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법은 없다 - 범죄 유발성 형법과 법의 유통 권력자들
박영규 외 지음 / 꿈결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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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고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법의 보호를 받고 법망 안에서 안전한 사회적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위한 법이 없다니 별 괴상망측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소제목인 ᆞ범죄 유발성 형법과 법의 유통 권력자들ᆞ은 법이 생물이 되어 나를 위협하고 이 생물의 조정자인 권력보유자가 나를 지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을 증오해야할 때가 왔고 법을 최소화시켜야 바로소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선언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책을 통해 교감을 한 저자 류여해씨는 독일 유학파로서 대한민국의 귀한 인재이며 법률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고 대한민국 헌법의 미래를 걱정하는 참된 인간이다. 그가 유학생활을 마치고 대법원 재판연구원을 걸쳐 5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국회사무처의 법제실 법제관ᆢ에 들어가서 본 그곳 세상은 그의 안내를 따라 글을 읽는 내내 공무원의 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필자를 통해 엄정한 법을 만들고 심의하기 위한 첫 관문으로서의 자리가 아니라 국회의원의 비위에 맞춰 대충 법률안을 만드는 곳이 국회사무처의 법제실이라는 부정적인 현실의 단면을 보았다. 비록 필자가 그들 법제실 직원이나 국회의원들의 실적주의를 비난만 하고자 쓴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령야간잔업 문제의 경우 일전에 TV에서 보도됐던 적이 있을 정도로 공무원의 탐욕과 무사안일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라 충분히 공감이 갔다.

 

글을 읽을수록 국가의 중추이자 국민의 방패가 되어야 할 법이 오히려 거미줄 같이 법의 지배하에 놓인 국민을 옥죄는 현실이 눈에 들어와 불편하였다. 악법은 말할 것도 없고 난무하는 특별법이나 인기 영합형 입법사례 등은 야경꾼이 필요한데 야경꾼을 관리-감독하는 자가 더 큰 권세를 가지게 되는 주객전도의 상황과 비슷하다. 과연 법을 만드는 자나 법을 집행하는 자들은 누가 시키고 누구를 위해 그런 일을 하는지 알기나 한지 되묻고 싶고 궁극적으로 그들의 존재의미는 무엇인지 따지고 싶었다.

 

특히 특별법의 경우 깊이 고찰하지 않은 포플리즘이 낳은 기형아가 될 수 있다는 점에 크게 공감하였고 불필요한 다량의 법 양산의 부작용으로 판, 검사와 변호사들도 제대로 법조문을 알지 못한다는 대목에서는 거대한 괴물로 법이 둔갑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느꼈다. 더불어 필자는 법이 공정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국민의 편에 서 있을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123)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 국민이 법을 모르면 무관심 속에서 소수의 강자가 대다수 약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이 만들어진다’(123)는 무서운 말을 하고 있다. 법이 엄정하고 공평하며 약자를 보호하며 선의의 편이다는 말을 하기가 두려웠다.

 

파트23장에서 필자는 검찰과 경찰의 힘겨루기를 얘기한다. 제 밥그릇을 지키려는 어처구니 없는 그들의 논리로 인해 위치추적에 관한 법조차 제대로 입법하지 못하여 무고한 시민이 살해되는 사건에 대한 글을 읽고 정의 없는 정의사회’(158)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의 현주소를 곱씹게 되었다. 그들이 민중의 지팡이이고 국민을 위한 일임을 전제로 화합하며 양보하는 대승적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랐다.

 

특히 특별채용이라는 법을 통해 법이 악용되는 사례를 이야기하는 대목은 참으로 인상깊게 읽었다. 고려시대에도 상피제(서로 피한다)-친인척 관계에 있는 사람은 같은 관청에서 근무하지 못한다(174)-라는 제도가 있었다는데 과거 800년 이상쯤 전의 제도보다 진일보하지 못한 우리네 법이 왜 그리 처량하게 느껴지는지 울분이 솟았고 기득권자들의 논리에 함몰되어 일수벌금제를 통한 차등벌금제도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는 이 나라가 과연 민주국가인가라는 회의를 느꼈다. 여기서도 거미줄 법이 생각났다. 돈 있고 빽 있는 재벌이나 권력자들은 거미줄을 뚫고 나가고 힘없고 돈 없는 소위 민초라는 자들은 이런저런 법에 걸려 고충을 당하구나 싶다.

 

그래서 필자는 마지막 장에서 법에 무관심하면 비극이 일어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이 대목 중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함무라비 법전을 보러 온 독일 어린이 단체 인솔 교사에게 필자가 아직 법을 알기에는 이르지 않나요?’라고 한데 대해 인솔 교사가 한 말이 특히 감동적이었다. “아무리 어려도 알 건 알아야 하지 않나요? 법은 이 아이들이 태어나서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아이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까요” (244)

 

우리들 국민들이 잘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나부터가 어렵고 귀찮아서 가급적 송사에 휩싸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법을 기피한 점을 반성하게 되었다.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을수록 법은 신중하게 만들어질 것이고 공정하게 적용될 것이다. 필자가 우리 법전에 원칙과 상식에 어긋하는 법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참으로 두렵고 슬펐다(280)‘고 하면서도 그래도 희망을 본다‘ (278)고 한 것처럼 나 자신도 나 자신의 변화를 통해서 입법기관, 사법기관, 행정기관이 자기이익에 급급한 집단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봉사체로 당당히 거듭날 것이며 현재도 이런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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