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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 - 국선변호사 사건 일지
신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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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재밌는 드라마다. 천재 자폐 변호사라는 설정에서 오는 힘이 일단 강력하다. 드라마 중에 이런 대사가 독백처럼 흐르는데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자폐를 최초로 연구한 사람 중에 하나인 한스 아스퍼거는 자폐에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말했어요. 일탈적이고 비정상적인 모든 것이 반드시 열등한 것은 아니다. 자폐아들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경험으로 훗날 놀라운 성과를 이룰 수도 있다. 한스 아스퍼거는 나치 부역자였습니다. 그는 살 가치가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를 구분하는 일을 했어요. 나치의 관점에서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은 장애인, 불치병 환자, 자폐를 포함한 정신 질환자 등이었습니다이게 드라마 속 대사다.

 

게다가 매화 다양한 사건을 통해 재판 과정을 다루게 되는데 이 역시 매우 생생하다. 게다가 참 쉽게 본질을 건드린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그 궁금증은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에서 풀렸다. 자문 변호사가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오늘 만나보려는 신민영 변호사다. 낯선 분도 있겠지만 이 분, 국선 변호인으로 활동하며 1000건의 사건을 변호했던 분이다. 처음 이름만 듣고는 여성 변호사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남성 변호사였던 기억이 개인적으론 강렬하다. 어쨌든 이분이 자문을 했으니 어려운 법 이야기를 그렇게 쉽게 풀었구나 믿음이 갔다.

 

극중 우영우 변호사는 법은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마음에 따라 죄명이 바뀝니다. 죽일 마음이었다면 살인죄, 다치게 할 마음이었다면 상해치사죄, 좀 때려줄 마음이었다면 폭행치사죄, 실수였다면 과실 치사죄라고 표현하는데 이게 바로 신민영 변호사의 책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에 그대로 나오는 표현이다.

 

화제를 몰고 왔던 1화의 스토리는 사실, 거의 실화다. 신민영 변호사가 변호한 국선 변호 이야기 중 하나인데 책에서 이 사건은 반드시 무죄를 받아야 한다란 챕터를 통해 소개된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려 치매 수발까지 했던 70대 노파가 남편의 이마를 철제 변압기로 내려친 사건, 피고인의 첫 죄명은 살인미수죄였다. 그냥 집행유예 정도로 끝내자는 이 사건을 파헤쳐 무죄 판결을 받아낸게 신민영 변호사다. 신변호사가 이 사건에서 살인죄 적용을 피하려 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민법 1004조엔 고의로 배우자를 살해하면 상속을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연금으로 생활하던 70대 할머니의 사정을 고려한 신 변호사가 무죄를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뛴 사건이다. 다리미가 아니라 철제 변압기로 때렸다 등의 몇 가지가 차이가 있지만 사건의 기본 얼개나 해법은 같다. 결국 사건은 의학적 쟁점에 대한 판단 등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살인죄 부분에선 무죄를 받게 된다. 인간사 불행은 모두 만난다는 재판정에서 한 인간의 삶의 문제에 둔감해지지 않고 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판단해보려 하는 변호사를 만나는 일은 즐거운 경험이다.

 

책을 읽다보면 여러 사건을 통해 법률적 지식을 얻게 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정당방위란게 사실 매우 적용받기 힘들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누가 봐도 범인이지만 무죄를 받게 되는 이유를 알게 된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 중 굳은 내 머리를 때린 건 이 부분이었다. 때론 법이 죄를 짓기도 한다는 점.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척결, 장애인에 대한 강제 불임 시술은 모두 법에 따라 이뤄졌던 일이다. 무조건 법대로가 답이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 위헌 제도란 게 만들어진 것이다. 덕분에 사회의 상식이 바뀌는 변화를 법이 느리지만 따라가게 된다.

 

또 하나, 증거는 완벽할 거란 믿음도 깨져야 할 대목으로 얘기한다. 사례로 든 20043월 마드리드 아토차 역 폭탄 테러 사건 애기가 참 흥미롭다. 2000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 당시 당국은 불발탄에서 지문 하나를 찾는다. 그리고 그 지문을 추적해 FBI는 미국의 한 변호사 브렌든 메이필드를 전격 체포한다. 스페인은 가본 적도 없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지문이 같다는데, 그게 증거라는데 누가 반박할까? 하지만 결국 다른 진범이 잡히게 되고 브렌든 메이필드는 무죄로 석방된다. 왜 그랬을까? 지문 감식 과정이란 게 컴퓨터가 유사하다고 한 20명을 놓고 결국 사람들이 모여 판단했던 거고 그래서 오류가 생긴 것이다. 그 평범한 진실 앞에 증거는 완벽한가 되묻게 되니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4화까지 방영된 지금, 2편 정도가 더 이 책에서 모티프를 따거나 사례를 활용할 거라고 한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나중에 기회 되면 짚어보겠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믿고 볼만한 신민영 변호사의 책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 한 국선 변호사의 사건일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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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삶이 될 때 - 낯선 세계를 용기 있게 여행하는 법
김미소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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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어를 배우고 가르친다는 게 뭘까 고민하며 써나간 에세이다. 글쓴이 이력이 참 특이하다. 한국인인데 미국서 공부했고,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산다. 다양한 경계인의 삶 덕분에 영어 이야기인데도 무척 흥미롭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민트 초코’지만 일본이나 미국에선 ‘초코민트’라고 한다. 우리나라나 미국에선 ‘컨베이어 벨트’지만 일본에선 ‘벨트컨베이어’이기도 하고.

특히 Could you가 Can you보다 공손한 표현이 된 이유는 이 책을 읽으ㅁ변서 처음 알았다. 심오한 얘기였다. 이게 '심리적 거리의 차이' 때문이란 것이다. 현재형은 대화 시점과 가깝고 과거형은 멀다. 그래서 친한 사람한테는 현재형을 쓰는 거고, 조금 낯선 사람에겐 정중하게 과거형 Could를 쓰는 것이다. 세상에나. 이걸 학교 다니면서 알았어야 하는데. 살면서 지금까지 Could 뒤엔 동사 원형을 쓴다는 것만 달달달 외우고 살았다. 뭔가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더 이해가 갔다. 언어란 결국 우리네 삶의 이야기였다.

미국을 처음 갔다가 패스트푸드 점에 들어가 주문을 하면서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주문이야 번호로 하면 되니 간단하겠다 싶었는데 점원이 하는 말이 도통 이해가 안 가서 한참을 다시 한번 얘기해달라고 했다. 나중에 천천히 들어보니 ‘for here or to go’였다. 영어를 실생활과는 좀 거리를 둔 표현으로 배운 후과였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내가 영어로 하는 말은 ‘내 세계를 확장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건 연필이 아닙니다’는 말을 배우기보다 ‘이거 제가 주문한 음식이 아닌데요’ 이런 표현을 익히란 얘기일 것이다. 거칠게 정리하면. 영어에 대해 공부하지 말고 영어를 매개체로 사용하라는 말, 새겨들을 대목이다.

저자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면 아무 말 잔치를 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어차피 외국어는 표현 방식이나 규칙 느낌이 다르니 연습을 해야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좀 더 깊게 이 지점을 생각해보면, 아무 말이나 해도 괜찮은 사회의 분위기가 필요해진다. 지적질이나 평가 대신 수용해주는 분위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게 언어를 통해 길어 올린 삶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왜 나이가 들면 제2 외국어를 배우는 게 어렵게 느껴질까? 그 비밀은 바로 이미 형성된 자아를 깨뜨려야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어서다. 부끄러워질 기회를 만들고 자존심을 낮추고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모국어의 편안한 세계를 벗어나 자신의 자아를 무너뜨려야만 언어를 체득할 수 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자아가 말랑말랑한가 딱딱한가의 문제인 것이다. 언어를 놓고 툭툭 던져오는 질문들에 삶의 깨달음이 한가득이다. 흥미로운 에세이다. 말을 잘하려면 맥락을 알아야 하듯 공부를 잘하려면 삶 속의 깨달음이 뒷받침돼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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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 - 오늘도 정주행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윤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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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가 넘쳐나는 건 반갑다. 다만 하루는 24시간이고 그 시간 안에 할 일은 너무 많다. 그래서 늘 누군가의 추천 OTT엔 관심이 쏠리곤 한다. 나 같은 이들이 많나보다. 자신의 24시간을 써서 길어 올린 금쪽같은 OTT 작품에 감상평을 덧붙인 책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가 나왔다.

흥미로운 점은 글쓴이가 OTT 콘텐츠를 보면서 전하는 메시지가 무척 새롭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에놀라 홈즈’ 작품 소개를 보자. 물론 이 작품은 원작이 흥미로운 작품이긴 하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인권운동을 다룬 작품이니까. 주인공의 엄마는 이제는 조금은 알려진 서프러지스트 여성 운동가다. 게다가 코르셋’이 상징이던 시대에 ‘소녀 탐정’ 얘기라니.

글쓴이는 소년들은 모험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소녀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짚는다. 후작은 모험 끝에 집을 선택했지만 에놀라의 결론은 홀로서기였다. 좁고 억압된 곳 대신 세상 속 모험을 통한 성장을 택한 것이다.

“엄마가 왜 내 이름을 ‘에놀라 Enola’라고 지었는지 정말 알고 싶다. 에놀라를 뒤에서부터 읽으면 ‘Alone’이다.” 서프러지스트 여성 운동가였던 엄마가 지어준 이름은 ‘혼자’였다. 그건 고독하라는 얘기가 아니고 주체적으로 살리는 당부였다. 자전거를 타고 군중 속으로 향하던 에놀라가 다시 떠오른다.

에놀라 홈즈’란 콘텐츠를 여성의 눈으로 이해하며 재구성해보는 건 새로운 경험이다.

책을 보다 글쓴이가 다음에 OTT 콘텐츠 안내를 쓴다면 도시 이야기가 어떨까 싶었다. 뉴욕만 해도 콘텐츠 ‘도시인처럼’이나 ‘섹스 앤 더 시티’부터 ‘ 프란시스 하’, ‘결혼 이야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과 ‘브루클린 나인 나인’,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마이 뉴욕 다이어리’, ‘캐롤’의 뉴욕이다. 뭔가 관통하는 흐름이 있는데 다채롭다. 정말 뉴욕이다.

책 속의 표현대로 우리는 ‘아름다움엔 면역이 되지 않으므로 어김없이 감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게 OTT 콘텐츠 속 이야기든, 글쓴이의 삶의 경험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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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중력에 맞서 - 과학이 내게 알려준 삶의 가치에 대하여
정인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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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딱딱한 과학 얘기를 한다. 그런데 그게 삶의 가치와 연결된다. 참 특이한 지점이다. 공식이나 수치로만 생각했던 과학에 살아가고 사랑하고 인격을 형성하고 늙어 죽어가는 인생의 가치에 대한 무서운 통찰이 숨어있을 줄이야!      


책장을 넘기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예를 들면 이렇다. 누군가에게 용기를 준다면서 ‘원하는 건 뭐든 될 수 있다’고들 한다. 부모나 교사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그런데 맞는 얘길까? 과학의 시선으로 보면 사람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도 다르고 후천적인 환경의 불평등까지 존재한다. 매몰찬 얘기지만 듣고 보면 맞는 말이다. 그래서 ‘원하는 건 뭐든 될 수 없다’. 대신에 우리는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내가 잘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는 얘기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게 뭔지 찾는 것, 그게 핵심이란 얘기다. 돌직구 한 방에 고민이 순식간에 해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바로 과학의 힘이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숙독하게 됐다.      


놀라운 건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70여 권의 과학책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부끄럽게도 내가 읽은 책은 소개된 책 중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하지만 어슐리 르귄처럼 내가 좋아하는 SF 작가가 거론될 때, 왠지 취향의 공통점을 찾은 듯 해 반가웠다. 그중에 소개된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는 나 역시 흥미롭게 본 책이었다. 4시간이던가? 오랜 시간의 독서 끝에 내가 얻은 교훈은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그게 중년 이후의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만드는 길이란 비밀의 발견이었다.      


사실 며칠 전 점심으로 뭘 먹었나 물으면, 기억하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기억은 덧입혀지며 희미해진다. 그래서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진다. 하지만 부모님과 처음 외식하던 날이랄지, 사랑에 빠졌던 이와 함께 했던 식사, 엄청난 아픔을 겪었던 날 꾸역꾸역 먹었던 밥은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류의 새로운 경험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이 차이가 바로 노년의 시간이 빨리 흘러버리는 이유다. 노년의 반복되는 일상에선 기억나는 일이 줄고, 때문에 시간만 쏜살같이 흘러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조금 천천히 흐르게 하려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일들로 시간을 채워야 한다. 몇 시간을 써서 얻은 이 결론을 저자는 10 페이지에 충분히 깨닫도록 요약해준다. 덕분에 쉽게 핵심에 다다를 수 있다. 그것도 70여 권의 어려운 책들을. 효용의 관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난 더 중요한 걸 발견했다. 바로 과학저술가 정인경 씨의 시선이 매우 인간적이란 점이다. 그게 과학책을 통해 삶의 가치를 연결시켜냔 힘의 원천으로 이해된다. 같은 책을 보면서도 어디에 집중하고 무엇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읽는 이에 달린 문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익히 아는 코로나 펜데믹을 생각해보자. 처음엔 무증상 감염은 없다는 게 과학계의 정설이었다. 공기 감염도 불가능하다고들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우린 모두 안다. 모두 가능하다는 것을. 결국 과학의 가치는 이렇게 ‘틀림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모두가 맞다고 생각하는 데 대해 회의하고 성찰하는 것, 도전하는 것 그게 답인 것이다. 인생에 주는 놀라운 충고다. 


저자는 <호흡 공동체>란 책을 소개하면서 콜센터 노동자들의 집단감염 얘기를 건네준다. 한 사람이 감염되자 모두가 감염돼 버린 콜센터 노동자들. 그들은 밀폐된 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일해야 했다. 그래서 집단감염으로 쉽게 이어진 것이다. 여기까진 잘 알려진 얘기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에겐 층간 전파가 일어나지 않았다. 쉬는 시간 동안 다른 층으로 이동할 여유가 없어서 코로나 19 확산이 11층에서만 일어난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얘긴가?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 약자에게 눈길을 주고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를 찾아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 다시 한번 공감한다.      


사람답게 살고 살아가고 사랑하고 아프다 죽는다는 건 뭘까? 그 답을 찾는 여정에 길잡이 역할을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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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당한 몸 - 이라크에서 버마까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
크리스티나 램 지음, 강경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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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를 여행하던 때 ‘Don`t forget `93’이라 새겨진 돌들은 여전히 아픔 가득한 유고 내전을 떠올리게 했다. 종교와 인종 때문에 유럽에서 90년대에 벌어진 전쟁. 그런데 지옥같은 전쟁 중에 끔찍한 피해는 여성에게 집중되곤 한다.

 

보스니아 사라예보 그르바비차지역은 그 상징처럼 알려진 곳이다. 내전 중 세르비아 수용소가 있던 곳인데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많이 알려졌다. 사실 이런 수용소는 내전 중 보스니아 전역에 만들어졌다. 이유는 단 하나, 전시 강간으로 임신한 이들이 낙태를 시키지 못하도록 일정 기간 가둬두는 시설이었다. 참혹한 얘기다. 관통당한 몸에 따르면 이런 수용소는 전쟁 시기 보스니아 전역에 57개가 운영됐고 2만에서 5만명의 여성이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이 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 <그르바비차>를 보면서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충격이었다.

 

왜 엄마는 아빠 얘기를 하지 않는거야?”

 

세르비아 군은 무슬림 여성들을 집단 성폭행하고 강제로 임신시켰다. 공포와 굴욕, 모욕감을 주기 위해서였고 인종 청소가 목적이었다. 보스니아 전역에서 계획적으로 자행된 범죄였다. 영화를 통해 어렴풋하게 알던 사실을 책 관통당한 몸에선 저널리스트의 취재를 기반으로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읽게 됐다. 매우 불편했다. “그들은 되찾을 수 없는 뭔가를 앗아 갔어요. 매일 죽어가는 것 같아요” 지금도 남겨진 상처만이 가득하다.

 

보스니아의 강간 피해자들은 2007, 내전이 종결된 후 12년만에야 전쟁 피해자로 인정받는다. 부끄러운 존재로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이들에 맞서, 고통스런 현실과 마주하면서도 진실을 알린 이들의 노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 <그르바비차>에서 엄마 난 아빠 어디를 닮았어?”란 딸의 질문에 엄마는 답한다. “넌 나를 닮았어

 

영화 <그르바비차> 속에 흐르던 노래다. “갈라진 붉은 장미들은 피로 물들어 가네. 찢겨진 가슴에 피와 눈물만 남는데 하늘은 그림자처럼 우리에게 드리워지네...우리에게도 봄은 왔지만 눈물로 말라버리네. 사막에 꽃이 피고 낙원이 열려도

 

관통당한 몸은 영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티나 램이 세계 곳곳의 전시 강간 피해자들을 만나 나눈 인터뷰가 기반인 책이다. 버마 로힝야 집단학살이나 콩고 전쟁, 나이지리아 보코하람,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까지 시대를 몸으로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특히 시리아 일대와 북 이라크를 점령한 IS 이야기는 처참했다. 수니파가 아닌 무슬림과 소수민족에 대해 시행한 인종청소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0148월 수천명의 야디지 족 사람들을 납치해 이슬람 개종을 강요하고 소녀들을 IS 소속 대원들에게 판매하고, “포상으로 주고, 고문했고 성폭행을 일삼았던 기록은 처음 접한 이야기였다. 가해자에게서 벗어난 후에도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여기는 시선 때문에 이들의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소련군의 패전 직후 독일 여성들에 대한 집단 강간 역시 처음 접하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 얘기가 조심스럽게 다뤄진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범 가해 국가 나치 독일에 희생자 이미지를 줄 수 있어서일 것이다. 게다가 패전국 독일로선 전후 이 이슈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당연히 침묵했다.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듯. 오직 피해 여성들만 전범국가 독일이 보통국가로 변화할 때 그냥 개인이 당한 불행으로 치부하며 상아야 했다. 그 피해자 수가 무려 200만 명이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건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는 러시아 정치인조차 존재한다. 관통당한 몸의 저자는 “80년대 학교에서 2차 세계대전에 대해 배울 때 교과서에는 집단강간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건 지금의 역사책도 마찬 가지 아닐까? 이게 어떻게 무관심 속에 방치돼야 하는 얘길까?

 

읽는 내내 불편했지만 이 책이 우울한 이야기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보스니아 전쟁의 성폭력 생존자는 피해자들과 함께 전범을 찾아내서 법정에 세웠다. 그리고 장미를 재배하면서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고 스스로 치유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있다. 르완다의 피해 여성도 투치족 피해 여성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나서고 피해자들을 설득해 법정 증언을 유도하고 가해자 처벌을 위해 노력한다. 덕분에 전쟁범죄로 처벌까지 하게 됐다. 뒤집어 생각하면 강간이 전쟁범죄로 처벌받게 된 게 98년 르완다 때부터니 변화가 더디긴 더디다. 참고로 지금은 학살과 반인도적 범죄 가해자는 국제형사재판소를 통해 처벌이 가능하다.

 

힘겹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 수많은 여성들, 그들이 조금씩 현실을 바꾸고 있는 셈이다. 김복동 할머니도 그런 분 중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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