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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 Routes of Santiago de Compostela in France
차노휘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0월
평점 :






하마터면 크게 오해할 뻔 했다. 제목이나 책표지에서 풍겨지는 분위기가 여행자의 이야기임이 분명해보였다. 표지 주인공을 보고 '나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저렇게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텐데...'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저자소개를 보고 '헉!'했다. 나는 어쩜 스스로 갈 수 있는 길을 이런 저런 핑계로 스스로 막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1년 전 <같이 걸을까>라는 예능프로그램이 떠올랐다. GOD 멤버 모두가 출연한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지만 순례길을 티비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무척 컸다. 매주 빠지지 않고 챙겨보면서 그 시간만큼은 나도 한 명의 자유로운 순례자가 되어 그 길을 함께하는 기분을 느꼈다. 저자의 뛰어난 글솜씨 덕분인지, 이미 <같이 걸을까> 시청을 통해 순례길을 봤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글을 읽으면서 그 장면과 분위기를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재미있고 더욱 생동감있게 느껴졌다.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은 한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차곡 차곡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때로는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사진을 보며 '와~~~'하는 탄성이 터지기도 하고, 물집 잡힌 저자의 발을 보며 안타까움에 나도 모르게 신음하며 읽은 책이다.
나조차도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랄까. 나는 언제부터 낯선 사람을 적대시하게 되었을까. 순례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중 유독 한국인은 무표정으로 낯선 사람을 눈에 띄게 경계하곤 한단다. 저자는 그런 이들을 아직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로, 이 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개방적으로 변할 거라고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그와 같은 믿음이 생겼다. 혼자있는 시간을 굉장히 좋아하는 나지만, 한 달이라는 긴 시간동안 혼자 오롯이 그 길을 완주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라는 걸 잘 안다. 저자에게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동행자들이 단지 운이 좋아서 만나게 되었다기보다는 내가 가도 언제든 그들과 비슷한 동행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함께 어울려사는 우리 인생인데 여지껏 난 그 방법을 온 몸으로 거부해왔다.
니콜라, 스펜서, 맥스, 데이비드, 프란체스코, 연석, 소리 등등... 내가 기억하는 동행자만 해도 10명이 족히 넘는다. 이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함께 걷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헤어지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예상치못한 만남이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내겐 예상하지 못한 아는 이의 만남이 더없이 즐겁고 반가웠다. 초창기 걷기 시작하면서 만났던 익숙한 얼굴들을 점점 하반기로 가면서 더이상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것 또한 순례길이기에 받아들일 수 있는 아쉬움이었다.
내가 아직 많이 어리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의미로 어리다는 게 아니라 미성숙하다는 사실을 어렵게 인정한다. 나는 허리도 아프고 손발 다한증도 무척 심하고 내성적이라 순례길은 절대 걷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내가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순례길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이제는 혼자 있고 싶다고, 제발 날 좀 내버려두라며 내게 다가오는 사람을 내치지는 말아야겠다.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이정도인데 실제로 순례길을 걸으면 얼마나 대단한 것을 배우게 될까?
20대에 <연금술사>라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순례길.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순례길이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덕분에 점점 나의 길처럼 가깝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