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드로잉 내가 좋아하는 것들 4
황수연 지음 / 스토리닷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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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적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마음에 '플란다스의 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똑같이 그리려고 애를 썼는데 그때의 모습으로는 나는 만족했다. 그리고 나는 화가에 대한 꿈을 꾸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림은 잘 그리고 싶지만 실력이 따라 주지 못했고, 그렇게까지 취미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 또한 고흐나 고갱처럼 은퇴 후에, 고즈넉한 시간에 내가 표현하고 싶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보리라는 다짐을 가끔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뜬금없이 무언가를 그리고 싶고, 화가가 되고자 하는 작은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가수 솔비가 가끔 TV에 등장하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준 적이 있다. 아마추어 수준으로 봤을 때 꽤 찮게 표현하며 예술적 재능이 보인다. 헤르만 헤세를 알게 되면서 그의 작품이 글이 아닌 그림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헤르만 헤세 그림 시집(출: 에피파니)'이 그것이다.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나는, 추상적 지혜의 세계가 내 원시적인 창조의 기쁨을 막는 것을, 나 스스로 용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헤세의 그림을 보면 그의 내면 세계가 보인다. 헤세의 작품세계 안에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지나며 낭만주의에서 점차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는데 당시 헤세는 전쟁을 반대하여 조국과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부친과 아내, 자식이 병에 걸리는 등 힘겨운 나날을 보냈었다.

그즈음 정신치료를 위한 그림을 그리며 자아의 추구와 성찰적 삶에 눈떴고, 화가로의 영역까지 분야를 넓혀 나갔다고 하는데 그림은 이렇게 정신적 추구를 위한 갈증이며, 내면화의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을 손에든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나 또한 언젠가는 시간이라는 무한정의 시간이 주어질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드로잉' 하고 싶다. 저자처럼 "무슨 마음이었을까. 여느 날들처럼 아침 시간을 보내고 테이블에 앉아 늘 가지고 다니던 손바닥만 한 노트와 펜을 꺼내서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처럼 나 또한 그럴 때가 오리라 생각되어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물론 화가처럼 잘 그리고 싶은 마음도, 다 그린 뒤에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마음도 없이 그릴테지만 내 아내에게나 자녀들에게는 내 작품 세계를 보여주리라 생각된다.

나의 행동은 정말 순수하게, 아무 계산도 없는 '그리는 행위' 그 자체였다.

그저 '그리고 싶다'는 단순하고 본능적이며 군더더기 없는 마음이 나를 이끌었을 것이다.

그래.. 화가가 되어 가수 조영남처럼 시끄럽게 난리를 치는 그림 보다는 그저 단순한 행위로서, 내 자아의 표현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 책의 저자인 황수연 작가에 대한 프로필(현재 네팔에 거주 중)이 없어 어떤 내면 세계가 있는지 짐작은 가지 않지만, 책을 통해 저자의 마음을 보며 그림에 대한 단상을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아쉬운 점을 미리 말하지만 엽서로 준 그림을 보며 마음이 왠지 모르게 좋았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런 그림들이 실려있지 않다. 너무 아쉬운 대목이라 짚어보고 간다.

왜냐하면 저자의 첫 번째 책인 '나의 히말라야에게'라는 책을 보니 그림과 함께 글이 실려져 있다.

괜찮은 그림들이다. 전시회를 열어도 좋은 그림이다. 그러므로 이번 책에 그런 그림들이 몇 점이라도 실렸으면 좋았겠는데 아쉬운 마음이 크다.

 

저자의 책: 나의 히말라야에게서 가져옴

그러나 이번 책에는 저자가 그림을 그리게 되는 과정의 어떠함에 대한 자신의 에세이로 접근하고자 함을 알게 된다. 저자의 의도에 대해 언급해 보면, “멈춰 있는 듯 보여도 다음날 아침 새 봉오리가 맺혀 있는 꽃처럼 오늘도 애쓰는 우리 모두는 꽃을 피워 가는 중일 것입니다. 저와 같은 길을 가려는 사람들, 오늘도 홀로 나름의 창작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들을 응원합니다.”라고 전하고 있다.

그렇다. ‘오늘은 또 어떤 그림을 그려 볼까’ 하는 설레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를 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왜 그리고 있는지? 왜 그려야만 하는 지를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될 것이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에 욕심이 들어가는 순간이 있다. 즉 그림을 수단으로 삼아 내 가치를 인정받아 단순히 보여주고자 하는 그림에서 관심 중독으로 변하는 퇴색을 거쳐, 변질된 그림으로 전락할 수 있는데 이러한 부분을 저자의 경험을 통해 들려주고 있다.

그림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어느 작가의 인터뷰를 이 책에 싣고 있는데 이러하다.

저에게 그림은 수단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함께 한 삶의 목적 그 자체입니다. 만약 그림이 수단이 되면 지속성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그림을 수단으로 하지 말고 목적으로 삼으라고 강조합니다. 22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림을 순수하게 목적으로 시작했다가 수단으로 바꾸는 미술 학도를 99.9% 가깝게 목격했습니다. 결국, 그들 모두 중도에 포기하고 사라졌습니다.

-킬드런(kildren) 작가 네이버 디자인 인터뷰 중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그림을 통해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돈을 벌고 싶었던 마음, 그림을 수단 삼아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 받고 싶던 모든 마음이 부끄러워졌다고 고백한다. 또한 처음에는 그리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저 그리는 행위를 위한 그림을 그렸던 것 같은데 그것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갈구하면서 그림에 대한 순수적 향취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렇게 사람이란 자기 자신으로 남기 보다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관심 받으려고 자기 것이 아닌 남의 눈으로 사는 경우가 있는 거 같다. 그림 또한 마찬가지며, 글쓰기나 서평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사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바를 남기는 것이다. 서평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은 지키면서 내가 생각하는 서평을 쓰는 것 또한 원초적 서평에 다가 가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저자가 고민했던 그 고민을 분명 어느 누구 또한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면에서 솔직한 저자의 감정과 서툰 글쓰기는 즉 순수함과 때묻지 않는 글쓰기는 오히려 읽는 독자들에게 마음을 울리며 공감이 되는 글로 다가 오고 있다.

그림을 그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무슨 예술을 한답시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부끄러운 글이 되지는 않을까, 이런 염려들을 순간순간 이겨내야 했다.

모두에게 떳떳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한 구절이라도, 한 명이라도 제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랐다....(저자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글의 표현을 바꿨다) p188

매일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소소한 과정의 솔직 담백한 얘기는 글을 통해 읽는 독자들에게 동질감과 함께 무엇이 중요한 가치를 알려주는 소중한 책이 되었다. 저자의 맺음말 전의 끝 말이 마음에 남아 고이 서평의 끝을 장식해 본다.

'내 그림아, 짐 지워서 미안해.

그저 거기 있어 줘.

아무것도 안 되어도 괜찮아.'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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