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신뢰 -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현대지성 클래식 36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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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이라는 이 이름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지성적 혜택과 축복을 받은 존재라 생각된다. 그의 글을 읽자마자 예민한 내적 지성이 꿈틀 되었고, 영민한 마음이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미국 초절(월)주의 시인이자 사상가이다.(19세기에 미국의 사상가들이 주장한 이상주의적 관념론에 의한 사상개혁운동의 입장. 초절주의는 진리를 자각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 내재되어있음을 인식하고 이성보다는 인간의 감성과 직관에 호소하며, 인간과 자연의 도처에 신이 편재함을 믿고,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의 내적 직관을 존중하는 사상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철학자이며 사상가와 저자 중에 '에픽테토스, 세네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아우렐리우스, 파스칼, 노자, 쇠렌 키르케고르, 그리고 톨스토이와 헤르만 헤세'가 있는데 그 중에 단연 뛰어난 존재인 에머슨의 글을 좋아한다. 톨스토이는 에머슨의 글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그만큼 그의 글에는 '본성 안에서 끌어 올린 내적 지식'이 남들과 다르게 표현되어 진다.

에머슨은 영국 비평가이자 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과 친구가 되는데 그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은 서로가 자석처럼 끌리듯 평생 지속된 우정을 나누게 된다. 칼라일의 글 또한 읽으면서 매우 좋았는데 고수는 고수를 안다는 말처럼 그 둘은 기꺼운 친구로서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갑자기 칼라일을 말한 이유는 이러하다. 그건 프리드리히 니체가 『우상들의 황혼』에서 두 사람을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에머슨은 칼라일보다 훨씬 더 계몽되고 폭넓고 유연하고, 또 더욱 심오하다."

실제 책을 읽어보면 그렇게 느껴진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 버락 오바마, 니체, 간디, 마이클 잭슨에게 영감을 준 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니체가 말한 초인(超人)의 사상적 뿌리가 여기에 있으며,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사상적 근거 또한 에머슨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알게 된 것인데 소로가 에머슨의 제자이자 사상적 동지였다는 것이 새삼 놀라우면서 수긍되어지는 이유는 소로우의 냄새가 에머슨에게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에머슨의 글은 어떤 사람의 추천을 떠나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에게나 "내적 확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끌릴 수 밖에 없는 책인 것을 말하고 싶다."

이 책에는 미국의 개척·독립정신의 초석이 된 에머슨의 에세이 3편이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당연히 좋지만 저자의 꼼꼼한 해제를 꼭 먼저 읽고 만나기를 원한다. 에머슨이란 사람의 생애를 통해 그의 삶의 가치관이 어떻게 사상적 표현으로 드러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더불어 저작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작품에 대한 해설을 곁들이면 에머슨의 가르침이 더욱더 마음에 각인이 되어질 것이다.

저자의 생애를 거론하는 것은 이 책을 설명하는데 매우 적절하다 생각된다. 왜냐하면 에머슨이라는 사람(사상)이 여기에서 탄생(출발)되어지기 때문이다. 에머슨은 14세에 하버드대학교를 입학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23세에 아버지가 근무했던 유니테리언 교회의 목회자가 된다. 그러나 목회를 해나가면서 기존의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아무 못마땅하게 여기며 거부를 한다. 1832년에 에머슨은 신자들에게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볼 때 더 이상 기존의 예배 형식을 따를 수 없다고 선언을 했다.

그 이유를 든다면 "그리스도가 그런 일반적이고 규칙적인 의식 준수를 가르쳤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톨스토이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많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 "참된 신앙은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참된 신앙은, 어느 요일엔 어떤 음식을 먹고, 어느 요일엔 교회에 가서 어떤 기도를 드리는가 함을 아는 데 있지 않다.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좋은 삶을 영위하며, 자기가 남에게 기대하는 것을 이웃에 베푸는 데 있다."

톨스토이만 그러한가? 이런 점은 헤르만 헤세에게서도 발견된다. 그의 부친이나 외가쪽은 다 목회자이며 선교사다. 그는 신앙에 대해 많이 방황하며 규칙적인 것과 형식에 구속되지 않고 살아갔다. 어쩌면 우리는 용기가 없어 기존의 신앙 체계 안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저자는 이때부터 「자기 신뢰」에서 말하는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생활 방식을 찾아 나갔는데 그 결과로 나온 에세이가 바로 『자기 신뢰』였다. 이 원고가 왜 중요한가 할때 이 사상은 실제적인 고뇌와 깊은 사유 끝에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신뢰』는 이렇게 에머슨의 여러 에세이 중에서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자기 신뢰는 초월주의의 핵심 교리이기도 한데 에세이 책 머리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Ne te quaesiveris extra

당신 자신을 자기 이외의 곳에서 찾지 말라

천재란 무엇인가 할 때 단순히 아이큐가 좋은 자가 아닌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이라는 그의 정의는 분명 옳은 생각이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는데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무지에서 나오고, 모방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또한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의 말에 그대로 순응해서는 안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자기 방식대로 밀고 나가야 함을' 강조한다. 심지어 이런 말까지 한다. "나의 충동 때문에 내가 악마의 자식이 된다면, 나는 악마로 살아가겠습니다" 이 말 속에 니체의 뻔뻔함이나 오만함이 보이는 것은 무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 대목에서 니체가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니체의 글을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는 분명 에머슨에게 영향을 받았다. 특히 이 대목에서 말이다.

그러나 에머슨의 이 과격한 말은 자기 신뢰가 그만큼 중요한 것임을 말해주는 대목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는 또 말한다. "내 본성에서 나오는 법을 제외하고, 그 어떤 법도 신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옳은 것은 자기 기질을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

작년에 읽은 책 가운데 "잠들기 전 철학 한 줄(이화수 저)"이라는 책에 보면 내가 좋아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글이 나온다. 이 대목에서 나는 감동을 받고 서평에 기록해 두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보다 자신의 의견에

별가치를 두지 않는 다는 사실은

참 의아한 일이다.

진정 인간이 온전하게 세상을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기준에 부합된 형태가 아닌 '내 자신만의 오롯한 삶'임을 분명히 정의를 내리게 된다. 앙리 베르그송의 말이다. 자기 신뢰에 대해 그 또한 동일한 목소리를 낸다. "모든 철학자에겐 두 명의 철학자가 있다. 자기 자신과 스피노자다."

그렇다. 우린 자신의 철학적 사고 보다 스피노자의 철학에 비중을 두며 내 철학을 의심하고 있다. 자꾸만 눈치를 보며 내 삶을 의심하며 산다. SNS는 그런면에서 인간에겐 독이다.

어쩌면 에메슨은 자기 신뢰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이 쓴 글에서도 벗어나 독자적인 삶을 살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제자인 월든의 저자 소로는 그만의 삶을 살면서 「월든」이라는 대작을 문명인에게 선사해 주었다.

이 책에는 에머슨의 에세이 3편이 실려 있다. 「자기신뢰」「운명」「개혁하는 인간」이 그것이다.

단연 으뜸은 「자기신뢰」이다. 저자의 꼼꼼한 해제와 함께 읽어보면 분명 가장 묵직한 가르침을 얻어 또 하나의 에머슨이 탄생되리라 본다. 개인적으로 나머지 에세이는 즉「운명」이나 「개혁하는 인간」은 자기신뢰에 대한 부연적 에세이로 여겨진다. 해제 끝부분에 언급하듯이 각각의 에세이는 원래 소제목이 없었으나 가독성과 독자의 편의를 위해 옮긴이가 임시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즉 세 편의 에세이는 일관된 주제로 그 흐름을 이어간다. 아무리 운명이라고 하지만 그 운명에 맞서는 자유의지가 있음을 알고 자기 생각을 펼치는 존재가 되라고 한다. 또한 개혁하는 인간이란 다름 아닌 용서에 바탕을 둔 사랑과 자기 신뢰를 바탕으로 용감하게 기존의 관습에 순응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앞으로 나가라고 말한다.

그렇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고 했다면, 에머슨은 “너 자신을 믿으라”(Trust Thyself)라고 역설함으로써 현대적 정신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고 있다.

이 말은 진실이다. 즉 "모세와 플라톤 그리고 밀턴 같은 선지자들이 세상에서 찬양받을 수 있있던 것은, 그들은 책과 전통을 무시하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생각을 말했기 때문이다."

시인과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삶의 지침을 따르기 앞서 우리 자신의 마음에 번개처럼 스치는 섬광을 발견하고 관찰하는 법을 진정 배우며 우리가 가진 직관을 믿어보면 어떨까?

독자인 나는 헤르만 헤세에게서 다시금 「자기신뢰」에 대한 강력한 가르침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헤세의 글을 적으며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고, 그 길을 찾아보려는 시도이며, 오솔길을 찾아가는 암시이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깨달은 인간에게 부여된 의무는 오직 한 가지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찾고, 그러한 자신 속에서 더욱 견고해져서 어디를 가든지 간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수레바퀴 아래서

“나는 시를 짓기 위해 설교를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 또한 다른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건 부수적인 것이다. 개개인에게 진정한 천직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것 한 가지뿐이다.”

헤르민 헤세

이 책의 한 문장

인간 내부에 깃든 힘은 본래 새롭다. 그 새로움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예상하지 못하는데, 직접 뭔가를 해보아야만 비로소 자기 능력을 알게 된다. p15

_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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