다 다루어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자 박찬국 교수는 쇼펜하우어를 통한 '인간 고통에 대한 해방'을 잘 다뤄주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으며 그가 다룬 '욕망'을 보면서 아마도 쇼펜하우어가 유대 비밀의 지혜서인 카발라를 본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이 책 카발라에 따르면 인류의 성분이 즉 우리의 실체와 우리 본질의 핵심이 "욕망"이라고 정의한다. "욕망은 우리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책 한 부분을 인용하자면 "인간은 어떠한 내적 욕구가 동하지 않고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

더 깊게 우주의 비밀과 삶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내 영혼의 빛"이라는 책을 추천한다.(내 영혼의 빛, 2003 나무의 숲 p31-34) 삶의 고통에 관한 문제 앞에 가장 지적인 방법으로 내 인생과 화해를 하도록 해주는 쇼펜하우어을 통한 박찬국 교수의 글은 분명 명강의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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