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
이시이 모모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샘터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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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정원, 거기에 고양이라... 나의 경우 책과 테라스, 거기에 강아지가 있어 좋은 날이라 할 수 있겠다.

책 제목만큼이나 표지 역시 한가로움이 가득 묻어난다. 요즘같이 일에 치이며 긴 듯 짧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지금 딱 필요한 책이다. 어딘가에서 우연히 스치듯 보곤 '아... 보고 싶다.' 생각했던 책인데 마침 읽을 기회가 생겨 넘치는 행운에 어깨가 으쓱하다.

원래 책을 읽기 전에 저자와 머리글을 꼼꼼히 읽는 편인데 이 책은 바로 본문으로 넘어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읽고 싶은 마음이 매우 급했던 것 같다. 책을 읽다보니 의아한 점이 한 두개가 아니라 (사실 내가 책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때문에 생긴 거지만...) 중간에 저자 소개를 다시 찾아봤다. 예상과 너무나도 먼 옛날 얘기가 나왔다 했더니 저자인 이시이 모모코는 이미 2008년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분이셨다...

고양이와 인연은 따로 있는가보다. 나는 3층 주택 꼭대기에 혼자 살고 있는데 가끔 동네고양이들이 나의 테라스에 놀러올 때가 있다. 한번은 밝은 갈색을 띄는 튼튼한 고양이가 그 길고 튼실하던 꼬리가 잘리고 앞 발을 절뚝거리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 아픈 몸을 하고도 나를 보자 쏜살같이 옆집 옥상으로 피신했다. 아마도 동네 애들한테 잡혀서 해를 당한 모양인데 너무 안되어서 먹을 것도 갖다주고 고양이집도 마련하여 테라스 한켠에 두었다. 그런데 먹는 건 홀랑 먹고 전혀 나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양이와 비교했을 때 '쫌 너무하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심통이 난다.

나는 혼자 있을 때 더 좋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좀 이상하긴 해도 거짓 없는 진실이다.

원래 서툰 사람이 야무진 사람들을 쫓아가려면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 끊어내고 아무 말이나 대충 입에 담으며 먼저 걸어가야 한다. 언제나 어중간하고 조잡하게 사는 수밖에 없다.

p.43

나는 이 말에 백배 천배 공감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둔하디 둔한 나는 사람들 말을 잘 못알아 듣는다. 한참 생각하고 나서 그 진위를 파악할 때쯤이면 이미 대화는 끝난 후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내가 오히려 답답해서 일단 대답부터 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곧잘 헛소리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앞서 알겠다고 대답해놓고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나중에 딴소리를 하는 것이다. 정말 어중간하고 조잡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ㅠㅠ

이 첫인상 덕분에 나는 휴식이라고 하면

보라색 냄새가 나는 언덕 위 여관을 떠올린다.

p.49

보라색 냄새가 무슨 소리인지 궁금했는데 멀구슬나무라는 보라색 꽃이 피는 나무의 향기인가보다. 최근에 무언가 태우는 냄새를 맡고 기억 저편에 있던 외가의 향수를 쭈욱 끌어온 적이 있다. 냄새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릴 때, 그것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외가에 가면 마당에 팔팔 끓고 있는 가마솥이 있었다. 그 나무타는 냄새가 나에게 외가냄새로 인식이 되어 있어 그 비슷한 냄새가 나자 그 때 그 시절로 데려다주는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그 일 년간 어른이 되어서도

어리석기 그지 없는 딸에게 최고의 교훈을 남기기 위해 사셨다고 믿는다.

용서와 감사. 어머니는 몸소 그것을 내게 알려주셨다.

p.103

이 글을 쓰고 있는 직전에도 엄마와 크게 한바탕하고 방으로 꽁해져 들어왔다. 효도는 고사하고 못되게 굴지나 말아야지 했던 다짐은 작심삼분이 못된다. 어머니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또다시 다짐해본다. 자꾸 반복해서 다짐을 하다보면 그래도 좀 나아지겠지 싶어서.

나는 산을 좋아한다.

여러분 중에 혹시 산을 좋아하는 분은 여기에 와서 살아보세요.

단, 새벽 네 시에는 일어나 풀을 베고 거름을 짊어지는 게 싫은 분은 안 됩니다.

p.161

세상 모든 일이 다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그래서 평생 이 곳에 살고 있다. 친구들은 학교때문에, 직장 구하러, 님 찾아 여길 떠나지 못해 안달인데 나는 맘만 먹으면 5분 내에 바다를 볼 수 있는 이 곳이 좋다. 단, 문화생활 못하고 바다와 인접하여 여름이면 태풍에, 겨울이면 폭설에 고립될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패전 후', '전쟁' 이라는 단어가 종종 나온다. 2차 세계대전을 말하는 것 같은데 나는 일제강점기 시대가 먼저 떠올랐다. 누군가에게는 떠올리기조차 싫은 치욕의 시절도 누군가에겐 추억이 되고 회상하고픈 시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문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비슷하다. 심지어 다른 나라, 다른 문화 속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저자와 살았던 시대, 나라, 문화 모든 게 다르지만 마치 이웃 사촌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저자의 이야기를 하나, 둘 들으며 나의 삶도 한번, 두번 돌아보게 만들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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