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한 마디로 압축하라면, ‘건물은 생물이다’라는 말을 꼽고 싶다. 주인공 리오와 사토코, 그리고 데쓰오가 펼치는 건물 세우기, 사람 세우기를 통해 숨 쉬는 건물에 사회와 인간을 대응시킨 시나리오적 문체를 구사한 특이한 작품이었다.
1막은 삶의 건조함에 공사장 비계를 만취하여 올라간 구인광고지 부편집장 리오를 공사감독관인 데쓰오가 구하는 이야기이며, 이 일을 계기로 리오는 데쓰오를 찾게 되고 건설업에 관심을 갖게 된다. 2막은 가기야마 건설사를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창업주 딸인 사토코의 고민과 경영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며, 3막에서 5막까지는 가기야마 건설사에 취업한 리오가 공사현장 감독을 거치면서 펼쳐지는 데쓰오와의 짝사랑과 직원상호간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리오와 사토코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의 인생역정을 통해 개별 인간을 볼 수 있었고, 감원과 합병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인물들을 통해 사회 속 인간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을 건축에 대응시켜 인간이 건축이고 건축이 인간이라는 생각을 보여 준 작가가 펼치는 이야기는 내가 자고, 사는 공간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해 주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과 사람에 대해 고마움과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해 준 점 고맙게 생각한다.
장점이자 단점으로 지적하고 싶은 점 하나는 많은 소설이 묘사와 대화의 구분이 뚜렷하여 독서의 흐름을 타기가 쉬운 반면, 이 책은 실험적인 시나리오 스타일의 문체로 읽기가 다소 힘들었다. 방백식의 독백은 생동감을 주면서 감정이입은 쉬워서 일방적 묘사체보다는 읽기가 쉽겠지만, 일관성이 없음으로 혼란을 야기하였음은 아쉬운 점이었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이런 문체의 섞임 현상이 드러났다. 작가가 시나리오작가 출신인 것 같다.
(예)
1.
자재가 쓰러져 옆집 함석담을 무너뜨렸네. 전 시행자의 부실공사로 마루 밑바닥 상태가 심각해서 그곳에 손쓰다 보니 스케줄대로 진행하기는 힘들어 보이네.... 사토코는 현장을 돌며 계속 머리를 숙였다. (103p.)
2.
....(중략)... 데쓰오와 비교하며 고로를 점점 하찮게 여기는 타산적인 자신에게 리오는 어렴풋이 불안을 느낀다.
데쓰오에 대한 마음은 진짜일까?
난 데쓰오를 우상화하고 있다. (1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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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구절)
‘있다’가 아니라 ‘존재한다’라는 표현에는 건물을 구성하는 재료 하나하나를 살아 있는 생물처럼 다루는 현장의 감성이 보인다. 예를 들어 마루나 벽, 가구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커버를 씌우는 행동을 현장에서는 ‘양생(養生)’한다고 한다.
양생한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다정한 말을 들을 곳이 또 어디 있으랴.
집은 생물이다. (145p)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시행자에 대한 대처예요. 시행자의 요구는 점점 강도가 세지고 사람을 여간 피곤하게 하는 게 아니죠.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게요. 하지만 그건 그만큼 집이 가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아무것도 없던 곳에 살려는 사람이 이렇게 하고 싶다거나 저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미지가 형태로 드러나 집이 세워져요. 그곳에서 사람이 살아요. 자고, 먹고, 쉬고,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아, 역시 우리 집이 최고구나 하죠.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정겹게 느껴져요. 한밤중에 일어나 잠결에도 제대로 화장실을 찾아가는 건 몸이 공간을 기억했기 때문이잖아요. 집이란 그런 식으로 그 사람의 일부가 돼요. 그런 것을 만들다니…….” (21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