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지막 하니포터 활동인 만큼 7월 도서를 2권 신청했다.

시험준비 하느라 빠듯한 기간일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읽고 싶은 걸 고른 거였는데 두 권 다 너무 좋았다. 특히 이 소설집 너무 재밌어서 아주 만족스럽다.

예전에 박서련 작가의 장편소설 '마르타의 일'과 '체공녀 강주룡'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단편집도 역시나!

책에 총 7개의 단편이 실려 있고, 각 단편마다 좀비 아포칼립스, 모성 이데올로기, 여성의 몸과 노화, 상실과 애도 등의 주제가 있다. 그중에서 나는 '세네갈식 부고'와 '나, 나, 마들렌'이 가장 인상깊었다.

나는 드바를 진심으로 좋아했지만 드바를 생각하면 피곤하기도 했다. (중략) 그러니까 총체적으로 엉망이었던 거다, 내가 드바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드바와 함께하는 동안에 느낀 피로감과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중략) 정다운 이야기였으나 꼭 그만큼 지긋지긋하기도 했다.

145p, '세네갈식 부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피로감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말이 어찌나 공감되었는지.

이전 글에서도 종종 반복되는 말이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그 마음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고, 무언가 불편함과 섞인 양가감정을 수반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불편함이 바로 피로감이 아니었나 싶었다.

애달프다고 느껴지겠지만 그만큼 진심으로 좋아하니까 그 불편함마저 받아들이겠다는 견고함에 가깝다.

결국 화자가 드바를 추모하기 위해 도서관을 태우려고 했던 건 실패했지만, 도서관의 스프링쿨러가 터진 건 내내 담담했던 화자의 울고 싶은 마음을 대변한 게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마들렌과 소설가를 동시에 보고 있는 동안에 나는 소설가보다 마들렌을 미워하는 나를 발견했고 마들렌의 감자 친구인 나는 그런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분명 소설가를 미워했지만 한편으로는 연민했다. 그런 인간을 연민하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그런 자리에 앉게 만든 마들렌이 소설가보다 더 미웠고 최종적으로는 나 자신을 가장 미워하게 되었다.

p224, '나, 나, 마들렌'

애인에게 느끼는 열등감과 동경하는 소설가에 대한 연민, 애인에 대한 미움, 모순된 자신에 대한 혐오 등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버린 마음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계속 자아분열을 겪다가 결국 둘로 쪼개지는 인간의 이야기.

한숨이 푹, 나오면서도 그 감정들이 이해되지 않는 게 아니라서 참 안타까웠다. '에휴 인간아...'라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인 이상 인정욕구? 없을 수 없지, 열등감? 뗄 수 없지 싶어서 읽는 나도 착잡해졌다.

차라리 포기하고, 내려놓고, 인정하면 될텐데 그러기에는 애인을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더더욱 느껴졌다.

어쩌면 헤어지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말하기 회피하던 인간이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리니까 결심이 선 걸지도 모른다.

'이 인간아...' '에휴...ㅠㅠ' '으이구...' '아휴ㅜㅜ...'의 반복...

이제 그만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그저 애인을 사랑해라...

솔직하게 고민과 마음을 이야기하고 헤어지든가 계속 사랑하든가 둘 중 하나만 해...

박서련 작가님은 정말 인간의 양가감정과 본능, 그럼에도 연대하는 과정을 너무 잘 표현하신다.

'마르타의 일'에서부터 느꼈던 건데 작가님의 거침없는 문체가 정말 좋고, 서사에 몰입시키는 능력이 탁월하시다.

자기 전에 책을 읽는데 이 이야기들은 너무 재밌어서 잠이 달아난다. 그렇게 두 편씩 연달아 읽거나 다른 한 편 읽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애써 눈을 감는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작가님들' 목록이 갱신되었다.

이 소설들은 도무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누군가의 마음에 나를 첨벙 담갔다가 끄집어낸다. 첨벙, 또 첨벙, 하며 계속 다른 호수에. 이게 대체 뭐람, 투덜거리면서도 한참 물에 젖은 채로, 나는 그 마음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그리고 이 모든 마음이 어쩌면 한 인간에게도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김초엽 작가님 추천사

아 제 말이 그 말이라니까요, 작가님! 역시 작가님이셔서 내 마음을 이리도 잘 풀어서 설명해주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 -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통해 예민함을 나만의 능력으로
전홍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예민하다.

예민한 것에 이유는 없다. 그저 타고났을 뿐, 초기 애착 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지도 않고, 큰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내가 예민한 건 나의 잘못이 아니다.

과거에는 둔해지려고도 애써봤지만 자신을 부정하게 될 뿐이었는데 요즘에는 내가 예민한 게 좋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요긴하게 쓰이고, 어떻게 보면 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덕분에 내가 느끼는 감정을 빨리 알아차려 힘든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고, 타인의 감정을 읽으며 보다 섬세하게 배려할 수 있다. 또한 내가 중요한 과제를 피하려고 할 때, 나의 예민함을 다독이고 과제에 쏟아 만족스럽게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 예민해서 더 기민하게 느껴지는 감정들을 늘 헤아리려고 하고,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늘 글로 남겨놓으며 나만의 해결방법들을 구축해놓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매우 예민한' 사람들 중 내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민함이 폭발할 때 어떻게 상황을 잘 극복해나갈지, 이 예민함으로 각박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잘 다루어야 할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선택했다.

책의 저자는 삼성서울병원 디지털치료연구센터장이자 성균관의대 연구부학장으로 재직 중인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다. 이 책은 <한겨레>에 3년간 연재한 '예민과 둔감 사이'라는 상담 칼럼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실전 편'이다. 첫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 예민한 사람들의 특징과 예민성을 잘 극복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 책에서는 실전 편 답게 예민함에 관한 뇌과학과 정신의학적인 설명과 함께 예민함을 능력으로 바꾸는 방법에 방점을 두었다. 불안, 우울, 분노, 트라우마 편으로 나눠서 상담 사례와 함께 예민함과 얽힌 여러 감정들의 원인을 깊이 있게 분석한다. (출판사 책소개 참고)

정신건강의학이나 심리학을 가장한 자기계발서들을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경계심을 가지고 책을 처음 펼쳤는데 웬걸,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나의 예민함을 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서문이었다. 그동안 예민함은 핍박받기 마련이었는데 교수님께서 '예민해서 이런 점들이 힘드셨죠? 앞으로 예민함을 어떻게 좀 더 유연하게 다룰 수 있는지 함께 알아가봅시다'라고 진료실 문을 여시는 것 같았다.

안전기지, 회복탄력성, 자동적 사고 등 많은 부분들이 인상깊었지만 그중에서 따로 정리하고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은 '우울 편'의 뇌과학이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 변연계가 지나치게 활성화

  • 변연계: 이전에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을 회상함.

→자신에게 우울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 사람이 이전에 가했던 기억까지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나게 함

  • 편도체: 느끼는 감정에 따라 과거의 기억을 강화하고 쉽게 회상함

→공포, 불안,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때 변연계를 자극해서 더 강하게 기억하게 만듦

우울↑→전두엽↓→변연계에서 만들어진 우울, 불안의 기억들이 통제가 안 되고 의식의 표면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름

→매우 예민한 사람이 느끼는 우울이 실제보다 더 크게 느껴지게 됨

우울에 잠식되는 걸 예방하기 위해 '보호요인'을 증진하면 큰 도움이 됨

  1. 안전기지

  2. 대인관계의 능력

  3. 감정조절의 능력

  • 안전기지

: 가족, 직업, 친구, 전문가 등 주변 사람들과 강하고 지속적인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

*초기 애착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어도 후천적으로 형성할 수 있음

  • 대인관계의 능력

: 타인과 쉽게 어울리고 타인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자신의 에너지 소모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능력

타고난 경우도 있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음

  • 감정조절의 능력

: 긍정적인 자동사고를 생각하고 활동을 통해 우울에 몰입하는 것을 줄이고, 타인과 갈등을 만들기 전에 양보→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우울로 가는 걸 막기

현재에 집중하고 지금 일어나는 일을 잘 마무리하기→미래에 대한 두려움 줄이기

새로운 좋은 일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계속해서 트라우마와 관련이 없는 새로운 것들로 뇌를 채우기

현재에 집중하고,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나는 가끔 우울할 만한 일이 없는데도 기분이 우울해지고 감정의 기복이 생기곤 하는데, 이 책을 통해 이것이 나의 예민한 기질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이 감정과 기억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회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실습이 끝나고 장마와 겹쳐 계속 집안에만 있으니 이렇게 좋았던 것들을 금세 잊고 다시 우울과 불안, 분노의 수렁에 빠지려 했다. 다시금 내가 겪은 일들을 떠올려서 부정적인 사고회로를 멈추니 지금 이 감정들에 종식될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지만 새로운 것들로 나를 채워나가자. 지금 하는 일들에 최대한 집중하자. 그동안의 좋았던 경험들을 꺼내어 긍정적인 사고회로를 유지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량한 사람들은 비윤리적인 행위를 대리인에게 위임한 뒤 책임을 편리하게 회피한다. 더러운 일을 떠맡은 사람들은 무슨 불량배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무의식적 위임'을 받은 이들이다.

'더티 워크' 18p

'더티 워크'는 모두가 꺼리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을 말한다.

이 책에서 '더티 워크'는 다음 네 가지 구체적인 뜻을 가진다.

  1. 다른 인간에게 또는 인간이 아닌 동물과 환경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는 노동으로, 이따금 폭력을 행사는 것

  2. '선량한 사람들', 즉 점잖은 사회 구성원이 보기에 더럽고 비윤리적인 노동

  3. 그 일을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낮게 평가되거나 낙인찍혔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아니면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스스로 위배했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상처를 주는 노동

  4. '선량한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에 기반한 노동으로, 그들은 사회질서 유지에 그 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명시적으로는 그 일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만약의 경우에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노동

Part 1은 교도소 안에서의 '더티 워크' 이야기다. 한국에서 교도관은 더럽고 비윤리적인 노동이라 평가되지 않지만 외국은 다른 모양이었다. 외국에서 교도관은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으로 재소자를 대하는, 어디가서 제 직업을 밝히기 수치스러운 직업이라고 한다. '선량한 사람들'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엄벌로 다스려지고, 인간으로서 대우받지 않기를 원하며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무시한다. 교도소에 할당되는 예산이 삭감되거나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부족한 재정으로 교도소가 유지되게 하는 것에는 관심없다. 그로 인해 교도소는 더 쉬운 방법으로 재소자를 제압하려 하고 폭력의 수위는 점점 심해지며 교도관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스스로 위배함에도 불구하고 '선량한 사람들'은 그 일을 제 손으로 하진 않기 때문에 언제든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심한 폭력으로 재소자가 사망한 뒤 뉴스에서 사건을 다루게 될 때서야 교도관을 비난한다. '아무리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해도 그렇게 비윤리적인 행동은 하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이들은 자신이 직접 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배경을 알고싶어 하지도 않는다. 교도관들도 그 환경 속에서 점점 잔인해지고, 서로의 폭력을 눈감아준다. 자신의 직업에 자신감을 느끼기보다 잔혹한 사람들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힌다. 이러한 폭력적인 장면을 보고 듣는 교도소 내 다른 직업 종사자들 또한 계속 상처를 받는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히며 곪아간다. 여기에 '선량한 사람들'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 또한 '선량한 사람들' 중 한 명으로 '더티 워크'를 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진 않았을까 돌아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어떤 '더티 워크'가 있고,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들에게 책임을 넘기고 있었던 걸까 싶었다. 보고 싶지 않은 어두운 면을 '누군가는 해주겠지'라며 암묵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떠맡기고 소시민으로서 나의 양심을 지키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암묵적인 동의에 의해 '더티 워크'를 하는 노동자들이 있으며, 이들의 희생으로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에도 고민 없이 골랐다.

2019 젊은작가상 수상 단편 '넌 쉽게 말했지만'의 작가인 이주란 소설가의 세번째 소설집이었기 때문이다.

'넌 쉽게 말했지만' 때문에 2019 젊은작가상 소설집을 샀고, 그해 마음이 푸석푸석 마르고 갈라지는 순간마다 물 한 잔 마시듯 저 단편을 몇 번이고 읽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고민없이 골랐고, 오랜만에 이주란 작가님의 단편들을 읽게 되었다.

작가님의 단편 속 주인공은 어쩐지 사회에서의 자리가 미약하고 내몰렸더라도 어떻게든 삶을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살아가는, 자신의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고 내일을 맞이하는 인물인 것 같다.

불안정한 계약직 생활을 버티다가, 자신을 위해 일을 그만두고 제 하루를 돌아보며 다시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그런 인물들.

내가 나라서 주어진 이 삶에 대하여, 불현듯 불안과 좌절, 무력감을 느끼지만, 희미한 희망과 따뜻함으로 오늘을, 내일을, 그 다음을 살아가는, 들꽃 같은 사람들.

그래서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도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소설집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은 멋드러진 사람들만 전시하며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살라고 강요하지만,

남들이 '시시하다', '별 거 없다', '쓸모 없다'라며 함부로 얘기해선 안 되는 각자만의 삶과 방식이 있다.

채도가 낮든, 명도가 짙든 내 삶은 나의 것, 네 삶은 너의 것.

결국 나는 나고,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내 삶이며, 그걸 부정하거나 긍정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앞으로도 내가 나라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나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며, 나와 사이 좋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다.

얇지만 단단한 뿌리를 내리듯 희미한 희망과 기대를 갖게 된다.

이게 "다음이 있다는 마음"인 걸까?

이주란 작가님의 소설집을 오랜만에 읽은 겸 작가님의 다른 소설집도 읽고 싶다.

이번에도 한겨레출판 덕분에 좋은 책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배달앱을 켤 때마다 배달 업계의 시스템이 궁금했다.

언제부터인가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와 같은 플랫폼이 생기고, 배달료가 3000 이상으로 오르고, 그런데도 배달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의 일련의 일들이 대체 왜 일어나는지 알고 싶었다.

때마침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의 초대 위원장인 박정훈 배달라이더의 책,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가 서평 대상 도서였고, 고민 없이 선택했다.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할 자신이 없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책에서 너무나 쉽고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서술되어 있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더 와닿았다. 노동자들 바로 옆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배달노동자들의 유형, 가게에서 직접 고용하거나, 동네배달대행업체 소속이거나, 자회사(ex. '우아한형제들')에 소속되거나 세 가지 형태가 있었다. 동네배달대행업체 소속의 경우, '배달의민족' 어플에서 '배달'을 담당하며 여러 배달을 동시에 할 수 있고, 자회사와 계약을 한 경우, '배민1'을 담당하며 한 번에 하나의 배달을 한다. 왜 '배민1' 혜택을 그렇게 많이 주는지 이해가 되었다.

배달대행업체에서 배달 1건당 3000~4000원을 주는데, 오토바이 리스비가 하루 4~5만원 하는 터라 하루 10~15건 이상은 해야 한다. 그래서 픽-배-픽-배-픽-배를 반복하며 여러 배달을 도느라 정신없이 도로를 질주한다. 그런데 한국의 교통 시스템은 이륜차에 대한 이해가 낮고, 면허 제도 또한 허술해 배달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 비나 눈이 오면 기상수당으로 500원이 더 붙는다. 하지만, 정작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되면 리스비는 계속 나가고, 결국 마이너스가 뜨게 된다. 사고가 나서 망가진 음식들을 식당에서 배상해야 한다. 그래서 배달노동자들은 다치면 제 몸을 살피기보다 식당 사장과 배달대행업체 사장에게 전화하고, 대타 라이더에게 배달을 부탁하고, 음식 상태부터 걱정한다. 라이더들은 회사와 음식점 사장, 그리고 손님들로부터 안전운전하길 바라는 동시에 빠르게 배달해주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요구를 늘 받고 있다.

배달앱을 이용하면서, 음식이 조리되어 집 앞에 도착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40~60분 정도인데 그게 길다고 느꼈었다. 배가 고프니 음식이 최대한 빨리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앞으로는 이 시간마저 짧다고 느껴진다. 그동안에 배달노동자들이 도로 위에서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렇다고 배달을 아예 안 시키는 게 이들을 위한 것인가하면 그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이들의 근무 환경과 구조를 알게 되었고, 앞으로 사회의 제도와 사람들의 인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배울 수 있었다. 배달 노동을 개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고민하는 이들을 응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