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 한국사 2 - 고려의 성립부터 멸망까지 통통 한국사 시리즈 2
안길정 외 지음, 강화경 외 그림 / 휴이넘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려라는 나라의 역사가  아쉽게 느껴진다.

<통통 한국사>는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여느 역사책처럼 시대의 흐름에 따른 책이긴하나

인물에 대한 것이나 사건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같이 책을 읽은 딸아이에게 물었다.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에서 오랑캐 나라와 교류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지 않았다면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면서 몽골에 끝까지 투행했다면

하는 여러가지 새로운 접근을 해보게끔 질문을 던져보았다.

고려 초기는 건국을 도운 문벌 귀족들이

고려 중기는 무신들이

고려 말기는 친원 세력이 대세였다.

그 기득권자 들은 나라나 왕,백성을 위한 정책 보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했다.

고려는 종교로는 불교를 정치적으로는 유교사상을 기본으로 이끌어 갔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로

고려는 중국의 나라의 문화는 받들고

그외 오랑캐 나라와는 교류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고려는 오랑캐들의 침입이 잦았다.

처음 고려는 침범한 요나라 거란족,금나라 여진족,몽골,원나라에 이르기까지

고려는 오랑캐들과 항상 전쟁을 치뤄야했다.

만약,왕건이 훈요십조에 그런 말을 남기지 않았다면 고려사는 달라졌을까?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백성들뿐이였다.

기득권들은 전쟁중에도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했다.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옮길때에도

최씨 정권은 실권을 잃지 않도록 강화로 옮기자했지만

본토에서 몽골군과 싸운것은 승려와 노비인 고려의 백성들이였다.

그리고 강화도에서 몽골군과 끝까지 싸웠다면 고려사는 달려졌을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몽골에 투항한 기득권들이

강화도에서 진도,탐라로 옮기며 끝까지 저항한 삼별초군과

힘을 모았다면 과연 고려사가 바꾸지도 않았을까?

여러 차례 전쟁으로 고려는 인명이나 문화재등 많은 손실을 보았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

불심으로 몽골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만들어 낸 팔만 대장경

그리고 고려인들의 자주 정신

딸아이는 고려하면 

함께 보았던 천추태후와 고려청자가 가장 먼저 떠오른단다.

고려인의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

고려의 우수한 문화인  청자와 금속활자

<통통 한국사>는 역사를 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