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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란 무엇인가 - 루소·퇴계·공자·융에게 교육의 길을 묻다
한석훈 지음 / 한언출판사 / 2012년 9월
평점 :
선생이란 무엇인가 - 한석훈, 한언출판사
책을 읽기 전에 ‘과연 선생을 정의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를 가졌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생을 정의하는 것이 가능할까’이다. 일반적으로 선생의 책무는 학생을 상대로 한 올바른 교육자의 책무와 같으며 누구나 다 익히 알고 있는 ‘참되고 올바르며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분’이라는 통념과 다르지 않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선생에 대한 기본 입장은 같았으며 시대가 수 십, 수백 번 바뀐다 해도 여전히 선생에 대한 정의는 거기서 거기다. 이런 의미에서 제목 ‘선생이란 무엇인가’에서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선생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궁금했다.
저자는 서강대 사학과를 나와 미국 톨레도 대학에서 역사학 학사, 교육학 석사를, 시카고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시간 강사로 학생을 지도하시는 분이다. 이런 저자의 경력을 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선생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탐구하겠다는 추측을 했고 글을 읽으면서 나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책의 뒤표지에 이런 말이 있었다. ‘선생은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으로 가는 길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선생은 지식으로 가는 길을 가르치는 사람, 즉 지식의 안내자란 말이며, 지식 지도나 이정표라는 말이기도 하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서론에서 저자는 자신이 ‘선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책을 쓰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4가지의 이유를 들었다. 조금 삐딱하게 읽으면 ‘난 이런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들릴 수 있는 이유들이지만 저자의 깊은 맘속을 헤아려보자면(이게 가능한가?) 저자는 자신에게 ‘엄중한 사명’이 내려졌고 최선을 다해 부응하겠다는 결심의 말로 볼 수도 있다.
구성을 통해 책을 살펴보면, '제1장 잠자는 학교‘에서는 파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학교 교육 현장을 보여주었고 제4장부터 제6장까지는 ’선생이란‘에 대한 물음에 답이 될 수 있는 글을 적고 있다. 제7장은 ’행복을 향한 걸음 : 학생, 세상, 선생 자신의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학생, 사회, 선생이 가져야 할 가치는 행복 추구임을 강조하였다.
원론적인 이야기가 섞여 있었지만 자신의 경험과 여러 철학과 역사 자료를 이용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학교 현실을 바라보면서 문제는 학생이 아니라 선생으로 작게는 학생과의 관계, 크게는 사회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지도하여 올바른 인간으로 안내할지 많은 고민을 선생님들이 해야 한다고 했다. 선생이 이런 자기 성찰을 해야 하는 이유로 필자는 ‘평생 선생으로 남아 있을 나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48p.)를 들었다.
제2장부터 저자는 본격적으로 선생의 의무와 책임, 자격 등을 여러 지식을 배경으로 설명한다. 특히 선생도 인간임을 강조하고 그 또한 노력하는 존재이지 이미 이상을 실현한 완성체가 아니라고 하고 노자의 ‘화광동진(和光同塵)’을 인용한 부분이 와닿았다. 이상만 추구하여 빛만 우대해도 치우침이고 생존에 함몰되어 먼지만 뒤집어쓰고 사는 것도 치우침이기에 빛과 먼지가 공존하는 자신의 전체성을 수용하라는 저저의 말은 이 책 전반을 꿰뚫는 명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애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라는 ‘밤거리의 순찰 선생’으로 불리는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을 인용하면서 선생은 ‘그 자신을 끌어낼 원천인 ’나‘라는 존재의 깊숙한 내면과 드넓은 외연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나 자신을 잘 아는 자기 인식이 최우선 과제’(71p.)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비슷한 이야기로 그는 심층심리학에서 대사회적 인격을 일컫는 ‘페르소나persona’(83p.)라는 용어를 가져와 정상적인 사람도 이런 가면을 쓰고 산다고 하면서 '가면‘이 가진 ’부정성‘보다는 페르소나의 이면에 있는, 혹은 내면에 있는 ’자신‘을 늘 이해하기 위한 모험을 감행하라고 했다. 참으로 공감이 많이 가는 대목이었다.
어떤 인간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있을까. 성인군자인들 자신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갖는 의의를 선생이면 누구나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평소 고민하고 있는 문제일테고 이 나라 선생은 누구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동서양의 철학과 앞서간 자들의 이론과 삶을 예시하면서 (루소, 듀이, 퇴계, 공자 등) 이런 고민을 어떻게 올바르게(?) 할 수 있는지 그 방법과 사례를 적고 있다. 공감을 하면서 읽었고 특히 승산 대선사의 일화(230p.)를 통해 제시한 ‘불입문자(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는 다소 철학적이지만 깊이 새겨야 할 생활지침이 아닌가 생각했다. 뭐든지 말로 체계를 세우려는 합리성의 원리가 때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비인간적으로 만들 수가 있다. 이것을 선생에게 적용시키면 학생과 자신을 도식화시켜 온전한 인간의 모습은 없고 지식을 매개로 한 남-남의 관계에서 ‘정(情)’은 사라지고 ‘식(識)’만 남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선생이 되어야 하나’라는 말을 종합적으로 요약할 수 있는 대목으로 유네스코 포럼에서 에드가 포르라는 사람이 했다는 ‘learning to be'(279p.)라는 말을 필자는 제시하였다. 'learning to have'와 대비되는 말로 소유가 아닌 존재를 위한 배움을 강조한 말이다. 여기에 저자는 ’teaching to be'라는 말을 만들어 선생이면 누구나 존재를 위해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누구의 존재일까. 저자는 선생의 존재라고 했지만 난 여기에 덧붙여, ‘teaching someone to be'도 넣어서 선생 자신의 존재를 위해서 뿐 아니라 자라는 아이들의 존재를 위해서 노력하는 선생이 되어야 균형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참으로 소중하고 보람된 읽기였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려주는 신호등으로 오랫동안 곁에 두고 볼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