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 왕과 사대부, 그리고 사관마저 지우려 했던 조선 최초의 자유로운 사상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윤휴(尹鑴) 라는 인물은 처음 듣는 이름임에는 틀림 없다. 왜냐하면 제목이 시사하듯 그의 이름은 금기어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깊이가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흔히 듣는 이름은 아님은 확실하다. 물론 책에는 송시열과 노론 기득권 세력에 대해 말해주고, 숙종이란 이름과 류성룡이라는 익히 귀에 익은 인물에 대해선 들어 보았다.

 

그러나 윤휴라는 존재는 마치 "여주에 사는 그(윤휴)의 후손이 윤휴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것 같다"는 말처럼 윤휴는 나에게도 현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크게 알려지지 않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나에게 소중하게 다가온 책이며 '윤휴'라는 인물을 통해 시대 역사를 새롭게 보는 안목과 미래를 보는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핵심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든다. 내가 뽑은 핵심 문장이기에 공감 가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문장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즉 윤휴라는 인물은 과히 '주자'보다 더 뛰어난 존재이며 사대주의 사상에 머물러 있는 기득권(정적 세력) 세력에게 가히 큰 핵폰탄을 날린 위대한 인물로 보인다.

 

윤휴는 주자를 반대하고 거슬러서 장구를 마음대로 고쳤으며, 심지어 중용(中庸)(주자의) 주석을 고친 것이 많았다. 항상 말하기를 "자사(子思 중용의 저자) 의 뜻을 주자 혼자만 알고 어찌 나는 모른다는 말인가"라고 했으니 이는 진실로 사문의 반적이다. -숙종실록 31017

 

그렇다. "세상의 많은 이치를 어찌 주자 혼자 알고 나는 모른단 말이냐?"가 이 책의 핵심이며, 이 책의 한 문장이다.

 

우리 사회를 보자. 우리 사회는 남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 사람들이 역사학계의 주류다. 이들이 과거에는 일제 식민 사관만 추종하더니 이제는 중국 동북공정까지 추종하는 것으로 악화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등은 그 상부 기관을 일본 내각이나 중국 국무원으로 바꾸면 명실이 상부할 형태를 계속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백호 윤휴가 항변하던 "세상의 많은 이치를 어찌 주자 혼자 알고 나는 모른단 말이냐?"의 목소리가 절실히 우리 시대에 되살아 나야할 시점임을 이 책은 주장하고 있다.

 

윤휴가 사약을 받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하려고 금부도사 홍수태에게 필묵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악한놈이 있나. 그는 윤휴에게 한 마디의 말도 허용치 않았다. 한때 그의 정적들은 그를 당대 최고의 선비로 추앙했었다. 그런데 이 선비의 지목은 놀랍게도 역이 아니었다. 은 커녕 임금과 백성을 너무도 사랑했고, 평생 일관되게 도를 추고했다. 즉 그의 길에 주자는 상대적 가치를 지닐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이 되었다. 내용은 이러하다.

 

그의 길에 북벌대의가 있었다. 그 순간 말로만 북벌을 외처던 세력에게 그는 정적이 되었다. 그의 길에 백성들의 민폐 해소가 있었고, 신분재 해체가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으며 그는 적이 되었다. 이 시대는 주자가 절대적 가치로 군림하기 시작하던 시대라고 한다.

 

윤휴가 죽은 후 조선은 침묵과 위선의 세계로 빠져들어 갔으며, 그런 침묵과 위선은 무려 330여 년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고 저자는 말해 준다.

 

윤휴는 그 당시 유럽세계에서 벌어졌던 '마녀사냥'을 당한 것이다. 종교나 사상이 그 나라의 전통이 되고, 교리가 되면 그것은 권력을 덧입고 무시무시한 ''이 된다. 윤휴가 사약을 마시기 직전 이런 말을 했다고 하며 유언 아닌 유언이 된 말이 있다.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은 무엇 있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유언이며, 당시 서인들의 행패가 얼마나 악하고 치사한지를 보게 되는 대목이다.

 

왜 주류 세력들은 새로운 사고와 사상을 마치 이단보듯 제물로 삼고 정치적, 사상적 숙청을 감행하는 것인가? 마치 주자를 절대적인 도그마로 삼고, 조금이라고 벗어나면 죽는 줄 아는 그들의 모습들이 애처롭기도 하다. 최근에 자산어보라는 영화를 보았다. 18012, 서슬퍼런 국청(鞠廳)에 삼형제가 잡혀왔는데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인물도 포함되었다.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삼형제는 당시 신유박해로 인해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이때 두 형제는 신()을 버리고 목숨을 구한다.하지만 한 형제(정약종)는 끝내 배교를 거부하고 죽음을 받아 들였다. 왜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건 가부장적 권위와 유교적 의례·의식을 거부하는 천주교의 확대가 당시 유교사회 일반에 대한 도전이자 지배체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천주교는 그야말로 사교(邪敎)였다. 사교라는 말을 찾아보니 "부정(不淨)하고 요사(妖邪)스러운 종교.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종교"라고 하였다. 당연히 이런 사교는 죽음으로 없애 버렸다.

 

이와같이 윤휴 또한 당시 지배체제에 위협이 되어 제거된 것이다.

 

윤휴의 죄는 세 가지였는데 첫째,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주자의 학설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하고자 한 죄이다. 둘째 서인 당파의 당론이었던 북벌 불가에 저항하며 조선을 동아시아의 맹주로 만드는 부국강병을 도모한 죄이다. 셋째 사대부 계급의 특권을 타파하고 반상과 남녀의 차별을 넘어선 세상을 실현하려 한 죄이다.

 

그가 생각한 세상은 어쩌면 시대를 앞서 나간 것인줄 모르지만 가히 이것이 죽일만큼 죄가 되었는지 의문과 함께 화가 난다. 물론 고대 그리스 철학자 가운데 4대 성인에 들어가는 소크라테스의 죽음 또한 당시 지배체제가 가진 생각 이상의 그림을 그렸기에 그는 독배를 마실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어이없게도 윤휴는 죽어야 했고 그 이름은 조선 최대의 금기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송시열과 노론 기득권 세력에 의해 사문난적(斯文亂賊)과 역적으로 몰려 사형당한 지 340여 년이 지난 지금, 역사가 이덕일에 의하여 무려 10여 년에 걸친 열정적인 연구와 치밀하고도 섬세한 고증으로 금기시되었던 윤휴의 삶과 사상을 오롯이 되살려주고 있는 책이다.

 

그러면 "지금 왜 윤휴를 말하는가?"이다. 그건 윤휴는 조선 개혁에 대한 웅장하고도 장대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휴에게 조선은 소변통(小變通), 즉 작은 개혁이 아니라 혁명에 가까운 대변통(大變通)이 필요한 나라였음을 말해주고자 했다. 그는 평민을 위한 무과인 만인과와 서얼 허통 등을 통해 인재를 길러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고자 하는 북벌을 추진했는데, 이러한 사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윤휴가 주자의 해석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소신으로 학문 세계를 수립한 굉장히 자유로운 사상가였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을 보자.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각자 진영 논리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들이 정말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그저 당론에 입각하여 자기 밥벌이로 생각하며, 그저 훈장처럼 국회의원이라는 금뺏지를 달고 있는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유럽의 정치인들과는 너무나 다르니 기가막힐 따름이다. 정말 울나라 정치인들은 일하지 않고도 잘 먹고 살며, 혜택만 해도 어마어마하고, 누려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정작 일은 않고 만날 서로 잡아 먹으려는데 에너지를 다 소비하고 있다.

 

언젠가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 Jose Alberto Mujica 대통령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고, 국민에게 존경을 넘어 사랑받는 대통령이다.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아래와 같다.

 

"28년 된 낡은 자동차를 끌며 월급의 90%를 기부하는 대통령"

"많은 말을 하지만 결코 국민을 속이지 않는 대통령"

"노숙자에게 대통령궁을 내주는 대통령"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지만 '철학자'로 불리는 대통령"

"강대국 정상들 앞에서 거침없이 쓴 소리를 하는 대통령"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현자'라고 칭송받은 대통령"

 

유럽의 정치인들은 또 어떤가?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국회의사당으로 가보자. '라스무스 노어퀴스트' 의원이란 여성이 있다. 그녀는 매일 아침 자전거로 출근한다. 30분을 달려 도착한 국회의사당 주차장은 의원과 국회직원들이 타고 온 자전거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특히 라스무스 의원은 좁은 사무실에서 하루 평균 12시간 일한다. 비서 1명이 국회의원 2명을 보조하며, 국회출석을 안하거나 법안 발의를 안하면 급여는 없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덴마크 정치인이 검소하고, 부패가 없으며,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스웨덴 국회의원 힐레비 라르손 의원으로 가보자. 그는 지난 4년간 제출한 법안만 638개에 달힌다. 정책 보좌관 1명이 의원 4명을 보조하는 시스템이지만, 그는 이틀에 한 개씩 법안을 제출했다. 본회의 상임위는 빠진 날이 없다고 한다.

 

"의원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 위원들이 투표해서 의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합니다."(프레드릭 룬드 사멜리 사회복지상임위원장) 스웨덴의 국회 의원 관리 시스템은 매우 엄격하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 빠진 시간 만큼 수당을 주지 않고, 의사 발언권을 박탈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그들을 한 마디로 '특권층'으로 보지 않는가? 유럽 정치인은 특권 의식이 없는데 아직도 수준 낮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특권의식이 풍부하다 못해 넘친다.

 

"운전기사가 모는 전용 고급 승용차를 타고 출근해 45평 넓이의 쾌적한 사무실에서 일합니다. 9명의 보좌진(보좌관 2, 비서관 2, 비서 3, 인턴 2)을 두고, 국회가 개점휴업해도 꼬박꼬박 세비를 타가죠. 국회의원 세비는 연 14천만원에 달하죠."

 

무언가는 잘못된 것인 줄을 국민들이 통감하며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윤휴'라는 이름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이름이며 그의 생각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참된 사상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할 그랜드 디자인은 무엇인가? 금기어가 되어버린 조선 개혁가의 삶과 사상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음을 이 책은 분명히 말한다.

 

반상의 차이를 넘어 남녀의 차별까지

 

윤휴의 멋진면은 여기서 또 부각된다. 최근 자산어보 영화를 보았다고 했다. 정약용과 다르게 주인공인 맏형 정약전은 하늘과 땅의 구분, 임금과 신하의 구분, 양반과 천민의 구분 같은 경계를 지워내는 것을 정치적 이상향으로 삼았다.(약용은 그런 신분질서 및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한 사회개혁을 주장)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이상(理想) 이었다. 그리고 영화에는 '군포'에 대해 다루는 장면이 리얼하게 나온다. 군포란 '조선 시대에, 병역을 면제하여 주는 대신으로 받아들이던 베'를 말한다.

 

당시는 죽은 사람과 간난아이까지 군포를 부과하여 백성들의 삶을 거의 옥죄다 못해 죽도록 했다.

 

윤휴는 벼슬을 하지 않은 백두(白頭)의 신분으로 백성들의 질고를 몸소 함께 겪은 순간이 있는데 그때 이런 장면을 몸소 보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사람과 간난아이까지 군포를 부과하는 군적수포제 대신 양반 사대부들이 군역을 함께 짊어질 수 있는 호포법과 구산제를 주장하게 된다. 또한 성현의 말씀을 배움에 있어 남녀의 구별이 없다고 여기고 여성들에게도 학문을 가르쳤다. 당시 관점으로는 놀라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이때가 어느 때인가? 성리학이 남존여비의 이론적 무기로 변해가던 조선 후기이다. 그런데 이때 여성들에게도 경전을 가르친 것이다. 경전은 이러하니 효경(孝經)시경(詩經)주남(周南), 소남(召南)등이었다. 책의 내용이 좋아 그대로 가져오면 "조선 초 권근(權近)시경주석서인 시천견록(詩淺見錄)의 첫 머리에서 주남은 규문(閨門: 여성의 거처)의 일로부터 시작해 천하의 일에 통달하는 것이요, 소남은 천하의 일로부터 말미암아 규문의 일에 근본을 둔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남, 소남은 여성들에게 삼종지도(여자가 따라야 할 세 가지 도리. 여자는 어려서 어버이께 순종하고 시집가서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르는 도리)를 강요하는 책이 아니라 가정사와 천하의 일이 하나임을 말해주는 책이었다." 실로 윤휴는 반상의 차이를 넘어 남녀의 차별까지 넘어서는 위대한 일을 벌인 것이다.

 

진정 그는 앞서나간 인물이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구현한 존재이다. 그런 인물을 매우 잘 평가한 분이 있으니 김성애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이다. 그는 윤휴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백호 윤휴(白湖 尹鑴)17세기의 천재적인 산림학자(山林學者), 실천적인 경세가(經世家)였다. 특히 주자 성리학이 교조적 권위를 누렸던 조선후기에 경학(經學)에서 독자적인 학문체계를 수립하였고, 이로 인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지목되어 정치적, 사상적 숙청을 당했다는 면에서 일찍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조선시대에 백호의 사상은 항상 이단으로 취급되었고, 조선 말까지 신원이 회복되지 못하여 문집조차 출간되지 못하였다. 백호에 대한 평가도 당색에 따라 달랐는데, 노론계는 끝까지 정인홍(鄭仁弘)이나 이이첨(李爾瞻)과 같은 소인이자 주자학의 적인 이단으로 취급했지만, 남인들은 '백호는 덕을 이룬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이요, 정암은 덕을 이루지 못한 백호이다'라고 평가하여 윤휴를 조선 성리학의 도통을 계승한 조광조에 비의할 정도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윤휴, 분명 일반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것이다. 1617년에 태어나 1680년에 사망한 유학자이자 경세가인 그는 성장기에 전란을 겪었기에 특별한 스승이 없었다. 이 때문에 어떤 제약도 받지 않은 채 학문 세계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그를 주자라는 틀에서 벗어나 더 높은 세계을 보게 하는 길이 되었다. 비록 송시열 등 서인 세력에 의해 그는 죽어 없어졌지만 그가 가진 생각의 이념들은 독자인 나에게 설레임을 주고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새롭게 가지게 한다.

 

그리고 북벌론에 대한 그의 의견 앞에 사대부들이 취한 모습을 보면 오늘 날의 구태의연한 정치인들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얼마 전 서울 시장 선거가 있었다. 여당의 완패이다. 그러면 야당 인물이 선뜻 좋은가? 말하진 않겠다. 그런데 말이다. 윤휴와 같은 인물이 현재 존재해도 국민들과 정치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수준은 아닌지 묻고 싶다. 국민들이여 왜 새로운 인물, 바르고 올곧고 깨끗한 인물을 못 찾는가? 혹시 내 실리에 손해가 될까봐 그러진 않는가? 나라를 위한 인물 보다 자기 실리에 유익되지 않기에 윤휴 같은 인물을 외면하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당색깔(진영논리)과 명예와 업적을 위해서만 일하는 정치인들이여 왜 당신들은 윤휴를 죽였는가? 이 책을 읽고 이런 물음이 계속 뇌리에 남는다.

 

시대가 따라주지 못한 조선후기의 최고 학자이자 문신인 그가 그리운것은 나만 그러한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