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갈 수 있는 배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윤희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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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편의점 인간>의 저자 무라타 사야카의 신작.
세 여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성 정체성으로 혼란을 겪는 리호,
자신을 별의 한 조각이라 여기는 우주적 세계관의 소유자 치카코,
천상 여자라 리호와 대립하는 츠바키.

첫 장부터 출발이 쉽지 않았다.
'일본은 성문화가 개방적이라더니 고등학생이 벌써...'
이 엉뚱한 생각에 꽂혀버리자 책 내용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리호가 평범한 학생인지, 문제아인지를 밝히는 게 나에겐 더 시급한 문제였다. 여자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남자일지 모른다는, 남자이길 바라는 것 같은 리호를 보며 참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내가 얼마나 고리타분한 사람인가 확인만 하는 꼴이 되었지만......

리호보다 열살은 더 많은 치카코와 츠바키가 나의 또래지만 난 도통 그들의 대화에는 낄 수 없다. 그만큼 나 자신의 성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여성으로 태어나 생겨난 불편함도 당연스레 받아들이고 살고 있었다. 하나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여성인 나조차도 여성스러움에 갇혀 스스로 억압하고 살고 있었다는 것. 집에 있을 때는 절대 하지 않는 화장을 나갈 때는 덕지덕지 바르고 나가야 예의라고 생각하고, 지하철처럼 사람이 부대끼는 곳은 되도록 가지 않는다. 누굴 위해 평생 다이어트를 하는건지, 내 목소리는 저음인데 사람을 대할 때는 '솔~~~' 톤으로 맞아야 하는지... 나의 삶을 돌아보니 완전... 여성 코스프레도 이렇게 억지스러운게 없다. 차츰 이런 문제에 눈을 뜨게 되자 세 여자의 이야기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성과 관련된 이야기는 지금까지 금기하고 있는 분야이다. 리호, 치카코, 츠바키 이 세 여자는 독서실에서 만난 짧은 인연으로 이런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20년지기 친구들과 만나도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리호와 같은 어린 친구에게 이 분야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잠시 멍....해졌다. 나라는 인간은... 괜찮은 건가....
곰곰히 생각해보았으나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결론으로 이 분야는 접어두기로 했다.

오히려 정신세계가 4차원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치카코에게 관심이 갔다. 치카코가 어릴 때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가 무척 환상적으로 들렸다. 치카코와 같은 우주적 세계관을 가진다면 세상에 힘들고 괴로운 일도 없을 것 같다. 세 인물 중 그나마 관심이 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치카코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아도 아동기에서 멈춰버린 나의 상상력으론 그녀의 행동이 뭘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이 책을 너무 일찍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이 책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여기며 넓은 의미로 이해해보기로 했다. 그녀들의 소소한 고민은 공감하지 못하지만 여성으로 태어나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차별하고 있었다는 점, 이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느 순간 <멀리 갈 수 있는 배> 표지를 보며 "아!" 하고 깨우침의 환호성을 지를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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