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물건에 진심 - 오래된 것들을 고치는 동안, 나도 조금씩 고쳐졌다 진심 시리즈 1
박찬용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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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유행한 트위터 밈 중에 '고도로 발달한 거지는 환경운동가와 구분할 수 없다'가 있다.


질 좋은 옷을 사서 10년을 입으라는 말에 대해, 질 안 좋은 옷을 사도 10년을 입는다는 표현과 함께 창조된 밈이다. 거지라서 옷을 안 버리고 오래 입는다는 우스갯소리지만, 사실 10년 동안 함께한 옷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헌 책방에 관한 글에서 저자는 어릴 때부터 시작된 책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가장 공감한 부분이었다.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서점과 헌책방을 드나들었다. 현재는 기업형 헌책방인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어 자주 이용하고 있지만, 종종 아날로그식 헌책방을 찾는다. 낯선 여행지에서도 헌책방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한다. 


 헌책방에 대한 향수는 어느새 내 삶을 구성하는 일부가 되었다. 삶 안에 풍성함과 굴곡이 있어도 나를 관통하는 메인 멜로디가 계속 맴돈다는 작가의 표현이 마음에 남는다.


저자는 오래된 물건을 모으고 수리한다. 나는 있는 물건 오래 쓰기가 기본이고, 작가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오래된 물건을 모은다. 헌책 외에 모으는 품목은 빈티지 옷이나 가방, 신발이다. 그리고 나 역시 수리한다. 뜯어진 책등을 붙이고 솔기가 터진 옷을 고치고 신발 밑창을 교체한다.




 오래된 물건을 수리하며 사용하는 경험은 단순한 애착을 넘어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유행이나 사회가 추구하는 효율성에서 한 발짝 벗어나게 해준다. 작가의 말처럼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위안을 준다.


 유행은 빠르게 바뀌고 그때마다 우리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처럼 구매한 물건을 오래 쓰고, 때로는 오래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래된 물건에 대해 진심인 마음을 조용히 공감한다.


 십 년도 전에 혼자서 처음 떠난 해외여행에서 구매한 백팩이 있다. 엄마는 가방 색상과 어울리는 인형 키링을 손수 만들어 주셨다. 그 가방은 천과 가죽으로 만들어져 십 년을 넘게 들자 가방과 지퍼가 분리되었다. 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꺼내 어떻게 고쳐 쓸지 고민해본다.


#오래된물건에진심 #진심시리즈 #박찬용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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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미풍 -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위화 지음, 백도라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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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를 팔아 살아가는 인생, 함부로 슬픔을 입에 올리기에도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농담처럼 건네는 작가이다. 위화의 소설에 등장하는 삶의 목소리들은 유머러스하지만 나에게는 항상 더욱 슬프게 들린다.


 여름의 초입에 만난 산곡미풍은 소년 시절 위화가 찾아다니던 천당풍처럼 마음을 시원하게 환기시키는 산문집이다.


 부모님 몰래 수영을 익히고 바다에 놀러 다니던 소년 위화부터, 소설가가 되어 처음으로 프랑스에 방문한 청년 위화 그리고 아버지가 된 위화까지 -인간 위화의 개인적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 같아 즐겁다.


 두 살 터울의 형과 아버지에게 혼나는 장면, 처음 먹은 캐러멜과 케이크 맛을 찬양하는 대목들은 너무도 인간적이라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읽고 책장을 덮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문득 느껴진다. 


 부모님이 일하던 병원을 형과 함께 뛰놀던 장면과, 새벽이면 영안실에서 들려오던 울음소리들. 개구쟁이 아이들의 배고픔과 가난함.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되어 누군가의 아들이었던 자신과 그 시절의 아버지를 돌아보는 시선. 


 순수한 시절의 위로와 함께 삶의 고통과 행복이 조용히 스며들어 있었다.


 위화의 산문도 위화의 글이라 읽고 나면 슬픔이 살짝 스쳐간다. 소설처럼 산문 또한 담담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위화는 이 책을 쓰며 마치 다시 한번 사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현실로 돌아왔지만, 잠시나마 나도 그와 함께 살았음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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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바깥을 향한 열망 - 우정 예찬 계속읽기 2
조프루아 드 라갸느리 지음, 유재홍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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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프루아 드 라갸느리와 사회학자 디디에 에르봉, 소설가 에두아르 루이. 


 세대도 다르고 각자의 집도 따로 있는 이 셋은 거의 매일 저녁을 함께 나누며 사유와 창작의 시간을 공유한다. 사회가 인정하는 가족 대신 우정이라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택한 것이다.


 라갸느리는 셋의 삶을 보여주며 질문을 던진다. 왜 가족은 사회적 인정과 보호를 받지만 우정은 그렇지 못한가. 


 사회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인정한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것을 필연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가족을 중시하는 가치 자체가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다른 삶의 방식을 생각해볼 기회도 없이 그 산물에 이끌려 살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형태가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닫기도 한다.



 가족은 구성원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지만 내부에만 한정된 폐쇄적 성격을 가진다. 가족적 삶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면 부모로서, 배우자로서의 역할에 종속된다. 오히려 전통적인 삶의 형태는 '나 자신'에게서 '나'를 분리한다.


 라갸느리가 말하는 우정은 '가족에 대한 대안'도 '선택적으로 만들어낸 가족'도 아니다. 관계망을 희소화하거나 정체성을 굳히는 원리가 아니다. 우정이라는 삶의 양식은 정체성을 가진 개인 간의 관계를 증식시키고 발명하며 서로와 접속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정은 가족화에 반대하는 개념이다.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의 틀에서 벗어나면서도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기도 하다.


 우정을 고전적 규범이 아닌 독자적인 삶의 형식으로 재조명한 이 관점이 인상 깊었다. 나 역시 결혼으로 가족을 만들 생각이 없기에 전통적이지 않은 삶의 형태에 대해 오래 고심해왔다.



 이 책을 읽고 우정이 단순한 가족의 대안이 아닌, 정체성을 구축하고 창조적 삶을 만들어가는 개념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삶의 형태가 다원화된 지금, 이 책은 나처럼 다르게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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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동유럽 신화 - 뱀파이어부터 늑대인간까지, 서양 신화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다 드디어 시리즈 11
노아 차니.스베틀라나 슬랍샤크 지음, 송민경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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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동유럽신화, 슬라브족의 신화를 한국어로 만나볼 수 있어 기쁘다. 


 널리 알려진 그리스로마신화를 비롯해 북유럽신화나 이집트신화는 심지어 만화로도 접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동유럽신화는 만나볼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


 판타지에 자주 등장하는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오래 전 기록이 남아있는 동유럽신화에서 유래한 개념이었다.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리부셰 슬라브 문화권의 ‘보편전인’ 신인 페룬도 흥미로웠다.



 여신 모코시와 마녀의 모습을 한 바바야가와 같이 고대 유럽 문화의 여신숭배 문화가 반영되거나, 신화에 물이 많이 등장하는 것에서 슬라브신화와 다른 유럽 문화의 연결고리는 보여준다. 슬라브문화권에서만 등장하는 개념들도 흥미롭지만 서양 신화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즐거웠다.


 가장 좋았던 점은 늑대인간,뱀파이어 등 등장인물에 관한 신화를 정리하여 소개한 것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거주한 슬라브족의 신화는 방대하고 같은 등장인물에 대해서도 문화적,이념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를 포괄적으로 각색하여 전반적인 슬라브신화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도록 했다.



 상당히 친절하게 안내되어 동유럽신화를 처음 읽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한다. 동유럽신화에 앞서 슬라브족의 개념과 서사시를 먼저 소개한 점과 신화의 장면을 보여주는 삽화나 부록의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도 이해에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발생한 배경이나 신화 등장한 요소에 대해 현대적으로 바라보는 관점, 남아있는 기록 등 ‘한 걸음 더 깊이 읽기'를 통해 신화를 뒷받침하는 학술적 내용까지 알 수 있어 책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슬라브족을 대표하는 이야기를 다룬 선집에 컬러삽화, 그리고 매 파트 뒤를 따르는 학술적 분석까지 동유럽신화를 처음 접하기에 이보다 좋은 선택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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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준비하는 시간 - 세상을 바꾸는 위험한 생각은 어떻게 살아남고 확산되는가
갈 베커만 지음, 손성화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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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 책이 재미있는 사례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주말 저녁 앉은 자리에서 6시간 넘게 읽어버렸다.


 우리에게 혁명의 결과는 잘 알려져 있으나 그 혁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이 책은 혁명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제목처럼 크게 타오르는 광장의 불꽃이 아니라 불을 지피기 위한 도화선이 된 사건들에 주목한다.



 편지로 연결한 각국의 학자 모임을 통해 지구의 경도를 측정한 17세기의 놀라운 사례부터 2020년 해시태그 BLM으로 확산된 흑인 인권 운동까지 우리가 몰랐던 혁명 직전의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순간들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 중간의 인터미션에서 SNS의 등장을 다루고 책 후반부는 혁명을 위해 사유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SNS가 끼치는 영향을 사례와 함께 고찰한다.

 SNS는 빠른 시간에 광장에 결집시키는 추진력이 있지만 지속력이 짧다.



 또한 논쟁과 이야기를 만드는 ‘소프트파워'는 있지만, 입법 로비나 정치 지도자를 뽑아 예산을 대의를 위해 쓰도록 이끄는 ‘하드파워'가 부족하다. 저자는 아랍의 봄과 BLM운동에서 나타난 SNS의 한계에 뚜렷한 회의감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어떻게 행동하라는 구체적인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사실상 인터넷 외의 소통창구가 부재한 시점에 무작정 SNS를 끊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바는 조용한 사유의 공간에서 의견을 모은 후 광장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숙성되기도 전에 성급히 SNS 광장에 던져진 생각들은 늘어나는 ‘좋아요'처럼 빠르게 불이 붙고 재가 된다. 작은 채팅방, 모임 등 폐쇄적인 작은 네트워크에서 생각을 먼저 숙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혁명의 결과가 아닌 시작의 순간을 알 수 있어 흥미로웠던 이 책은, 단순 흥미에 그치지 않고 SNS가 사회운동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사유하게 만든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불이 붙고 재가 되는 시대이다. 천천히 사유하며 나아갈 방법을 찾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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