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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의 인문 여행
이영민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6월
평점 :





<지리학자의 인문 여행>은 아래 더미북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dkizdevil/221552854559
6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소책자였지만 더미북을 읽은 후 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습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즐기는 한 사람으로, 이 책을 통해 더욱 풍부한 여행을 즐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고 그 확신이 딱 들어 맞았습니다. 더미북을 읽고 두어달쯤 지났을까요. 운 좋게도 본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한 때 두 달에 한번 꼴로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저 해외에 나간다는 이유 하나로 들뜨고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장소만 다르지 매번 반복되는 여행이 시시하게 느껴지자 나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 이유를 그 때는 몰랐지만 <지리학자의 인문 여행>을 읽고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들이 하는 비슷한 여행을 따라하기 급급했을 뿐 나만을 위한 여행을 떠난 건 몇 번 없었습니다. 나만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이 되어야하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지리학자의 인문 여행>을 통해 제가 했던 여행 방식에서 잘못된 점을 알게 되었고 더 풍성한 여행이 되는 방법을 배우게 되어 무척 뿌듯합니다.
지리학자는 여행지에서 계획에 없던 일도 즐기라고 합니다. 시간단위로 쪼개어 여행 일정을 짜는 피곤한 스타일인 저에겐 적잖은 충격입니다. 계획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여행지에서 전전긍긍했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물론 여행을 위한 기본적인 준비도 필요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준비가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스트레스 받고 쩔쩔 맬 일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익숙한 장소라도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면 또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다른 사례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라는 같은 장소에서 저자와 제가 느낀 감정은 무척 달랐습니다. 낮동안은 1층 승객과 함께 뻘쭘하게 앉아있어야하고 밤에는 불쾌하고 찝찝한 좁은 침대에 송장처럼 누워있어야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대한 제 기억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반면 사람 사는 냄새를 맡고 함께 소통하며 어울린 저자에게는 굉장히 푸근하고 친밀한 공간으로 느껴집니다. 같은 장소에서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다른 기억일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심상지도'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머릿 속에 떠올리는 장소에 대한 기억이라고 이해하고 그동안 내가 여행했던 곳을 차분히 떠올려봅니다. 희안하게 종이 지도를 이용하여 직접 여행일정을 짰던 곳은 마치 우리 동네처럼 구석구석 잘 기억이 나는데 패키지 여행처럼 누군가에게 의존하여 따라다닌 여행지는 핵심 장소만 기억날 뿐 지났던 길이나 심지어 지명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지도 놀이를 통해 심상지도를 풍부하게 살 붙이는데 다음 여행의 목적을 두기로 했습니다.
또 여행의 좋은 팁 하나 알게 된 것은 그 지역 투어버스를 이용하는 겁니다. 시티투어버스는 타 본적이 있지만 이렇게 활용하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알려준 방법은 투어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쭈욱 돌아보는 겁니다. 그 이후에 내가 더 보고 싶은 곳을 고르고 지나왔던 기억을 살려 적절하게 일정 루트를 짜는 것이죠.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보는 것 또한 그 지역의 맥락을 파악하는데 아주 좋다고 합니다. 전망대에 오른 후 시티투어버스에 오르는 것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여행자인 나를 중심으로 다녔지 현지인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현지인과 소통하는 법, 현지인에게 갖춰야할 매너를 배울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에게 경계의 눈빛을 발사하고 상당히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던 저를 다시한번 반성합니다. 세상엔 좋은 사람도 참 많다는 걸 저자의 사례를 통해 느낍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장소, 지리와 떨어져 있는 사람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간과해왔던 지리적 정보를 통해 더욱 풍부한 여행을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잠시 시들했던 여행 기운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다음 여행은 지금까지 했던 여행보다 더욱 의미를 갖게 되는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