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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당한 몸 - 이라크에서 버마까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
크리스티나 램 지음, 강경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평점 :
보스니아를 여행하던 때 ‘Don`t forget `93’이라 새겨진 돌들은 여전히 아픔 가득한 유고 내전을 떠올리게 했다. 종교와 인종 때문에 유럽에서 90년대에 벌어진 전쟁. 그런데 지옥같은 전쟁 중에 끔찍한 피해는 여성에게 집중되곤 한다.
보스니아 사라예보 ‘그르바비차’ 지역은 그 상징처럼 알려진 곳이다. 내전 중 세르비아 수용소가 있던 곳인데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많이 알려졌다. 사실 이런 수용소는 내전 중 보스니아 전역에 만들어졌다. 이유는 단 하나, 전시 강간으로 임신한 이들이 낙태를 시키지 못하도록 일정 기간 가둬두는 시설이었다. 참혹한 얘기다. 책 「관통당한 몸」에 따르면 이런 수용소는 전쟁 시기 보스니아 전역에 57개가 운영됐고 2만에서 5만명의 여성이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이 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 <그르바비차>를 보면서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충격이었다.
“왜 엄마는 아빠 얘기를 하지 않는거야?”
세르비아 군은 무슬림 여성들을 집단 성폭행하고 강제로 임신시켰다. 공포와 굴욕, 모욕감을 주기 위해서였고 인종 청소가 목적이었다. 보스니아 전역에서 계획적으로 자행된 범죄였다. 영화를 통해 어렴풋하게 알던 사실을 책 「관통당한 몸」에선 저널리스트의 취재를 기반으로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읽게 됐다. 매우 불편했다. “그들은 되찾을 수 없는 뭔가를 앗아 갔어요. 매일 죽어가는 것 같아요” 지금도 남겨진 상처만이 가득하다.
보스니아의 강간 피해자들은 2007년, 내전이 종결된 후 12년만에야 전쟁 피해자로 인정받는다. 부끄러운 존재로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이들에 맞서, 고통스런 현실과 마주하면서도 진실을 알린 이들의 노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 <그르바비차>에서 “엄마 난 아빠 어디를 닮았어?”란 딸의 질문에 엄마는 답한다. “넌 나를 닮았어”
영화 <그르바비차> 속에 흐르던 노래다. “갈라진 붉은 장미들은 피로 물들어 가네. 찢겨진 가슴에 피와 눈물만 남는데 하늘은 그림자처럼 우리에게 드리워지네...우리에게도 봄은 왔지만 눈물로 말라버리네. 사막에 꽃이 피고 낙원이 열려도”
책 「관통당한 몸」은 영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티나 램이 세계 곳곳의 전시 강간 피해자들을 만나 나눈 인터뷰가 기반인 책이다. 버마 로힝야 집단학살이나 콩고 전쟁, 나이지리아 보코하람,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까지 시대를 몸으로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특히 시리아 일대와 북 이라크를 점령한 IS 이야기는 처참했다. 수니파가 아닌 무슬림과 소수민족에 대해 시행한 ‘인종청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014년 8월 수천명의 야디지 족 사람들을 납치해 이슬람 개종을 강요하고 소녀들을 IS 소속 대원들에게 ‘판매’하고, “포상”으로 주고, 고문했고 성폭행을 일삼았던 기록은 처음 접한 이야기였다. 가해자에게서 벗어난 후에도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여기는 시선 때문에 이들의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소련군의 패전 직후 독일 여성들에 대한 집단 강간 역시 처음 접하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 얘기가 조심스럽게 다뤄진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범 가해 국가 나치 독일에 희생자 이미지를 줄 수 있어서일 것이다. 게다가 패전국 독일로선 전후 이 이슈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당연히 침묵했다.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듯. 오직 피해 여성들만 전범국가 독일이 보통국가로 변화할 때 그냥 개인이 당한 불행으로 치부하며 상아야 했다. 그 피해자 수가 무려 200만 명이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건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는 러시아 정치인조차 존재한다. 「관통당한 몸」의 저자는 “80년대 학교에서 2차 세계대전에 대해 배울 때 교과서에는 집단강간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건 지금의 역사책도 마찬 가지 아닐까? 이게 어떻게 무관심 속에 방치돼야 하는 얘길까?
읽는 내내 불편했지만 이 책이 우울한 이야기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보스니아 전쟁의 성폭력 생존자는 피해자들과 함께 전범을 찾아내서 법정에 세웠다. 그리고 장미를 재배하면서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고 스스로 치유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있다. 르완다의 피해 여성도 투치족 피해 여성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나서고 피해자들을 설득해 법정 증언을 유도하고 가해자 처벌을 위해 노력한다. 덕분에 전쟁범죄로 처벌까지 하게 됐다. 뒤집어 생각하면 강간이 전쟁범죄로 처벌받게 된 게 98년 르완다 때부터니 변화가 더디긴 더디다. 참고로 지금은 학살과 반인도적 범죄 가해자는 국제형사재판소를 통해 처벌이 가능하다.
힘겹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 수많은 여성들, 그들이 조금씩 현실을 바꾸고 있는 셈이다. 김복동 할머니도 그런 분 중 한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