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기계에서 벗어나 - AI가 바꾸는 세상과 인간의 미래
스가쓰케 마사노부 지음, 현선 옮김 / 항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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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에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기계의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하고 질문을 한다. 즉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해주듯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권하는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동물'도 되지 말고, AI를 무조건 신봉하고 거기에 의존하는 '기계'도 되지 않는 '인간의 길'을 찾아보자는 메시지가 이 책안에 들어가 있다.

 

 

우리는 이세돌과 알파고가 대결하는 AI 시대를 흥분된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큰 충격을 받게 되었는데 과연 이런 AI 시대가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AI 시대가 도래하였고, AI 시대를 혁명이라고 말할 정도로 현재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이미 맥도날드나 롯데리아와 같은 패스트푸드점은 인간대신 기계가 우리를 대한다. 작년에는 다이소에 갔다가 충격을 먹었다. 코로나로 인해 안전을 위해서인지, 매출을 위해서인지 인력들이 사라지고 바코드 스캐너가 자리 잡고 고객의 계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계가 점점 인간의 자리를 차지하고 편리성을 주고 있는데 과연 이러한 부분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하는가 할 때 일단 행복 보다는 인간 조차 기계처럼 다루는 시대가 올까 두렵다. 아니 어쩌면 그런 시대가 이미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책을 펼치면 들어가며라는 첫 글이 매우 인상적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저항'을 찾아 떠나는 여행

 

어쩌면 이 첫 글을 읽는 나는 안심하며 이 여행을 떠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평상시 나와 늘 함께하고 있는 스마트폰이 괴물로서 보일 때가 한 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말 눈을 뜨지 마자 종속되어 살아간다. 주체성을 상실한체 보이지 않는 사회가 이끄는 대로 그저 기계에 종속된채 끌려가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가 많다. 저자 또한 페이지 13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마존의 알렉사Alexa로 온 집의 가전제품 전원을 켜고, 구글 캘린더에서 그날의 일정을 확인하며, 구글맵이 알려주는 대로 이동 동선을 짜고, 우버가 운행하는 차에 타고, 직장과 집에서 아마존이 추천하는 것을 사고, AI가 내장된 취업 알선 서비스나 매칭 앱을 이용하며 사는 지금, 우리가 얼마나 자유의지대로 행동하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가령 잠들기 직전에 한번 자문해봐도 좋을 것이다. 오늘 한 쇼핑과 식사에서 나의 자유의지는 몇 퍼센트였고 기계의 추천은 몇 퍼센트였는지. 더 나아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전혀 쓰지 않고 한 의사결정은 얼마나 되었는지..."

 

 

이러한 상태를 전문 용어로 "와이어드wirsd 상태'라고 말한다. 즉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에 상시 접속되어 있는 상태, 인간과 기계가 거의 일체가 된 상태가 그것이다. 스마트폰 하나에 인류가 이렇게도 반응하다니 스티븐 잡스라는 존재가 위대해 보이기도 하고, 그가 괴물을 만들어 놓고 갔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렇다. 근대 이후 특히 사상적으로 데카르트식의 주권을 인간은 가졌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 하에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나름의 사색을 전개하며 스스로 결단을 내일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현실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AI의 방대한 추천 정보에 따라 '나는 따른다, 고로 존재한다'의 상태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중요한 논지를 먼저 정하고 시작한다.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인데 "나는 이 책을 쓸 때 구태여 자유의지를 가장 중요한 가치에 두고 싶었다."고 말하며 하나의 글을 인용한다. 놈 촘스키라는 사람의 말이다.

 

"인간 존재의 중요한 국면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는 그저 이념으로 치부할 수 없다. 그것은 인류 생존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죽은 친구와 대화하기 위해 챗봇을 만든 기업가 / 레플리카replica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서로 대면할 수 없는 시대에 부모님의 묘소나 추모관(납골당)에도 함부로 가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하루는 TV에 죽은 아내와 만나는 AI 시대의 놀라운 기능을 보여주었다. 남편은 아내가 죽은 후 보고 싶었다. 당연한 보고픔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회사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눈에 끼는 가상 현실 헤드셋 일명 VR 안경과 손에 끼는 AI 장갑을 끼게 하였다. 그런데 VR 안경을 끼는 순간 눈에는 죽은 아내와 똑같은 옷을 입은 여성이 앞에 있었다. 그 아내는 동일한 음성으로 남편에게 말을 걸며, 특히 아내와 함께 돌을 쌓는 가상 현실도 만들어 주었다.

 

남편은 이것을 통해 가상의 체험이지만 눈물을 흘렸고 동일한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세상을 떠난 친구와 대화하기 위해 챗봇을 만든 기업가를 소개한다. 관심이 가져서 더 자세하게 읽었다. 한 사람의 인격을 컴퓨터상에서 재현하고, 특히 죽기 전에 의식과 기억을 업로드하면 죽은 뒤에도 대화가 가능해질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러므로 '죽음'의 의미 또한 변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샌프란시스코의 기업 레플리카는 한 사람의 인격에 가까운 봇을 키울 수 있는 챗봇 서비스를 제공한다. 더군다나 레플리카를 만든 러시아인 기업가 유게니아 쿠이다는 2015년에 친구 로만을 사고로 잃게 되었는데 실의에 빠진 상태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그녀는 친구와의 대화 기록을 챗봇에 입력하여, 마치 죽은 친구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우울병, 불안장애, 양극성 장애 등 정신건강 문제에 시달리거나 삶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해준다. 즉 소셜미디어에 하루 종일 시간을 쓸때에 사람은 행복해지지 않는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영국 가디언 자료에 의하면 '페이스북을 알주일 동안 하지 않으면 행복감이 높아진다'는 실험을 증명해 내었다. 즉 위에 언급한 인물 중에 '쿠이다'는 레플리카를 긍정적 중독성을 가진 상품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접근을 하면 얼마든지 인격적인 교류를 통해 지적이면서 복잡한 깊은 관계를 맺게 할 수 있다고 말해 준다. 즉 소셜미디어 공간은 늘 자신에게 '예뻐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곳이어서 마음을 열 수 없었는데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챗봇을 만든다면 레플리카는 사람의 고독감을 줄여주고, 누군가 자기를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어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 준다.

 

 

그런데 인격을 디지털화하는 것이 얼마나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그리고 인간은 그 기계를 신뢰하면서 마음의 위로를 느끼게 될지 미지수이지 않나 생각된다. 인간은 그런 시도를 꿈꾸겠지만 결국 그건 실제가 아닌 기계적 인격이기에 얼마든지 AI가 인간 감정을 딥러닝하며 감정이라는 미지의 숲에 겁도 없이 들어오겠지만 저자가 염려하는 대로 AI가 불러오는 위험이 따를 것이며 결국 그건 가상의 현실이기에 인간은 그 대상에 쉽게 고개를 돌려버릴 것으로 본다.

 

AI 낙관론 vs. AI 비관론

 

저자에 따르면 AI를 보는 관점에 따라 사람들은 세 유형으로 나눠 보는데 첫 번째는 AI와의 공존을 바람직한 상태로 보는 AI 유토피언, 두 번째는 AI가 인간을 위협할 것이라고 여기는 AI 디스토피언, 세 번째는 AI의 능력 향상에 의구심을 품는 AI 회의주의자이다. AI 인재 풀을 갖춘 러시아 스콜코보나 명실상부 최첨단 기술 인재의 성지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어쩌면 신앙에 가까운 기술 맹신과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존재하겠지만 저자와 더불어 독자인 나 자신도 기술로 인해 변화할 미래에 의구심과 불안을 금치못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저자는 AI가 불러올 위험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글을 써내려 갔다. 그렇다. AI를 둘러싼 모험에 어떤 끝이 도래할지 모르지만, 인간은 어쩌면 종속되기도 하면서 AI를 종속시켜서 또 다른 삶을 창조해 나가리라고 본다.

 

이 책의 한 문장

 

"21세기 후반을 사는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AI나 경제가 아니라 시간을 쓰는 법,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p269

 

 

"AI의 보급은 우리로 하여금 '내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와 시간을 늘려줄 것만 같다." p278

 

 

"이제부터는 새로운 일뿐 아니라 새로운 여유도 만들자. 혹은 일이자 휴식이기도 한 '3의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여유 시간을 텔레비전과 게임, SNS와 넷플렉스로 채우는 대신, 어떻게 하면 시간을 인간적으로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하자. 사람과 교류하며 함께 공동선에 다다를 수 있는 행위를 늘려가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가지하 생활자의 수기에서 묘사한 (자의식 과잉으로 사회와 단절된) 주인공보다 한층 더 고독한, 인터넷 회선은 연결되어 있으나 다른 사람과는 거의 연결되지 않은 디지털 지하 생활자가 될 것이다." p29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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