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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도 - 그림으로 읽는 『구운몽』 ㅣ 키워드 한국문화 3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막연히 알고만 있었던 조선시대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을 그림과 더불어 만나게 되었다. 책이라고 하면 대부분 글로 이루어져 있어야 하고, 읽는 이가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림을 그려나가야 하는 것을 책의 법칙으로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구운몽도’는 이러한 나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어른이 읽는 책도 그림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그림을 보면서 더 깊은 이해를 얼마든지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읽은 ‘구운몽도’가 반갑고 기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야기의 플롯을 살펴보자. 불제자 성진이 육관대사의 심부름으로 용궁에 다녀오다 팔선녀와 희롱을 하게 된 부분과 그 이후 불도에 집중하지 못하자 육관대사가 인간으로 태어나는 벌을 받는 부분이 전반부에 속하고 양소유로 태어나 이전의 팔선녀의 환생이라고 할 수 있는 8명의 규수, 종, 공주 등과 관계를 맺는 부분과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하려 할 때, 성진이 잠에서 깨어나 육관대사의 제자가 되는 마지막 장면(이때 8선녀도 불교에 귀의한다)까지가 후반부에 속한다.
플롯이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당시 사회에서는 파문을 일으키기 충분한 내용이었다.
한편으로 고대 판타지 소설의 형식에 다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을 담은 연애소설을 읽는 느낌을 받았다. 조선시대의 풍속이나 사상에 막연한 느낌만 가지고 있다 보니 처음에는 낯섦에 몰입이 되지 않았다. 지금도 다소 ‘멍’한 기분은 들지만 한편의 소설이 아무리 많은 이야기와 복선이 있다한들 결국 남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둘러싼 인간의 느낌과 생각이요, 인간에 대한 정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관점으로 보아도 심상치 않은 인간본성의 표출이 과거 조선시대에 어떤 의미로 전해졌을까라는 물음을 갖고 ‘구운몽’을 보면 과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즐거움은 억압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에서 시작된다(142p.)’는 필자의 주장이 ‘과연 이런 소설이 당시 사람들에게 통했을까’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중간 중간에 ‘키워드’를 끼워 넣어 읽는 독자가 ‘구운몽’을 둘러싼 배경을 이해하도록 한 부분은 여느 책에서 보기 어려운 참신한 편집이었다. 마치 강의를 듣는 듯한 기분도 느꼈고 한 편의 소설을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아 읽는 느낌도 든 즐거운 읽기였다. 특히 기분 좋은 대목은 필자가 바라본 소설이 마땅히 맡아야 할 자리에 대한 정의였다.
- 소설은 수신서, 도덕서, 계몽서가 아니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행동하라’ 하는 듣기 싫은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되풀이하는 것을 좋은 교육이라고 할 수가 없다. 좋은 교육이란 남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고, 잘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잘 사는 것은 즐겁게 사는 것이다. (171p.)
이 시대 공부만이 지상최대의 목표인 양 달리는 현대인들이 꼭 명심해야 할 교육이라 하겠다. 적극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