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위로 - 불확실한 삶을 위한 단단한 철학 수업
윤재은 지음 / 현대지성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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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읽은 책 가운데 '인간으로 산다는 그 어려운 일'에 대한 책을 읽었다.

산다는 것이 인간에게는 그렇게 기쁜 일만 아닌거 같다. 오죽 했으면 석가모니가 “인생은 고해(苦海)다"고 말했던가? 조금 괜찮다 싶은데 어디선가 고해의 화살이 날아 온다. 한 고비의 산을 넘어서 이제는 편안하고 행복하려나 했는데 또 다른 커다란 산이 버티고 서있다. 그럴 때면 너무 힘들어 삶을 놓아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으로 산다는 그 어려운 일'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에게 좀 더 친근하기를 바란다. "만약 당신이 항상 자신을 다정하게 대한다면, 당신의 삶에 항상 다정함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저 스스로를 좀 더 자비롭게 대하고 스스로를 용서하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된다. 우리 모두 이렇게 할 수 있으며...."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고 싶다. 즉 위로 받고 싶다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위로해 주지 못한다면 나 스스로도 위로하고, 내 마음을 다독여 주자는 것이다.

철학의 위로라는 책은 우리에게 "불확실한 삶을 위한 단단한 철학 수업"을 매우 야무지게 해준다.

1부 고대 철학으로 부터 시작해서 2부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로를 가져왔고 3부에서는 중세 철학의 위로, 4부에서는 근대 철학의 위로, 5부에서는 현대 철학의 위로를 가져와서 거대담론적인 위로로 철저하게 학습을 시키고 있다.


그렇다. 안 그래도 지치는 세상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삶을 더 지치게 만들고 있다.

무언가는 불안하고, 무언가는 지쳐있고, 무언가는 우리의 삶을 옥죄는 것만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캠핑에 미쳐있는지도 모른다. 수억짜리 집을 놔두고 몇 십만원 하는 텐트를 들고 굳이 캠핑을 하는 이유는 어디에선가라도 위로 받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에게 다가와 단순한 감상적 위로를 벗어나 철학적 위로로 우리에게 단호히 철학적 위로 수업을 해주고 있다. 일단 학생의 마음으로 스승들의 위로를 들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 책은 우리에게 철학적인 위로를 분명히 준다.

철학은 본래부터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철학적 의지는 인간이 동물 되기를 거부하고 진정한 인간이 되기를 갈망하는 의지로부터 생겨난다고 한다. 즉 철학적으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반성하며 본질에 접근하려고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본질을 보지 못하고 피상적 대상과 물질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철학적 진리를 추구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한 위로와 안식을 얻을 수 없다. 진정한 안식이란 본질적 삶을 추구하며 자신이 살아가야 할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으로서 이 책은 우리에게 철학적 위로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헤시오도스와 호메르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신에게 묻기도 하며 인간의 성찰을 서양철학의 흐름에 따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현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과 본질,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조금 어렵다. 어렵게 위로를 해준다. 읽다보면 머리를 쥐어짜는 시간도 있을 것이고 몇 번이나 문장을 곱씹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읽으면서 우리의 지성은 철학적으로 개념이 잡히면서 삶을 조율하며 세상을 초연하게 바라보게 하면서 불안을 살며시 또는 명료하게 떠나보내게 된다. 이 책이 주는 묘미는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저 사물을 바라보거나 마음의 불안을 살피지 않고 명민하게 바라보도록 우리를 이끌어 간다. 마음에 다가 온 문장으로 이 책에 대한 나의 서평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이 책의 한 문장

신은 인간에게 물질보다 더 소중한 것을 주었다. 그것은 생의 시간이다.

생의 시간은 인간의 삶에 있어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생의 끝자락에 서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사소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러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 나약하기만 한 존재가 된다.... 오직 신의 자비와 은총만을 바랄 뿐이다. p19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인간은 믿음이 사라지면 불안이 온다. 불안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다. 불안은 자신에 대한 믿음의 부족에서 시작되고, 죽음에 대한 미래의 불안에서 온다. 인간의 삶에 있어 불확식성은 실존적 인간에게 현재의 중요성을 인지시킨다. 실존족 인간은 불안의 개념을 미래의 가능성으로 인식한다. 미래의 불안은 실존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실존은 현재진행형이며 자유의지이다. 실존이란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실존의 나는 살아 있는 나이고, 현재의 나이다. (...) 현재를 살아가는 실존적 인간은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 동물은 불안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동물은 인간과 달리 현재의 상황만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동물은 불안을 걱정하기보다 불안함을 직감하는 현실적 존재이다. 따라서 동물은 인간보다 불안의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인간은 삶의 시간 속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불안이 시작된다. 따라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고 현재만을 바라보는 실존적 삶의 태도가 요구된다. 인간은 원죄의 나약함에서 벗어나 좀 더 현실적이고 실존적인 삶의 시간을 찾아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가 삶의 주인으로서, 세계의 현존재를 향해 나아갈 수 있으며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p360-368

선험적 직관은 본질이다 : 인간은 자신의 주장에 있어서는 강한 확신을 보여주면서도 남의 주장을 얕잡아보는 것은 오만에서 시작된다. 타인의 관점을 우습게 보고 자신의 지식을 확실한 것으로 믿고 결정 내리는 것은 잘못된 판단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이성이 타인보다 우수하다고 믿는 교만스러운 자이다. 하지만 순수직관으로 세계를 바라보면, 세계는 나의 주장과 다르게 자연법칙에 따라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의 법칙은 신의 법칙이며, 운명의 법칙이다.

인간으로서 직관을 순수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자신의 정신을 자신의 육체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느 정신을 육체의 밖으로 내보내고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은 순수직관에서만 가능하다. 인간이 이러한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자신의 육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직관의 눈이 자신을 향하면, 관념에 둘러싸여 있는 자신의 모순을 발견하고 되거. 궁극에 가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참회의 눈물은 깨달음의 눈물이 아닌 반성의 눈물이다. 이 눈물은 오만하고, 무지하며, 거짓으로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회한의 눈물이다. 반성하는 인간은 스스로의 참회를 통해 눈물 한 방물을 떨어뜨리며 순수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p303

어제의 상식이 오늘은 통하지 않는 시대,

‘코로나 블루’에 빠진 우리의 진정한 위로는 무엇인가?

변하지 않는 위로를 받고자 한다면 이 책을 손에 들고 수업을 받듯 읽어 나가라.

그러면 읽은 후에 나는 예전의 나와는 달라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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