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덕무의 글은 요란하지 않고 가볍지 않으며 중도를 걷는 산 속 산책과 같다.

옮긴이는 이덕무의 글을 6부분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인위적 분류에 다소 무리가 가는 부분이 있지만 독자에게 각 목차에 따라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나름 괜찮은 구성이라 생각한다.

제1장 ‘자화상‘에서는 제목처럼 ‘책에 미친 바보’에 걸맞게 책만 있으면 너무 행복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쓴 잘된 글을 읽을 때면 미친 듯이 소리치고 크게 손뼉 치며 그 글을 내 나름대로 평가했으니, 이 또한 우주 가운데 한 가지 유희이다.'(44p.)의 말은 그가 책을 대하는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대목이다. 빌려보든 구해서 보든 그에게 책은 영원한 인생의 동반자이고 인생의 동무이며 스승이었다.

제2장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서는 지금에도 통할 수 있는 글읽기의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책만 쌓아둔 채 구경만 하거나 책을 읽어도 겉만 핥고 넘기는 잘못된 책읽기의 습성을 깊이 반성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한 가지 그가 말하는 공부하는 방법으로 ‘첫째 경문을 충분히 외워야 하고, 둘째 여러 사람의 학설을 모두 참고하여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별해서 장단점을 비교해야 하며, 셋째 깊게 생각해서 의심나는 것을 풀이하되 자신감을 갖지 말고, 넷째 사리에 밝게 분별해서 그릇된 것을 버리되 감히 스스로만 옳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56p.)는 말은 참으로 마음 깊이 새겨둬야 할 충고이다.

제3장 ‘문장과 학풍에 대하여’에서는 그의 사상이 실학파보다는 유교에 더 많이 기울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항상 고전을 중시하였으며 특히 중국고전에 대한 학식이나 깊이는 여간해서 따라가기 힘든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음이 참으로 부러웠다. ‘효가잡고’라는 말은 효를 행한 다음 여가에 글을 짓어야 한다는 것으로 잘못 읽으면 그의 세계관이 유교관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에게 효는 실처넉 인격수행을 말하여 도문 일치나 수지치인의 경지를 말한다.

제4장 ‘벗, 그리고 벗들과의 대화’에서 이덕무가 척독이라는 짧으면서도 서정적인 편지글을 통해 친구에 대한 자신을 생각을 담은 편지를 여러 편 읽을 수 있었다. 벗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글로는 ‘나를 알아주는 벗’이라는 글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벗을 비단으로 얼굴을 수놓아 가지고 자연으로 가서 말없이 서서 바라보다 해가 저물 때면 품에 안고 돌아오리라.’(p.119)를 들 수 있다. 이덕무의 벗에 대한 생각을 읽고 나의 벗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에게 벗은 나이고하를 불문하여 ‘나보다 나은 사람은 존경하고 사모하며, 나와 같은 사람은 서로 아껴주며 격려해주며, 나만 못한 사람은 불쌍히 여겨 가르쳐 준다면 이 세상은 자연히 태평해지리라.’ (p.121)는 말처럼 열린 마음으로 서로 통하면 그만이었다. 특히 박제가에게 보낸 척독에는 그와 마치 앙숙인양 묘사되어 있지만 실은 너무도 가까운 사이로 서로를 아끼는 동료였다.

제5장 ‘군자와 선비의 도리’는 수필의 진수를 보여주는 글이 담겨 있어 지식적인 면이 강하게 배어 있었던 앞의 장들과는 달리 차분하고 잔잔하게 심금을 울리는 글들이 많았다. 특히 ‘사랑하는 누이를 보내며‘에서는 절로 눈물이 날 정도로 죽어가는 누이에 대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누이를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그의 노력이 눈물겹고 죽은 누이를 편하게 보내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 몸을 기민하게 움직여 염을 하는 모습은 이덕무의 인간으로서의 진면모를 볼 수 있었다.

마지막 장인 ‘자연과 벗을 삼아’에서는 누이집 방문기라 할 수 있는 ‘황해도를 여행하며’가 일품이었으며 한 편 한 편 꼼꼼하게 읽어야 할 정도의 훌륭한 기행 산문이었다. 사람과 풍경을 어우러 한 편의 글을 얼음 위 미끌어지듯 써 나간 솜씨는 그가 단순히 책만 많이 읽은 사람이 아니라 읽은 글을 마음으로 녹여 체화한 큰 그릇의 인물임을 느끼게 하였다.

전체적인 감상평을 쓰기에 글 한 편 한 편에 담긴 사색의 깊이가 너무 깊어 장을 나누어 책의 평을 적었다.

깊이 있는 글을 읽고자 하는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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