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 친일파 김백일부터 광복군까지
김종훈 지음 / 이케이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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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한국인인가? 그렇다면 꼭! 읽어야만 하는 책


'여기 와 있는 동지들 중에 그 병을 앓다 죽은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내 아들만 살릴 수 있단 말이냐' -김구가 죽어가는 장남을 두고 며느리에게 한 말.

매국노라는 단어를 청소년기에 처음 들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매국노에 대한 분개가 일어났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내가 살던 고향에서도 매국노가 있었으며 그 사람이 결국 마을의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화가 나서 욕아닌 욕을 한 적이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일제를 향한 감정은 어쩌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은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한국을 향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독일 통일의 밑거름을 마련한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의 위령탑 앞에서 무릎 끓고 사과한 행동은 역사에 길이 남을 행동이면서 일본인들이 한국인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지표가 되리라 생각된다.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한 빌리 브란트 총리

왜놈이라고 일컫는 일본인들에 대한 감정도 국민 감정상 좋지 않건만 더 국민 감정을 화나게 하는 자들이 있으니 바로 '친일파'라는 존재들이다. 한국인이라면 친일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할 것이다. 수년 전이었을 것이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남양주 남이섬이 친일파 후손이 산 땅이라는 기사가 많이 올라왔다. 친일파에 대한 잔재는 한국에서는 뿌리 뽑히지 않는 앙금이다. 그런데 프랑스는'협력자'(collaborateur)의 약칭인 콜라보(Collaborateur)들에 대한 숙청 작업을 벌였으며 과거사 청산을 어느 정도 처리했음을 알 수 있다.(협력자는 '독일강점기' 나치에 협력한 프랑스인을 의미)

그런 가운데 ' 항일과 친일의 역사에 따라 현충원을 한 바퀴' 도는 책이 나와서 이 책을 통해 한 번은 제대로 친일파에 대한 정리와 기본적인 자료를 알고 싶어 이 책을 보게 되었다.

현충원은 말 그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자들이 안장되어 있는 곳이다. 친구가 수유리에 있어서 4.19 국립묘지를 가본적은 있지만 매스컴에 나오는 현충원은 TV로만 보았다. 그리고 당연히 이곳에는 국가를 위한 목숨을 바친 자들만이 잠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읽으면서도 매우 화가났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렇다.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일제강점기 항일과 친일의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한 친일파와 독립운동가가 함께 잠들어 있다. 책 18페이지를 보면 2009년 11월 초, 민족문제연구소에서 4400여 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한 내용이 나온다. 이 중 국립서울현충원에는 국가공인 친일파와 비공인 친일파 35명이, 국립대전현충원에는 국가공인 친일파와 비공인 친일파 34명이 누워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2009년 반민규명위(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1000여 명의 '국가공인' 친일파에 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놓쳐서는 아니 될 '비공인 친일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으니 감정을 가라 앉히되 냉정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 나가야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런 부분을 이야기 한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친일파와 지사들의 공식적인 행적에만 집중해 서술했다.

이유는 하나, 이 책을 살핀 뒤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국가공인 친일파의 묘역에서 독립 운동가의 묘역을 바라보자.

그 감정을 잊지 않기를 희망한다. p05

그렇다. 우리는 절대로 그 '감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의 악행을 지금이라도 처단하고 그들이 가진 재산이나 권력을 빼앗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또 다른 짓밟힘이 있을 때 매국노와 같은 친일파들이 드글드글 꿈틀 될 것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1부를 보면 국립서울현충원을 다룬다. 2009년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국가공인 친일파로 규정된 7인(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홍준)을 비롯해 평생 독립운동을 했지만 결국 이들 발밑에 잠들게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의열단,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들의 이야기가 언급된다. 이외에도 국립서울현충원 최중심부에 잠든 박정희 전 대통령, 애국가의 주인공 안익태, 한국전쟁 때 한강철교를 폭파한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에 대해 나온다.

제2부는 국립대전현충원에 대해 다룬다. 100만 평에 육박하는 거대한 땅에 마련된 국립대전현충원은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인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그리고 한참 TV에서 거론되었고, 최근에 광화문 불법 점유에 따른 분향소 철거가 이루어진 '전쟁영웅'이라고 불리는 백선엽 장군에 대한 행적이 나온다. TV에 나왔기에 관심을 가지며 읽은 부분이다. 그런데 국립대전현충원은 계룡산 줄기 따라 뻗은 국가공인친일파의 무덤들 아래 독립운동하다 생을 마감한 지사들의 묘가 펼쳐져 있다. 이분들에게 미안하다.

제3부는 수유리 4.19국립묘지와 서울 효창공원을 다룬다. 이곳 또한 위의 두 곳과 다르지 않게 애국지사의 무덤과 그 안에 기생하는 친일파와 군부독재의 흔적이 함께 펼쳐진다.

이 책은 저자가 3년이라는 시간을 '발로 만들어 간 책'이다. 그만큼 정성과 애국에 대한 마음이 이 책 안에 스며져 있다. 물론 이 책은 친일파에 대한 자세한 악감정을 잘 드러내 주지만 무엇보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다루어주고 있다. 익히 알고 있는 자들도 있지만 새롭게 알게 된 인물이 있어 한쪽 마음은 밝아지게 되었다.

특별히 이 책은 이해를 돕기 위해 그들이 잠든 5곳(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 국립4.19민주묘지, 수유리묘역, 효창공원)의 위치를 지도에 그려주어서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사진 자료와 함께 유용하게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자료가 되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은 무엇보다 잘 알지 못하여 하마터면 그곳에 잠들어 있는 자들에게 존경심과 경외감을 다 줄 뻔한 우리의 마음을 분별해 주는 귀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저자의 이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국가공인 친일파 묘역에서 독립운동가 묘역을 바라보자.

그 감정을 잊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 책의 한 문장

김백일 _ : 독립군 때려잡던 친일파, 어떻게 현충원에 묻혔나? p27

신태영 _ : 야스쿠니가 목표라고 외쳤던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인 그는 조선인들은 한시바삐 제국의 신민이 되어 동아시아를 개척해야 한다. 내 첫 출진의 목표는 야스쿠니 신사(안장)이다고 말했다. p43

백낙준 _ : 해방 후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이 된 연세대 총장의 과거. (이 사람에 대해 몰랐다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을 것이나 그에 대한 적나라한 사실이 이 책에 나온다)

백낙준이 직접 편집과 살료, 사설을 써가며 자신의 친일 행각을 알린 <기독교신문>은 1942년 4월 29일 일왕 히로이토의 생일인 천장절을 맞아 조선기독교협회가 창간했다.

<기독교신문> 창간 10년 전인 1932년 4월 29일은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 투척 의거를 성공시킨 날이기도 하다. 반민규명위는 백낙준의 행적에 집중했다.

"백낙준은 1942년 '종교보국'을 사명으로 창간된 기독교 신교 각차의 합동기관지 <기독교신문> 이시와 편집위원으로 재직하면서 황민화 정책과 전쟁 협력을 강조하는 지면을 편집하고 직접 설교와 사설을 썼다. '이영타도' 좌담회에 참석하고 전잰협력설을 역설하는 기고문을 반복적으로 발표하는 등 사회단체를 통해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적극 협력했다." p62-64

그는 어디에 잠들었나? 국가유공자 제1묘역 26번이다. 여기는 이승만 대통령 묘소 바로 뒤쪽에 조성된 곳으로, 친일파 김백일과 신응균이 잠든 장군제1묘역으로 가는 길목이다.

(이걸 보면서 감정을 추수르는 것이 힘들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추스르고 이놈들의 비열함과 악행을 봐야할 것이다.)

곽낙원 지사 _ : 독립운동가 김구를 만든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곽낙원 지사는 김구의 오른팔이었던 엄항섭을 찾아가 "돈을 모았으면 내가 알아서 먹고 싶은 것을 사먹을 테니 돈을 달라"고 말한다. 자신의 생일날 곽낙원지사는 임정 지사들에게 보자기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단총 두 자루가 들어 있었다.

"이 총으로 왜놈들 한 놈이라도 더 죽여라."

김구의 장남이자 관낙원의 손주였던 독립운동가 '김인' 떠나다.

당시 김인의 나이는 스물여덟게 불과했다. 폐렴을 앓다 약을 제때 쓰지 못해 병사했다.

당시 김인의 부인이었던 '안미생'과 시아버지 김구 사이에 일화가 전해진다.

"남편 김인이 폐병으로 쓰러지자 안미생은 시아버지 김구를 찾아가 당시 폐병에 특효약으로 알려진 페니실린을 맞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김구는 '폐병으로 죽어가는 다른 동지들도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데 아들이라고 특별히 대우할 수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

김구의 둘째 아들 김신이 당시의 상황을 회고록에 남겼다.

"형님의 병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어볼 것은 페니실린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봉쇄로 물자 수송이 어려워 페니실린을 구하기 힘들었고, 가격도 매우 비쌌다. 형수는 아버지에게 페니실린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아버지는 정색하며 말씀하셨다. '여기 와 있는 동지들 중에 그 병을 앓다 죽은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내 아들만 살릴 수 있단 말이냐' 형수는 아버지의 매정한 대답에 마음속으로 원망했을 것이다. p215-216

◎ 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 국립4.19민주묘지, 수유리묘역, 효창공원까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가 함께 잠들어 있는 현충원 역사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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