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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거울 - 파국의 14세기, 흑사병, 백년전쟁, 그리고 움트는 혁명
바바라 터크먼 지음, 박중서 옮김 / 원더박스 / 2026년 6월
평점 :
우리는 재앙을 처음 겪는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역사는 그 믿음을 조용히, 그리고 집요하게 부수어 왔다. Barbara W. Tuchman의 A Distant Mirror: The Calamitous 14th Century(1978)를 손에 들면서 내가 먼저 떠올린 것은 14세기가 아니라 지금 이 세계였다. 팬데믹의 기억, 전쟁의 귀환, 공동체의 균열—이 모든 것들이 이미 한번 일어났다는 감각. 역사가 우리에게 건네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 이 감각, 즉 인류가 이미 여기를 지나간 적 있다는 쓸쓸하고도 단단한 인식이다.
터크먼은 14세기 프랑스 귀족 엥게랑 드 쿠시의 생애를 종축으로 삼아 시대 전체를 직조한다. 이 선택의 탁월함은 단순한 서사 기법의 문제가 아니다. 쿠시는 프랑스인이면서 잉글랜드 왕의 사위였고, 기사이면서 외교관이었으며, 봉건 질서의 정점에 선 자이면서 그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목전에서 바라본 자였다. 그는 경계 위에 선 인간이었다. 역사의 단층선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자리, 바로 그 자리에 터크먼은 자신의 서술자를 세워둔다.
이 책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비극적 숭고에 가깝다. 흑사병이 마을을 통과한 뒤의 침묵, 크레시 들판에서 철갑 기사들이 장궁 앞에 꺾이는 순간, 두 교황이 동시에 파문을 퍼붓는 교회의 희극적이고도 처절한 분열—터크먼은 이 장면들을 연대기적 사실로 나열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것을 인간의 피부 위에 새긴다. 죽음이 일상이 된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성당을 짓고, 시를 쓰고, 사랑하고, 신을 저버리지 않는다. 이 완강한 생의 의지야말로 재앙의 세기를 가로질러 터크먼이 끝내 건져올리는 것이다.
'먼 거울(a distant mirror)'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 쓰기에 관한 하나의 윤리적 선언이다.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현재를 보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그 반사가 완벽할 수 없다는 것—거울은 멀리 있고, 유리는 늘 약간 굴절되어 있다. 터크먼은 그 굴절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14세기와 지금 사이의 거리를, 그리고 그 거리의 무서운 짧음을 동시에 감각하게 만든다.
재앙은 끝나지 않는다. 다만 이름을 바꾼다. 그것이 이 책을 반세기 가까이 독자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게 한 힘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무언가를 예감하고 있다. 14세기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라는 예감, 그리고 그 목소리가 낯설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