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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ㅣ 필로테라피 5
셀린 벨로크 지음, 류재화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11월
평점 :
아직(?) 그리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괴로운 일이야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으니 웃어야하나 울어야하나... <절망하는
날엔 키에르케고르>를 먼저 읽었던 터라 땐시리즈 읽는 요령이 생겼다. 가장 괴로운 날을 떠올려보았다.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근
20년간 나를 괴롭혀온 기억.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그 날. 그 날의 기억은 다시 되돌릴 수 없기에 엄청난 후회와 큰 괴로움을 내게 안겨주었다.
손자보다 손녀를 더 예뻐하셨던 할머니지만 난 그런 할머니가 싫었다. 나의 엄마를 구박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대놓고 할머니에게 따지거나 대든적은
없지만 시종일관 차가운 얼굴과 행동으로 할머니를 대했던 것 같다. 그 날 역시 잠깐만 오라는 할머니의 부르심을 학교 늦는다며 짜증스런 말투를
내뱉고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 이 날 이 때까지 그 날만 생각하면 더없이 괴롭고 또 괴롭다.
내가 겪는 괴로움은 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괴로움이다. 진단하기를 통해 얼마나 소소한 것에 괴로워 하는지 알게 된다.
"행복은 환상이다"
어떻게든 부인하고 싶었지만 쇼펜하우어의 말이 다 맞다. 행복은 만족을 모른다는 것, 그 순간 그게 행복이었는지 나중에
깨닫는 것, 기쁨의 총량보다 고통의 총량이 더 크다는 것 무엇하나 반박할 수가 없다. 괴로움을 없애줄줄 알았는데 오히려 행복에 대한 환상을
깨다니.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행복이 환상임을 인정하자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괴로움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행복 그 자체가 환상이니까
말이다.
사랑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얘기는 너무 사실적이라 웃음이 나올 정도이다. 어디 하나 틀린 말은 없다. 닮은
사람은 모이지 않는다는 말에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이해하기'까지 봤을 때 가깝게는 부정적인 기운이 감싸고 도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기' 질문에
대해 생각할 수록 어쩌면 부정적인 느낌을 깨고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적용하기'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찾았다.
그동안 내가 괴로웠던 것은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뜻하는 바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괴로웠던 것이다. 이런 욕망과 욕심에서 떨어져야
괴로움도 덜한 것이다. 책 속에 이 표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배우가 되어 뭐라고 해보려고 기쓰지 말고 여유있는 관객이 되어 넓은 시야를
가져보기를.
이미 답은 알고 있었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불교와 노자사상이 자꾸 떠올랐던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려놓기. 잘 알면서도 내려놓기라는 게 잘 되지 않는다.
괴로움이란 나의 욕심에서 오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성자와 가까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소개된다. 어렵지 않게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는 것마저도 그 방법 중
하나이다.
쇼펜하우어를 떠올리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행복을
노래하는 사람들 보다 긍정적인 메세지를 주는 듯하다. 사실 책을 한번 읽고 이해하기 어려워 같은 페이지를 몇 번 반복해서 읽고 되뇌어보기도
했다. 그 결과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괴로움에 대해 어느 정도 통달한 느낌이랄까? 적어도 아주 괴로웠던 문제가 가벼워진 느낌은 든다.
정말 너무 괴로운 일이 있어 심적으로 힘들다면 차분한 마음으로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