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마흔 고독한 아빠
이시다 이라 지음, 이은정 옮김 / 살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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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아오다 고헤이

한 때 작가의 삶을 동경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동경하고 있지만 작가의 삶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사실은 최근에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작가라면 언제 어디서든 술술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도 창작의 고통 속에 산다는 사실은 더이상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고독한 아빠 고헤이의 직업이 바로 작가이다. 유명하지도 않고 고정적으로 인세가 들어오는 책도 없다. 작가는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꺼내어 이야기는 풍성하게 쓰되 작가 자신은 소진되어 버린다는 고헤이의 말이 너무 슬프게 들린다. 작가는 일에 대한 열정을 쏟으면 쏟을수록 하얗게 불타올라 마침내 재가 되어 버릴 것 같은 열정적이지만 고달픈 일을 하고 있다. 일도 힘들진데 아내까지 잃었다...

'칫치와 마맛치'

우리말은 아니지만 왠지 정감이 느껴지는 귀여운 호칭이다. 굳이 뜻을 찾지 않아도 누굴 부르는지 알 것 같은...

초등학생 아들인 가케루가 아빠와 엄마를 부르는 말인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평등하고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주는 듯하다.

아이어른 '가케루'

"칫치는 칫치잖아. 소설을 안 써도 멋지지 않아도 칫치는 칫치라고..."

어디서 이렇게 기특한 아이가 나왔을까. 가케루가 하는 말을 듣다보면 깜짝 깜짝 놀랠 때가 많다. 초등학생이라고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선물을 좋아하고, 감정표현에 솔직할 때 보면 영락없는 어린 아이지만 칫치의 일거수일투족을 뚫어보는 직관이 살아있고 심각한 문제에 있어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보면 나보다 더 어른스럽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를 잃고 아빠와 살면서 속 한번 안썩히는 착실한 아들이다. 아, 학교에 한 번 불려간 적이 있긴하지만 결코 가케루의 잘못만은 아니었으니... 하여간 너무 어른스러워서 안쓰러운 생각도 들지만, 힘든 상황의 고헤이에게 언제나 큰 힘이 되는 가케루가 있다!

히사짱 '히사에'

히사에의 죽음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교통사고는 흔하게 일어나는 사고니까... 더군다나 졸음운전이라니 안타까운 사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히사에의 죽음이 의심스러웠다. 사람이 너무 행복하면 딴 생각이 들수도 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었다. 고헤이는 오죽했을까. 혼란스러워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고헤이에게 가케루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쓰바키와 나오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작가의존적인 독자스타일인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다니...

쓰바키와 나오 두 사람의 신경전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고헤이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텅빈마흔 고독한 아빠>와 함께 한 일주일동안 고헤이 가족의 일원이 된 기분이었다. 일본 여행도 가봤고 일드<고독한 미식가> 시리즈를 즐겨보는 터라 책에서 묘사되는 동네를 떠올리는 건 쉬웠다. 고헤이 가족을 보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간접적으로 느껴본 듯하다. 남들은 다 죽었다하지만 가족들은 죽음을 받아드릴 수 없다. 가족들에게는 사라져버렸다는 표현이 더 와닿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경험이 없어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 삶이 다 무너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산사람은 살아야한다는 말처럼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고헤이 가족이 사는 것 처럼.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은 그저 기분일뿐이다. 살다보면 또다른 좋은 일이 생기고 살아갈 희망이 보인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텅빈 마흔이라지만 가득찬 달 빛 아래 서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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