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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정의사회의 조건 - 정의·도덕·생명윤리·자유주의·민주주의, 그의 모든 철학을 한 권으로 만나다
고바야시 마사야 지음, 홍성민.양혜윤 옮김, 김봉진 감수 / 황금물고기 / 2011년 6월
평점 :
32쪽에 이르는 저자의 '들어가기'를 다 읽고 나면 목차가 나오고 다음에 '제1장 하버드 강의의 에센스(정의의 탐구)'가 나온다. 1장 제목이 오른쪽 면을 다 채우고 반대편 왼쪽에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얼굴 전면 사진이 실려 있다. 그냥 넘기려 하다가 아주 크게 나온 샌델 교수의 얼굴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천천히 눈을 맞췄다. 마치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듯 샌델 교수를 한 5분 정도 바라보았다. 눈, 코, 입, 귀, 머리 등을 유심히 보았고 특히 눈에 머문 시간이 길었다.
'들어가기'에서 본서의 저자는 마이클 샌델 교수를 '선이 있는 정의'를 주장하는 학자라고 소개했다. 이런 주장에 걸맞게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광채는 어떠한 악과 불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결정체로 보였다. 이상한 것은 이렇듯 강철도 두 조각 낼 정도의 냉정한 눈빛을 계속 보다보면 사람을 감싸는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이 그 사람의 외모를 만들고 그 외모 중에 특히 눈빛은 그 사람의 내면 사상의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는 분명 자신의 철학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분이라고 확신하였다.
공리주의, 결과주의에서 시작하여 의무권리론을 거쳐 목적론에 이르면서 자신의 사상을 세우기 위해 여러 기존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그는 논리적인 설득력이 부재한 결과주의에 경도된 많은 사람들과 달리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한 사상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하나의 사상만 해도 많은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일반인들은 그런 이론에 현혹되어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쉬운데,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러한 잘못된 이론에 대해 정확한 논리로 오류를 입증하였고 그에 대한 대안이나 새로운 정의의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본 저서가 지향하는 바는 샌델 교수가 주장해 온 정치철학, 윤리철학의 궤적을 따라 ‘정의’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하는 것이다. 샌델의 저서에 대한 설명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면서 필자는 정확하게 샌델 교수의 주장을 옮기고 있다. 특히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지막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는 샌델의 ‘미덕형 정의론’은 참으로 공감이 갔다. ‘정의에는 미덕의 함양과 공동선에 대한 논의가 포함된다’는 그의 주장은 아무리 정치, 경제적인 이론이라도 ‘미덕’과 ‘공동선’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을 함축하는 것으로 경쟁위주의 삶에 매몰된 우리 현대인들에게 ‘희생’과 ‘봉사’를 통해 선을 지향하라는 지상명령과 같았다.
2장부터 전개되는 장대한 이론공방은 양적인 부분에서 다소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씩 정리하면서 읽어야 할 정도로 이론의 깊이도 깊었다. 일반 철학서적이 아닌 만큼 충분히 따라잡으면서 읽을 만했으나, 다양한 내용이 한 순간에 소화하기는 도무지 불가능하였다. 제목인 ‘존 롤스의 마술을 푼다’에서처럼 존 롤스의 이론에 대한 설명과 반박은 샌델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씩 반박을 해 나가는 기술이 탁월했다. 이런 글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볼 때, 샌델은 훌륭한 철학자였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자유주의 이론이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무연고적 자아‘라는 운명적인 개인을 ’연고적 자아‘라는 개념으로 바꿔 공동체 내에서의 인간이 진정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한 부분이다.
3장의 ’공화주의의 재생을 위하여‘는 3-1장에서 헌법을 중심으로 한 기능사회를 이야기하고 3-2장에서는 ’시민의식과 정치경제’라는 제목으로 경제체계의 과정을 언급한다. Chapter 10에서는 ‘새로운 공화주의의 비전-공공철학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그의 사상의 핵인 ‘공공철학’, ‘공동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눈여겨 보았던 부분은 정치, 경제의 정의만큼 유전자공학에서의 정의문제이다. 본서4장에서 마이클 샌델은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인간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줄기세포연구를 통해 신체적 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우생학과 같은 완벽함에 대한 추구는 반대하는 그는 융통성과 엄격함을 겸비하고 있다. 비판적인 관점을 갖기 힘들 정도로 그의 주장에는 큰 호소력이 담겨있다.
마지막 5장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의 전개’에서 샌델은 미국 정치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상업주의,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등의 요체인 시장주의를 경계하고 공공복지를 주장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존엄사의 근본을 앞서 여러 번 언급하였던 ‘생명은 선물’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여 자율과 선택을 강조하고 생명은 자신의 소유물이라 생각하는 자유주의 옹호자들을 비판한 대목이다.
마지막 Chapter3에서 그는 공동체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여러 개척자들을 소개한다. 그는 공동체주의의 선구자인 존 듀이에게서 공동체주의의 뿌리를 찾고 있다. 특히 듀이는 ‘학교를 중시하고, 커다란 공동체를 만들 필요성을 주장(p.336)'한 공동체주의의 선구자로 치켜세운다. 다음으로 샌델은 상대주의와 정전론을 주장한 왈저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하면서 왈저 역시 공동체주의를 옹호한 철학자로 평가한다. 또한 샌델은 자신이 꾸준하게 비판해온 미국철학자 롤스에 대해 철학 분야에서 미국의 입지를 세운 인물이라고 두둔한다.
마지막 종장에서는 지금까지 샌델이 주창한 이론을 저자 고바야시 마사야는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여행을 다 끝낸 후 여행한 장소를 사진과 더불어 회고하면서 마무리하는 느낌을 받았다. 고바야시는 샌델을 ‘정의론자’,‘목적론자’,‘공동체주의자’‘공공주의자’ 등 여러 가지 용어로 그를 규정하고 그의 사상을 마무리한다. 방대한 그의 철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저자 고바야시는 정말 철저한 사람이고 정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철학을 섭렵하고 그 철학이 내세우는 이론을 완전히 꿰뚫어 보면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통찰력과 혜안이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샌델도 존경하지만 저자 고바야시 또한 존경할만한 인물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간혹 만나는 귀한 저서이다. 앞으로 본 저서를 곁에 두고 낱개로 쪼개 천천히 재독을 해야겠다. 한 편씩 읽고 ‘정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현실에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지 계속 고민하면 통찰력이 붙을 것이고 그로 인해 현실을 바라보는 눈도 더 넓어질 것이다.
부디 일독을 바란다. 함께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