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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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치료사는 무슨 직업이고 어떻게 아이들에게 언어와 소통을 가르치는지 궁금해서 선택했다.

책에서는 작가가 아이들을 만나 어떤 치료 방법을 사용했는지를 말해준다.

음절을 익히고, 혀 운동을 연습하고, 자신의 요구를 음성이나 제스처를 통해 나타낼 수 있도록 훈련한다.

그 방법들이 되게 새롭고, 창의적이고, 거창하지 않아서 신기했다. 이렇게 아이들이 언어와 소통을 배워가는구나 싶었다.

책의 구성에서 좋다고 생각했던 건 각 에피소드의 끝애 있는, 작가가 아이들에게 남기는 편지였다.

작가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해 진심을 담아 그들의 행복과 더 나아지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서 읽으면서 뭉클했다.

그건 성인인 내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이것이었다.

혹은 모든 게 지금보다 나아졌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가 전부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착각이며 오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 그러니 군이야, 중요한 건 자기가 아는 유일한 사람인 나와 '지금'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다음 주에도 만나서 서로 해야 할 일을 하자. 열심히, 앞으로 추억이 될 만한 일을 하자.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김지호)', 54쪽

읽으면서 작가님이 되게 담백한 위로를 건넨다고 느꼈다.

허황된 희망이 아닌, 지난한 좌절과 실패를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꾸준히 오랜 시간 아이들을 치료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언어와 사회화의 영역은 절대 급격히 좋아지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서서히 천천히 치료가 필요한데 아주 느린 그 속도와 변화를 놓치지 않고, 꾸준히 아이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교육하는구나 싶었다.

수업 중 '언어장애'에 대해 짧게 배웠지만 이 책을 통해 언어장애 아동들이 어떻게 세상과 만나고 말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익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이 사는 세계, 즉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는 어떤 곳인지 언어치료사인 작가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비록 완전히 아이들의 세계와 마음을 알 순 없어도 언어장애 아동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은 사라진 듯하다.

이번에도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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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조금만 -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
이충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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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출판사 ‘한겨레출판’의 서평단을 신청했고, 운이 좋게 선발되었다. 1월 서평도서로 선택한 책은 이충걸의 인터뷰집 ‘질문은 조금만’이다. 최백호, 강백호, 법륜, 강유미, 정현채, 강경화, 진태옥, 김대진, 장석주, 차준환, 박정자 총 11명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서평도서 두 책 중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법륜스님, 희극인 강유미, 전 외교부장관 강경화, 피겨스케이팅 선수 차준환 등 익숙한 이름들 때문이었다.

순서대로 읽진 않았고, 익숙한 이름부터 읽었다. 가장 먼저 희극인 강유미의 인터뷰 이야기를 읽었다. 희극인이 되기 전, 친구 웃기기를 너무 좋아하던 시절부터 지금 유튜브 채널 ‘좋아서 하는 채널’을 운영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꾸준히 타인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이리저리 갈팡질팡 시도하고 고민했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언니의 개그가, MBTI 롤플레이가 그냥 나온 게 아니구나’, ‘내게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을 경험하면서 축적된 직관과 기술들의 총집합이겠구나’ 싶었다. 강유미의 그런 탄탄한 유머감각을 너무 좋아한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131쪽에서 강유미가 결혼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대목이었다.

저는 결혼에 사랑의 종착역 같은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 관계조차 불안하기만 하고 쉽지 않아요. 결혼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가치 있는 게 아니고, 내가 부여한 의미만큼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남편이 별로인 사람이고, 내 결혼 생활이 남들보다 특별히 불행해서는 아닌 것 같고, 저 스스로 제가 가진 상(像)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강요하는 거잖아요. 내 결혼은 들숨과 날숨마다 나를 행복하게 해줘야 하고, 내 배우자는 늘 나에게 안정감을 주고 한결 같은 사랑을 줘야 된다는 우김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자처하는 거죠.

131쪽

이 언니의 솔직함과 통찰 너무 좋아…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은 개그 만들고 싶은 컨텐츠 계속 올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읽다가 강경화 전 외교부장관 인터뷰에서 몇 번이고 정말 멋지다고 느꼈다.

저는 한순간도 헛되게 지나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나태하면 나태한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다 나의 인생에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 드는 거에 대해서는 한 번도 두려워해본 적이 없어요.

199쪽

잇따른 외교참사로 뒷목 잡는 요즘, 너무 그리운 존멋 장관님… 줄곧 맡은 분야가 인권이었고, 전쟁의 난민, 여성, 노동자 등 늘 소수자, 권력과 거리가 먼 자들을 위해 일해오셨던 분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비록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 도전에서 구배를 마셨지만, 언젠가 세상을 위해 큰 일 해주실 거라고 믿는다.


인터뷰이 중에서 우리 또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차준환 선수밖에 없었는데 나보다 어린데도 심지 굳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그냥, 피겨스케이팅은 제가 할 거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선수들 페이스와 저의 페이스가 다르기 때문에. 저는 아직 하뉴나 네이선 선수보다 기술적인 부분도 부족하고 경력도 경험도 그만큼 없지만, 그들의 페이스를 따라가다가 오히려 더 큰 부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쟤를 이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저의 걸음에 맞춰 하나하나 밟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306쪽

차준환 선수는 제 페이스를 지키고 자신의 무대에 집중하며 제 직업을 즐기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나는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을 보며 조바심을 느끼며 ‘더 잘해야 해’, ‘저만큼 해야 해’라고 다그쳤는데 인터뷰를 읽다보니 그럴 필요 없이 제 페이스에 집중하며 내가 할 거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도 본인이 하고 싶은 만큼, 이루고 싶은 대로 승승장구하는 선수가 되기를 응원하게 된다.

첫 번째 점프나 중간 점프에서 실수가 나왔다고 해도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실수에 사로잡혀버리면 나머지 것까지 다 망치는 거잖아요. 실수는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나올 수 있어요. 실수가 나와도 그건 이미 지나간 거고요. 그 뒤에도 아직 남은 것이 많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수행해내는 게 저에게 이득이고 최선이에요. 어떤 때 점프 실수가 예상치 못하게 계속 나와도 당황하기보다 심호흡을 하고 연습하듯이 이어가려고 해요. 그게 다음 점프에 지장을 주지 않아요. 오히려 남은 것을 다 해내는 게 중요해요.

320쪽

그 외 8명의 인터뷰 내용도 제각기 다른 재미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잠시 내 인생에서 거리를두고서 다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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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카르마 브라운 지음, 김현수 옮김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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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쾌하고 짜릿한 이야기를 오랜 시간 들여 빠져들어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주인공 앨리스와 넬리의 이야기가 점점 흥미로워져서 단숨에 수 십쪽을 후루룩 읽어버렸다.

이야기 구성이 특이했는데, 각 챕터별로 그 시대 빻은 말들이 나와서 '웩 이런 말을 고작 60년 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했다는 거야?'라며 웃기도 했다.

넬리 남편 리처드 나올 때마다 화가 치미는데 시대의 한계로 집을 박차고 나오지 못하는 넬리가 너무도 불쌍했다. 답답했던 만큼 마지막에 넬리가 시원하게 한 방 날려줘서 너무 좋았다. 이런 반전 궁금하시면 책 한 번 잡솨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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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우리 할머니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기억합니다
한성원 지음 / 소동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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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잘 샀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얘기에 몇번이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만화다보니 긴 글을 읽기 싫어할 어린 동생에게 좋을 것 같아서 구매했는데 잘 읽을 것 같아요. 정말 잘 샀어요. 좋은 책 쓰고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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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즈만이 희망이다 - 디스토피아 시대, 우리에게 던지는 어떤 위로
신영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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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없다' 시리즈 중 '건강은 없다'이다. 세계보건기구는 1948년에 건강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온존(well-being)한 상태"라고 규정했다. "완전히" 온존한 삶은 존재할 수 있는가? 완벽함을 지향하는 건강은 신화일 뿐이라는 저자의 말에 '와, 맞아.'라며 무릎을 친 건, 나 또한 계속해서 완전히 온존함을 추구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걸 앎에도 계속해서 완전해지기 위해 아등바등 했던 지난 시간들이 생각나서였다. "완전"해지라고 온갖 건강산업들이 마케팅을 하고, 사람들은 채워질 수 없는 "완전함"을 쫓으려 하고, 그러는 사이 의료가 점점 영리화되어 간다.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 사이 빈부격차에 따라 의료 서비스 혜택의 격차가 커져간다. 이걸 파악하고 바꾸려하지 않는다면 의료의 공공성은 회복은 커녕 훼손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의료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 그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이 책에 담겨있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에게 공정한 의료가 제공되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자본에 좌지우지되며 점점 약자를 외면하는 의료 정책들, 건강한 사회를 망가뜨리려는 사회적 문제들, 국경을 넘어서 이어지는 이야기들. 암울한 이야기에 다소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각지대 없이 만인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보건의료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럴려면 자신이 의료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늘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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