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연주의 기록 - 동아투위에서 노무현까지
정연주 지음 / 유리창 / 2011년 8월
평점 :
이 책은 동아투위에서 시작으로 70년대에서 2천년대까지 한국 정치의 단면과 한 인간이 독재정권, 시녀언론과 벌이는 칼날 같은 저항을 일지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 유신체제 하에서 권력과 직접 몸으로 부딪혀 맞선 정연주 전 KBS사장의 젊은 날의 기록과 그 이후에 펼쳐지는 드라마 같은 인생역경을 읽는 내내 나는 우울하였다.
1부에서 그는 초년생 기자로서 올바른 언론보도를 위해 동아일보 사장과 맞서 연판장과 자유언론 실천 강론을 작성하여 자신의 정당한 주장을 관철하려고 하였고,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선후배 기자들과 함께 신문제작을 거부하였지만 번번히 패배와 좌절을 맛보았다.
시련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그는 부인 조연주와 두 아들를 너무 사랑하는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당시 정연주보다 현재의 내가 나이가 더 많지만 그가 마음 깊은 곳에 눌려둘 수 밖에 없었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난 근접하여 헤아릴 수가 없었다.
2부에서는 감옥풍경이 주를 이루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처럼 열악한 감옥환경 속에서도 적응하며 살아가는 그와 반공범과 일반범들의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에 죽었다는 말에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다는 대목에서는 정권이 얼마나 몸서리치게 싫었으면 그랬을까 라는 생각과 다시는 정치적, 경제적 독재가 이 땅에 발붙이지 말기를 기도했다. 이 대목에서 민중을 사랑한 노무현 대통령이 그리워졌다.
3부에서는 그가 수배령을 피해 도망 다녔던 시간을 서술하고 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수사망을 피해 1980년 5월 17일부터 1981년 2월 말까지 불안과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특히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연로한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참으로 눈물겨웠다. 감시를 피해 동네 목욕탕 사우나실에서 몰래 아버지를 만나 둘 다 하염없이 눈물을 숨죽여 울었다는 대목에서는 나도 울었다.
도피생활을 끝내고 범법사실이 1981년 무혐의로 처리되고 난 후, 부모님을 뵈러 미국으로 가기 위해 유학비자를 준비하던 중 들려온 어머님과 아버지의 10일 간격의 사망 비보에 그가 얼마나 비통하였으며 평생 마음의 못이 됐을 거라는 생각에 그냥 아찔하였다.
4부에서는 <대화>에 글을 기고하고, <씨알의 소리>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치른 곤혹과 6년 반동안 미국대학원 생활을 서술하고 있다. 80년대 중, 후반을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태에서 박사학위를 따내는 그의 우직함과 근면함을 언급한 대목에서는 안타까움과 더불어 박수를 보내고 싶다.
5부 ‘다시 기자가 되다’는 김영삼 정부 시절 한겨례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약한 저자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상 깊은 대목은 단독취재기자로 북한을 방문하였으나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강경론으로 돌아선 정부와 수구언론의 ‘불신치기’로 인해 제대로 취재를 하지 못하여 북한 담당원과 싸우면서 보낸 4박 5일의 기록이었다. 평화공존의 시대를 위해 김일성 주석 사망 시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애도를 표하고 갈루치 북미대표는 조문까지 했는데 김영삼 정부는 반공을 미끼로 (참 정신 나간 정부이다) 이부영 의원 등이 신청한 방북조문을 금지하고 탄압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이렇듯 김일성 주석 사망 6개월이 지나서 북한을 취재하려고 한 그를 억압한 반민족적인 김영삼정부의 행동은 참으로 가관이었고 북한보다도 더 융통성이 없고 무능하게 보여 한 시대의 지도자는 정말로 잘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6부에서 언급한 케네디 대통령이 만들었다는 약자보호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은 참으로 좋은 정책이고 우리나라도 이런 정책을 적극 실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에서 케네디 대통령의 정책과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이 선을 위한 정의에 가깝다고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진정한 평등과 복지를 구현하는 나라가 되려면 약자를 보호하는 나라가 반드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연주 필자는 KBS 사장 재직 시 신입사원 채용에서 약자보호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과 유사한 ’지방대 할당제‘, ’블라인드 심사‘를 실시하였다고 했다. 실천하는 인간을 만난 것 같아 책읽기가 즐거웠으며 이런 정책을 통한 결과로 뽑은 신입사원의 대학 구성비를 두고 ’무지개처럼 아름답다‘고 한 말에 100% 공감하였다. 그는 이러한 약자보호 관련규정을 통해 ’명문대 - 좋은 일자리 독점 - 승자독식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 삶이 너무 처절하다(한겨례 2010년 9월 6일 칼럼) (305p.)'라고 말한다. ‘사람 사는 세상은 ’동물의 왕국‘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삶‘을 지향한다(p. 307)'라고 계속 이어서 한 말에서 나는 현재 우리나라의 복지, 인권문제가 떠올랐고, 세금을 흥청망청 써 가면서 단계적 무상급식이 옳으냐, 전면 무상급식이 옳으냐라고 주민투표를 서울시장직까지 걸어가면서 강행하는 오세훈의 무뇌적인 행태가 참으로 안타까웠다.
또한 여러 자료를 통해 전쟁광인 미국의 부시와 이명박 대통령이 비슷하다고 한 글을 읽고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고 무능한 대통령을 뽑아 일다운 일 제대로 하는 법 없이 오만, 무능으로 나라를 망치고 있는 게 참으로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국민이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지도자가 되어야하나 되려 코흘리기 아이에게 총을 쥐어 준 격으로 불안하고 아슬아슬하니 앞으로 선거에서는 철저히 후보를 검증해서 무능하고 부도덕한 인간이 절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마지막 7부 ‘바보 노무현과 나‘는 제일 읽고 싶은 글이었으나 너무 간단하고 단순한 기록이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필자가 참여정부 시절 KBS 사장으로 임명되기 이전의 과정과 임명 후 거리를 두고 바라본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노무현 대툥령의 생가인 봉화마을에서 귀농한 대통령을 만난 일을 언급하고 있었다. 생년이 같은 이 두 인물은 살아있던, 죽어있던 친구로서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정연주 사장 역시 혼자 고민하면서 죽음까지 생각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자주 찾아가 위로하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하였다.
한 인생을 살면서 일괄성있는 삶을 산다는 게 참으로 힘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정연주 전 KBS 사장의 삶은 참으로 배울 점이 많았다. 약자 편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조국이 올바른 공동체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의 편안한 안식처가 되길 바라는 맘으로 억압과 차별을 반대한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 공동체의 안위를 더 우선시하였다는 점에서 본받을 점이 많았고 그의 앞으로의 행동이 내가 살아가는 길에서 큰 그림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