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도시
은기에 지음 / B&P Art&Culture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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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핏 제목만 봐서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도시일 것 같지만 섬뜩한 표지가 그런 환상을 단박에 깨 버린다. 심지어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한다니...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럴 수 밖에 없는 건지 궁금했다. 한동안 즐겨봤던 미드 <워킹데드> 시리즈가 떠올랐다.

귀신보다 무서워하는 존재가 둘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곤충이고 또 하나는 식물이다. 곤충이야 그렇다치고 식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화초를 자식처럼 아끼고 가꾸는 엄마는 무슨 여자가 꽃을 싫어하냐고 타박하시지만 그 때마다 난 "저것들이 우리가 자라는 사이에 무럭무럭 자라나서 내 숨통을 조일 거 같애." 라고 대꾸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반감이 있던 어린 나는 식물이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어린 내 눈에 인간은 무자비하게 자연을 약탈하고 아낌없이 준다느니 하는 헛소리로 그 약탈을 합리화하는 듯 했다. 나도 그런 인간 중 한 명으로 식물은 물론 온 자연에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식물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힘이 있다면 우린 다 끝장날거라고 생각했기에 식물이 무서웠다. 이런 나의 공포심이 적극 반영된 소설이 <녹색도시>이다. 왜 녹색도시가 되었는지, 어떻게 해결했는지 그건 문제가 아니다. 녹색도시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버티는 하루 하루가 문제다.

표지 문구에서 경고 했던 것 처럼 내가 살기 위해 남을 해쳐야하는 곳이 녹색도시다. 평소 좀비물이나 SF장르를 많이 봐서 그런지 폐허가 된 녹색도시를 떠올리기는 참 쉬웠다. 움직일 수 있고 공격력을 갖춘 식물이 인간을 공격하고 공격당한 인간은 식물화가 되어 간다. 살아남은 인간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인간으로써 정말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하며 연명한다.

무서운 점은 초반에 서로 싸우기 위해 혈전을 벌일 때마다 불편했던 마음이 점점 무뎌진다는 것이다. 주인공 '정태우'가 살인에 점차 무뎌지고 농장 건설에 반감이 사라진 것처럼 나도 역시 점점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이유로 잔인한 현실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극에 달한 사람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내가 살기 위해 남을 해쳐야 하는 걸까. 숨쉬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어도 꼭 살아야하는 건가. 많은 의문이 머릿 속을 멤돌지만 딱히 답을 찾기는 어렵다.

소설 속에 녹색도시가 다소 순화된 곳이 현실세계라는 건 비약일까. 생각해보면 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어도 그저 자신의 안일을 위해 남을 해치는 사람이 있다. 녹색도시가 아닌 이 현실도시에서 말이다. 행여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도 한가지 명확한 사실은 그럼에도 살아있으면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는 나약하여 진작 포기할 것 같지만 나와 달리 도전적이고 희망적인 사람들은 모이고 뭉쳐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다. 정태우는 혼자이지만 긴박한 상황마다 그를 도울 사람들이 나타난다. 저마다 개성은 달라도 함께 돕고 살아가기에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살이 깍이는 극심한 고통을 참고 이겨낸 자는 조금 더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인간성을 잃는 순간 세상에서 살아져야할 존재가 된다. 어차피 죽는다면 뭐라도 시도 해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책에서도 이 점은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적인 면이 남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는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 나라면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녹색도시>를 통해 삶에 대한 의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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