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절망의 구
김이환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절망의 구』를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신없이 이야기에 빨려들었다. 주인공 ‘남자’가 처음 목격한 구는 사람을 흡입하면서 계속 주인공을 쫓아가고 급기야 하나에서 다수로 늘어나면서 세상을 파괴시킬 때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늘어나는 구에 목이 조여드는 느낌을 받았고 부모를 찾아서 000으로 가는 남자의 절박함이 안타까웠다. 비현실적인 소재지만 판타지 소설이 갖는 비현실적인 소재와는 달리 내 주변의 이야기인양 감정이입이 되었다.
남자를 머무는 장소를 보면 처음에는 집 앞 거리, 다음으로 부모님 집으로 가는 거리 그리고 종교집단인 듯한 사람들이 모인 학교와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대형마트 마지막으로 부모님 집 뒷집과 조사를 받은 심문실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장소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공간들이다. 이 중 학교, 마트, 심문실은 종교, 경제, 정치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작가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제도에 대해 부조리함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장소들은 모두 정상에서 벗어나 있고 사람들을 왜곡시키고 있다. 공에게 흡수되는 것을 피할 수는 있으나 종교집단의 일원이 되어 구가 움직이지 못하게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학교 내 종교집단은 교육계를 잠식하고 있는 종교집단의 광적인 모습을 연상시킨다. ‘청년’과 어쩔 수 없이 손이나 발을 잡거나 묶어서 구가 자신들을 삼키지 못하게 한 채 많은 시간을 보낸 대형마트는 그야말로 현대 물질문명의 산실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여러 가지 물건이 곳곳에 재여 있기는 하나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썩어가고 널브러지는 모습에서 우리들 경제도 겉과 속이 다를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구에 흡수되지 않은 유일한 인간이란 이유로 잡혀서 심문을 받게 된 심문실을 살펴보자. 주인공이 심문을 받는 곳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마이크로 소리만 나온다. 심문자의 마이크도 있고 심문자의 상관이 또 다른 곳에서 심문자와 주인공을 보면서 지시를 내리는 마이크도 있다. 마치 공무원과 그 공무원을 지배하는 관료집단이 있고 정치인과 정치인을 지배하는 우두머리들을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의 의견을 무시하고 증인을 내세우고 그 증인들조차 공개처형을 하는 모습은 독재가 지배하던 시대의 모습과 똑같다. 군중의 처형요구 소리 또한 우매한 군중의 무모함을 나타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비현실적인 인간 멸망 시나리오와 더불어 다시 현실로 돌아온 인간의 모습에서 현재의 세상과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집단의 우매함이 팽배하면 결국 혼란과 좌절 그리고 멸망이 나타날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